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태복음 3:8

“회개는 종종 슬픈 감정을 갖게 하지만 단순하게 나쁜 감정을 갖는다고 해서 회개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사실 진정한 회개와 단순한 양심의 가책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 근심’은 당신이 무언가 잘못을 하다가 들켰을때나 혹은 행동을 잘못함으로 초래된 불쾌한 결과로 겪어야하는 나쁜 감정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하나님뜻대로 하는 근심’은 강한 감정을 가져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의 변화로 이끄는 생각에서의 변화를 가져온다.” (고후7:10참조)
- ‘피스메이커’책에서-


생각하기: 당신에게는 회개가 보통 어떤 것으로 보이는가? 감정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당신은 감정의 부족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오늘날의 교회가 지도자를 찾고자 한다면 세례요한은 이 시대에 맞는 성품의 소유자는 아니다. 너무 거칠기 때문이다. 마태 복음은 낙타의 머리와 가죽으로 온몸이 덮히고 꿀과 메뚜기로 배를 채운 남자로 그를 묘사한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오늘날 많은 교회는 교회에 일하는 간사들이 깨끗하게 하고 다녀야 하고 목사님들이 잘 드시도록 배려를 한다. 하지만 주일날에 같은 설교가 반복된다면 목사님의 평가시간을 갖게 된다. 세례요한은 우리가 기대어 울수 있는 어깨를 가지고 있지 않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어깨였다. 그가 우리로부터 회개하는 순간에 대하여 질문을 받는다면 그의 대답은 짧고 유쾌한 것이었을 것이다. – 저에게 열매를 보여주시지요!

그렇다면 유대의 사막에서 살았던 이 거친 남자는 어떤 열매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 5:22-23)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눈물과 감정이 이러한 열매를 동반한다면 잘된 회개이고 많은 경우에 적절한 것이다. 하지만 회개의 첫번 열매는 아니다. 감정은 “남은 잔여물“일뿐이다. 사탄(적)은 우리를 속이기 좋아한다. 열매의 예로 에덴동산을 기억하라. 그래서 지혜로와야 한다.!

바울은 진정한 회개의 근원이 무엇인지 말한다. 인내를 키우는 것보다는 눈물을 흘리는 편이 더 쉽다. 잘못한 사람처럼 몸을 축 늘어뜨려 보이는 태도는 옳은 일을 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회개의 진정한 열매는 영의 열매이다. 우리는 원한다고 해서 자신의 힘으로 그러한 열매를 생산해 낼 수가 없다. 이는 주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인 은사이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그는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이다. 그분을 떠나서는 열매가 있을 수 없다. 그분의 공급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굶주림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