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행되는 상류층의 부부 스와핑, 아예 결혼이라는 개념조차 없애버린 변화무쌍한 동거,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거침없는 혼전 성교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너무도 쉬운 이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폰 섹스나 화상 섹스, 카메라폰이나 컴퓨터 카메라들 통한 즉석 음란 화상 전송, 인터넷 채팅을 통한 청소년 성매매, 중고대생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초등학생에까지 확산되는 성 경험의 급속한 증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까지 중독을 일으키는 인터넷 혹은 사이버 포르노!

이렇게 날이 갈수록 자극적, 노골적, 변태적이 되어 가는 우리의 성(性)문화를 보노라면, 성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고, 또 성욕은 본능에 따라 때와 장소 혹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마음껏 발산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성(性)'은 남녀노소 모두의 공통 키워드인 것처럼 기세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각 연령별 키워드로 "10대는 공부, 20대는 사랑이나 연애, 30대는 생존, 40대는 자유, 50대는 여유, 60대는 그리움"이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는 마당에, 이 모든 키워드를 압도하는 키워드가 정작 '성'인 것 같아, 벌레 씹은 듯 입안이 씁쓰레하기만 하다.

너도나도 개혁을 부르짖다보니 권력자의 의중에 가장 근접한 '개혁 코드'에 맞추기 위해 '개코'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쏘다녀야 한다는 자조적인 비아냥거림이 퍼져가고 있지만, 이 '개혁 코드'조차도 맥을 못 추는 것이 '성적(性的) 코드'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자기 숭배적 자기애(自己愛) 사회(narcistic society)에서 자기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성적 대상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지위ㆍ권력ㆍ폭력을 써서라도 상대방을 정복하는 자가 유능한 자로 여겨지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만 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성적 노리개 감으로 삼아 굴복시키기보다 성욕의 노예가 되기 쉬운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사람됨의 기본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적 상황은, 이 사회가 얼마나 거꾸로 된 비정상적 사회인가를 드러내는 적나라한 척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입원하여 병실에서 첫날을 보내는 환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평소에 그렇게 왕성하던 식욕이라도 갑자기 바닥으로 곤두박질하듯 떨어지고, 또 평소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단잠에 빠질 수 있던 사람이라도 병실에서는 그 첫날밤을 뒤척이며 지새우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병원에서 매끼마다 제공되는 음식을 맛있게 먹은 후에 매일 밤 숙면을 취하거나, 성욕ㆍ명예욕ㆍ재물욕 때문에 질병 이상으로 고통을 당하는 환자를, 의사 생활 25년 중에서 본 적이 없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오히려 환자가 입원 초기와는 달리 식사를 어느 정도 하게 되고 잠을 그나마 잘 자게 되면, 그 환자가 질병에서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다고 예측할 수 있을 정도이다.

더더구나 아사(餓死) 지경에 이르러 잠잘 기운도 없는 북한 동포나 소말리아 혹은 아프리카 주민들에게는 성욕, 명예욕, 물욕 자체를 인지할 여력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뭇 사내들에게 몸을 파는 여성들을 향해, 한순간이라도 남자 품에 안기지 않으면 못 살 정도로 성욕이 들끓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정신이상자 취급을 당할 게 뻔하지 않은가. 기아선상에 허덕이고 장기간 극도의 불면에 시달리게 되면 아예 성욕이라는 것 자체가 잊혀지거나 소실되는 게 통상적이지 않던가.

아직도 성욕이 '선 파워(sun power)'처럼 가장 강한 '통제 불능의 원초적 본능'이라고 믿고 있는 분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보시기 바란다. "여러분을 누군가가 납치하여 무기한 형무소 독방에 구금시키고는, 음식을 하나도 주지 않고 잠도 못 자게 하며 배우자와의 면회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 갑자기 교도관이 찾아와서 꽉 잠긴 옥문을 철커덩 열어 주면서 '아무개! 너 어제 밤에 꿈 잘 꿨나보군. 너에게 오늘 좋은 소식이 있다. 출감이란 말이야! 그런데 너 지금 나가면 뭐부터 할 작정이야?' 라고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요?" 라고 말이다.

목마르고 허기지고 한 숨도 못 자서 두 눈이 다 충혈 되어 있는데도, 성적 대상을 찾아 성욕을 채우길 최우선적으로 원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지 않겠는가. 이상의 예에서 보듯이, 가장 강렬한 인간의 욕구는 식욕이나 수면욕이지 결코 성욕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해 아침부터 누구에게든지 확실하게 알릴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싶다.

의학적으로 볼 때, 인간에게 있어서 성 기능을 집행하는 기관은 생식 기관이 아니라 변연계(limbic system)를 포함하는 두뇌이다. 생식 기관은 단지 뇌의 지배를 받을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식기관은 음경과 질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고환, 부고환, 정삭, 음낭, 전립선, 정낭, 정관과 여성의 자궁, 난소, 난관, 자궁 경부, 외음부까지를 다 포함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외부 생식기로서의 음경이나 질보다는 내부 생식기가 훨씬 더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성욕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본능이지만, 한 인간이 자라오면서 듣고 보는 것을 통해 배우게 되는 학습 효과에 의해 성적 개념이나 반응 혹은 성 행동 양식이 다양하게 달라질 수 있다.

성적 충동은 식욕이나 갈증처럼 해소를 요구하는 본능이지만, 성 행동에 수반되는 흥분과 쾌락은 주로 학습된 결과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은 적절한 학습으로 올바르게 프로그램 되어야 한다. 인간의 성은 고품격으로 취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심리학의 아버지 격인 스탠리 홀(Stanley Hall)은 '청소년기는 질풍노도(storm & stress)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년에게 있어서 성(性)은 엄청난 위험을 수반하는 지뢰와 같아서 도저히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인간의 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류일 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성적 타락을 부추기는 자극제가 되고 있어,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정확하고 엄연한 사실은 "식욕과 수면욕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성욕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고 또 당연히 다스려야 한다."라는 데에 있다.

발정기에만 성 충동을 느끼는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성욕은 시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성적 자유를 아무에게나 향하게 되면 방종이 되어버려 큰 위해(危害)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본능에 따라서만 살지 않는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생존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인간적 기본 욕구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꼭 필요하고 좋은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따라 양극단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던가. 성숙한 사람이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스스로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 아니겠는가.

유독 성에 대해서만큼은 허용적인 동시에 억압적인 이중적 잣대를 적용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배고파도 훔쳐먹지 않고 잠이 쏟아져도 냉수로 머리 감으며 밤새워 공부하면서도, 왜 성욕은 조절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식욕, 수면욕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성욕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솔직하게 인정하자!


글/ 김종철(충남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뉴 셀프 상담연구원 신실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