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결의 교리적 기초를 확립한 성결의 대스승 이명직 목사님이 지금 당장이라도 흰 수염을 휘날리며 우리들 앞에 나타날 것 같습니다”
성결교회 초대 총회장 고 이명직 목사의 추모예배가 30일 은평성결교회에서 열렸다. 소천한 지 꼭 33주년을 맞은 이날 추모예배엔 백발이 된 이 목사의 제자들 150여명이 참석해 소예배실을 가득 메웠다.
서울신학대학교 전 학장 조종남 목사가 추모사를 낭독하자 장내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조 목사는 “이명직 목사님은 성결교의 신학자이면서 탁월한 성경학자였다”면서 “일제 치하 속에서도 성경 만큼은 일점 일획도 지워져선 안 된다며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멀리 미국에서 건너 온 미주성결신학대학교 총장 이정근 목사가 추모사를 전했다. 이 목사는 “흰 수염을 휘날리시며 한복을 차려 입으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그분은 성결의 교리적 기초를 확립하셨으며, 또 유교의 중용 사상과 기독교 신앙을 접목시켰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조화를 강조하는 그 분의 독특한 사상을 계승해 양극화로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교회와 미국교회 안에서 효율적 선교신학으로 꽃을 피웠으면 한다”고 전했다.
추모예배에 이어 ‘이명직목사기념사업회’의 제12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기념사업회는 ▲ 2007년 기성 선교100주년 기념 ‘이명직 목사 연구논문 공모’ ▲ 100인 설교집 발간 ▲ ‘과연, 이명직 목사는 친일인사인가?’ 소책자 제작·반포 등의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당초 기념사업회는 이명직 목사 추모사업으로 서울신학대 내 동상 및 추모비 등을 건립하려고 했으나 작년 친일인사 발표사건으로 신학생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그 계획이 무산됐다.
고 이명직 목사는 작년 8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의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로,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를 했으며 교단의 잡지 ‘활천’에 몇 차례의 친일논설을 게재한 바 있다. 이에 기념사업회측은 ‘과연, 이명직 목사는 친일인사인가?’란 소책자를 제작, 성서를 지키기 위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고 이 목사를 친일파로만 매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고 이명직 목사는 1909년 일본 동경 유학 시절. 기독교에 입문해 1914년 교단 사상 최초로 목사안수를 받은 뒤 본격적으로 성결의 목회자이자 신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성결교회 총회장을 네차례(1회, 2회, 6회, 7회)나 지냈으며, 경성신학교 교장(1940년), 서울신학교 교장(1951년), 서울신학대학 명예학장(1965년)으로 교단의 신학과 교리를 확립하는 등 교육 활동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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