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전래, 수용되던 당시 한국에는 유교, 불교, 무교(巫敎) 등의 종교사상이 깊숙히 뿌리 박혀 있었다. 지금도 한국인들의 삶의 단면들을 보면 유교, 불교, 무교 등의 가치관과 흔적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기독교 신앙인들 뿐만 아니라 현재의 기독교인들도 ‘개종(改宗)’을 한 것인지 모른다.

최근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정기학술발표회에서 서정민 교수(연세대학교 신학과)는 ‘기독교의 한국종교 연구 과정’이란 발제를 통해, 그 동안 한국 기독교가 한국종교를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를 정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윤성범의 유교연구, ‘말씀이 이루어지다’

윤성범(1916~1980)은 한국의 종교 중에서 유교의 전통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유교의 여러 관념 중에서 ‘성(誠)’을 자신의 신학적 주제로 설정했다. 유교에서 ‘성(誠)’은 하늘의 길이며, 또한 천지간에 가득 찬 정기(正氣)로서 형이상적 원리이다.

윤성범은 ‘성(誠)’을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의 합성으로, 궁극적으로 ‘말씀이 이루어지다’라는 ‘기독교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성의 신학’이라 한다. 그는 이것을 성육신과 계시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다.

또한 윤성범은 ‘성(誠)’을 철학자 하이데거나 칸트의 사상의 개념을 통해 ‘우주적 개념’, 혹은 ‘신적인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서 교수는 “윤성범은 유교에 서구신학의 방법론적 기술을 가하여, 유교를 새로운 해석을 성립시킬 수 있는 출중한 소재로 활용했다”며 “그는 한국의 종교나 사상 등을 신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재로서 사용했다”고 밝혔다.

변선환의 불교연구, ‘불교와의 적극적 대화 시도’

변선환(1927∼95)은 한국불교를 기독교의 본질과 동일한 맥락으로 봤다. 그는 다른 종교를 신학 지평의 확장을 위해 이해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 기독교와 타 종교의 접점을 찾으려고 했다. 이러한 변선환의 근본 인식은, 진리의 근원에 이르면 모든 종교와 도는 하나의 맥으로 통할 수 있다는 ‘진리일원주의’라 할 수 있다.

변선환에 따르면 불교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와 ‘불가결의 보충 관계’에 있다. 이는 보충되는 그 지점에서 서로 만난다는 뜻이며, 서로가 서로를 풍요롭게 해주는 관계다. 변선환은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서로 ‘사랑하면서의 투쟁’의 상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하면서의 투쟁’은 종교체험의 표현인 로고스, 곧 도그마 사이의 알력이 아니라 종교의 근원적인 것을 얼마나 풍부하게 표현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근원적인 물음 사이의 알력이다.

서 교수는 “기독교 신앙관과 정통신학의 입장으로 보면 변선환의 신학이 기독교 정체성 파괴의 위험수위가 높은 것일 수 있지만, 변선환은 타종교의 범주 깊은 곳에서 기독교와 일치되는 특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유동식의 무교연구와 풍류신학,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얼을’

유동식(1922~)은 한국의 문화와 전통, 응축된 삶, 그리고 거기에서 길러진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국인에게는 불교든 유교든 혹은 기독교든 공통적으로 ‘한국 무교’가 전제된다. 유동식은 한국종교 연구가 ‘무교’, 곧 ‘샤머니즘’ 연구라며,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한국 신학에 관한 담론인 ‘풍류신학’을 전개했다.

유동식은 무교나 그 제의로서의 ‘굿’을 한국 문화의 보고(寶庫), 한국적 활력소의 보관처로 승화시킨다. 이를 해석하여 한국인의 사고와 삶, 종교, 그 중에서도 한국 기독교를 해명하고자 한 것이 풍류신학이다.

특히 유동식은 풍류도의 상징인 ‘화랑’의 이미지를 한국 청년 크리스천에게서 발견하고 그들에게 깊은 한국적 교감을 요구한다. “오늘의 화랑은 다름 아닌 오늘의 한국의 크리스천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얼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풍류신학’ 안에서 나타나는 유동식의 목표는 ‘진정한 한국적인 것’과 ‘기독교’의 상호교감, 연합, 나아가 실재성의 확보에 있었다”며 “유동식은 한국인의 기독교는 한국의 무교 안에 가득 담겨져 있던 한국 문화의 활력소를 이미 담지하고 있고, 그것이 확인될 때 한국 기독교의 진정한 ‘리얼리티’는 확보되는 것이라고 여겼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