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라는 말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고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첫마디는 은혜 입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은 우리삶을 풍성한 은혜속에 살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기쁨이라는 말과 같은 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는 기쁨과 감사 와 함께 가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라는 말은 많이쓰는데 우리 삶에 은혜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이 메마르고 갈급해 있다면 은혜가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서신서들에는 모두 첫머리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축복의 인사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가장 좋은 축복입니다. 은혜속에 산다는 것은 이미 받은 것이나 앞으로 받을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속에 평강과 기쁨이 없다면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자가 백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용서하지 못하고 옥에 가둔 것같이 일만달란트 빛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는 은혜를 받기를 원하고 사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는 받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그 받은 것이 흘러나가서 나의 이웃에 돌아가야합니다. 받고 베푸는 일이 내 삶아서 돌아갈 때 은혜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받은 것을 감사하면서 은혜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흘러나가 새버리면 감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받은 은혜를 자기 안에 꼭꼭 모아두고 내어보내지 않으면 썩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는 감사하면서 받은 것을 퍼내어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 은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하고 삽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와 닿을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를 흘려 보낼 때 은혜속에 살게 되고 평강이 있게 됩니다.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가난해 지셨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은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고 내삶에서 받은 것을 흘려 내보낼 때 내 삶에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받아 소유하는 것이 은혜가 아닙니다. 참다운 감사는 감격을 수반하고 나도 갚아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주어진 축복을 경험한 사람이 이 축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남을 도와주어 평등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날 때 은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누어주는 가정 나누어주는 교회가 될 때 그 곳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말씀하셨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그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기에 나도 내 삶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광야의 만나의 사건같이 많이 거둔자도 남은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는 평균함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부족함 속에서 넉넉함을 인정하는 사람, 어려움중에서도 베풀수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먼저 받고 베풀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축복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넉넉한 것이 있으면 지금 부족한 사람에게 도와주어야 후에 우리가 부족할 때에 넉넉한 사람이 우리를 도와주어 평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금과 후에 똑같지 않습니다. 지금 베풀면 후에 내가 도움을 받게 됩니다. 삶속에 주고 받는 삶을 살 때 진정한 은혜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은혜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은 우리삶을 풍성한 은혜속에 살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은혜는 기쁨이라는 말과 같은 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는 기쁨과 감사 와 함께 가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라는 말은 많이쓰는데 우리 삶에 은혜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이 메마르고 갈급해 있다면 은혜가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서신서들에는 모두 첫머리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고 축복의 인사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가장 좋은 축복입니다. 은혜속에 산다는 것은 이미 받은 것이나 앞으로 받을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속에 평강과 기쁨이 없다면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자가 백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용서하지 못하고 옥에 가둔 것같이 일만달란트 빛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는 은혜를 받기를 원하고 사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혜는 받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그 받은 것이 흘러나가서 나의 이웃에 돌아가야합니다. 받고 베푸는 일이 내 삶아서 돌아갈 때 은혜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받은 것을 감사하면서 은혜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흘러나가 새버리면 감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받은 은혜를 자기 안에 꼭꼭 모아두고 내어보내지 않으면 썩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는 감사하면서 받은 것을 퍼내어 다른 사람에게 보낼 때 은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하고 삽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와 닿을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를 흘려 보낼 때 은혜속에 살게 되고 평강이 있게 됩니다.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가난해 지셨고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은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고 내삶에서 받은 것을 흘려 내보낼 때 내 삶에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받아 소유하는 것이 은혜가 아닙니다. 참다운 감사는 감격을 수반하고 나도 갚아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주어진 축복을 경험한 사람이 이 축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남을 도와주어 평등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날 때 은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누어주는 가정 나누어주는 교회가 될 때 그 곳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말씀하셨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그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기에 나도 내 삶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광야의 만나의 사건같이 많이 거둔자도 남은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는 평균함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부족함 속에서 넉넉함을 인정하는 사람, 어려움중에서도 베풀수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먼저 받고 베풀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축복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넉넉한 것이 있으면 지금 부족한 사람에게 도와주어야 후에 우리가 부족할 때에 넉넉한 사람이 우리를 도와주어 평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금과 후에 똑같지 않습니다. 지금 베풀면 후에 내가 도움을 받게 됩니다. 삶속에 주고 받는 삶을 살 때 진정한 은혜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은혜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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