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감리교회(이강 목사 시무)에서 2월2일(목)부터 6일(일)까지 윤남옥목사(브라이드 영성훈련원 원장)를 초청해 ‘회복과 치유하시는 은혜’란 주제를 가지고 신년 특별 성회를 갖는다.

윤남옥목사는 2대째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받아 이화여고와 감리교 신학대학, 미국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목회자와 결혼한 이후 1977년부터 미국 이민교회에서 남편을 도와 목회를 했으며 1985년에 미 연합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다음은 윤남옥목사가 걸어온 신앙의 발자취이다.

윤남옥 목사는 한국전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때인 1951년 제주도 피난지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윤태현 목사), 아버지(윤성범 목사), 그리고 어머니(이희영 장로) 등 성직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할아버지로부터는 뜨거운 복음주의를, 아버지로부터는 조직신학의 학문적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어려서부터 유달리 병약했는데, 한번은 여덟 살 때 급성 신장염을 앓아 적십자병원에서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망선고를 받기도 했단다. 그렇게 연약한 몸의 소유자였지만, 치유세미나를 인도하면서 그리스도의 치유사역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나름대로 건강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건강을 청지기 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 저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그 성전을 건강으로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임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어려서 죽음을 경험한 그였기에 건강이 더욱 절실했던 것이리라.


딸만 다섯을 둔 아버지가 자신의 뒤를 이어줄 신학자로 그를 택한 것은, 어쩌면 아버지의 개인적인 선택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 하고 계셨음이 분명했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학부와 대학원까지 마친 후 같은 신학대학 선배와 결혼을 하면서 전도사 사모가 되었고, 함께 목회를 하다가 1977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 남자의 아내로, 교회 사모로 평범하게 살던 그가 다시 신학을 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게 된 때문이었다. 결국 깨어나지 못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 그는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5년 미 연합감리교회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게 된다.


여성목회자가 많지 않던 시대에 여성 목회자로서, 부부목회자로서 일을 하게 된 윤남옥 목사는 그러한 부분에서 개척자의 길을 걷게 되며, 1984년에 소위 ‘불같은 성령’을 체험하게 되는데 교회의 일일부흥회에서 있었던 ‘오순절 다락방’ 사건 같은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일이 있은 한 달 후, 그는 말할 수 없는 회개의 체험과 은사 체험을 하게 된다.


“저는 성령님을 만나게 되었고, 2시간 반 동안이나 울면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형용할 수 없는 진리의 빛이 내려와 저를 놀라운 평강으로 인도하였습니다.”라고 윤남옥 목사는 회상한다. 그렇게 받은 은혜의 감격으로 성경을 읽고 또 읽었는데, 급기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구속사적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그 때가 1992년이었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브라이드 성서연구 교재』이다. 이 교재를 통해 목회자들을 훈련시키던 중, 뜻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 <브라이드 영성훈련원>이 시작이 되었고 지금 이 연구원의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