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롬 14 : 4)
누군가 우리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했거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때 우리는 그들을 말로 안하면 마음속에서 비판하거나 정죄한다. 데이비드 포우리슨(David Powlison)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즉, 비평하고, 흠을 들추고,성가시게 잔소리하고,공격하며, 저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조롱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증한 행위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3) 판단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하나님이외에는 아무도 할수없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마귀가 되려는 것 이다.(마귀가 약 3 : 15와 약 4 : 7에서 언급한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좌를 빼앗으려고 노리는 적과 같이 형제를 참소하는 행동을 한다. 당신과 내가 싸운다면, 우리의 마음에는 서로에 대한 정죄의 마음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나는 모두 옳고 너는 모두 잘못했다는 생각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작은 왕국을 건설하여 스스로 의로운 판단에 빠진다.
어떤 제한된 범위내에서 상대방을 잘못했다고 평가하거나 심지어 판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7장에서 보듯이 성경은 우리가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사역할수 있도록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사랑안에서의 바로잡음도 마찬가지다. (마 7 : 15, 18 : 15, 갈 6 : 1 참조)
-켄 산데 저 “The Peacemaker”
적용: 성경은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경계하는가? 이같은 판단이 초래하는 위험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가 다른 크리스챤을 정확하지 않게 판단해서 일까?
바울은 로마서 14 : 4에서 놀라운 답을 주고 있다. 그는 다른 크리스챤을 판단하는 것이 실제로 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위험은 우리가 상대방을 구제불능이며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때 잘못은 하나님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가(우리가 판단하는 사람이) 세워질 것이다.” “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분이며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정열적인 약속을 하신 유일한 분이다. 변화의 방정식은 적용되지 않는다. 빌립보서 1 : 6에 있는 하나님의 중대한 약속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 하노라.”(빌 1 : 6)
데이비드 포우리슨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근거를 두지 않은 다른 크리스챤에 대한 판단은 참으로 악독한 것이다. 이는 겸손과 확고한 믿음에 반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크리스챤을 향한 판단적인 태도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성경에서 명령하는 “주 안에서 희망을 품고, 다른 사람의 행동(또는 행동이 아닌것 )으로 좌절하지 말라. 당신이 상대방을 위해 기도할때 스스로 기억하고 반복하라. 주님께서는 그를 바로 세우실 것이다! “
글 / 에릭 폴리 목사
피스메이킹 미니스트리외 다수의 NGO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 사역과 미국내 한국인 2세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누군가 우리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했거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때 우리는 그들을 말로 안하면 마음속에서 비판하거나 정죄한다. 데이비드 포우리슨(David Powlison)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즉, 비평하고, 흠을 들추고,성가시게 잔소리하고,공격하며, 저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조롱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증한 행위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4:13) 판단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하나님이외에는 아무도 할수없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마귀가 되려는 것 이다.(마귀가 약 3 : 15와 약 4 : 7에서 언급한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좌를 빼앗으려고 노리는 적과 같이 형제를 참소하는 행동을 한다. 당신과 내가 싸운다면, 우리의 마음에는 서로에 대한 정죄의 마음으로 가득 찬다. 그래서 나는 모두 옳고 너는 모두 잘못했다는 생각에 몰두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작은 왕국을 건설하여 스스로 의로운 판단에 빠진다.
어떤 제한된 범위내에서 상대방을 잘못했다고 평가하거나 심지어 판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7장에서 보듯이 성경은 우리가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사역할수 있도록 상대방의 행동을 관찰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사랑안에서의 바로잡음도 마찬가지다. (마 7 : 15, 18 : 15, 갈 6 : 1 참조)
-켄 산데 저 “The Peacemaker”
적용: 성경은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경계하는가? 이같은 판단이 초래하는 위험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가 다른 크리스챤을 정확하지 않게 판단해서 일까?
바울은 로마서 14 : 4에서 놀라운 답을 주고 있다. 그는 다른 크리스챤을 판단하는 것이 실제로 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위험은 우리가 상대방을 구제불능이며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때 잘못은 하나님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가(우리가 판단하는 사람이) 세워질 것이다.” “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남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분이며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정열적인 약속을 하신 유일한 분이다. 변화의 방정식은 적용되지 않는다. 빌립보서 1 : 6에 있는 하나님의 중대한 약속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 하노라.”(빌 1 : 6)
데이비드 포우리슨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근거를 두지 않은 다른 크리스챤에 대한 판단은 참으로 악독한 것이다. 이는 겸손과 확고한 믿음에 반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다른 크리스챤을 향한 판단적인 태도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성경에서 명령하는 “주 안에서 희망을 품고, 다른 사람의 행동(또는 행동이 아닌것 )으로 좌절하지 말라. 당신이 상대방을 위해 기도할때 스스로 기억하고 반복하라. 주님께서는 그를 바로 세우실 것이다! “
글 / 에릭 폴리 목사
피스메이킹 미니스트리외 다수의 NGO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 사역과 미국내 한국인 2세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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