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2005년이 막을 내립니다. 세월이 유수같다는 말을, 시간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을 다시한번 새기게 됩니다. 2005년 새해를 맞았다고 들떠 있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사이에 그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몇 시간 남지 않은 2005년과 함께 같이 보내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한국지향적인 생각을 떠나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땅에 좀 더 충실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한국의 정치 현실을 향한 관심보다는 미국의 정치현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 자라왔던 우리 모두의 조국이기에 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가 발붙혀 살고 있는 미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당연히 커져야 합니다. 시집을 간 여자에 비유하는 것이 온당할런지 모르겠습니다. 친정에 대한 관심보다는 시집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야 하는 것이 시집을 간 여자의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졌던 ‘자기’에 대한 생각을 떠나 보내야 합니다.
이민자들 특히 초기 이민자들이 떨쳐 버리지 못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이러저러 했었는데… 내가 저런 사람들 밑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나…’ 등등의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정착해 나가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자기’를 빨리 떠나 보내야 합니다. 자기 눈에 우습게 보이는 그 사람도 예전에 한국에서 살았을 때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자기 눈에 우습게 보이는 직장의 동료도 자기와 별반 다름이 없는 교육도 받았고 사회적인 지위도 가졌던 사람입니다. 단지 말이 통하지 않고,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보니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 그렇다는 생각, 자기만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을 떠나 보내지 못하면 오랫동안 심신이 피곤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 이야기를 떠나 보내야 합니다.
대화 중에 사용하는 예화가, 설교 중에 사용하는 예화가 모두 ‘한국 이야기’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도 떠나 보내야 합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원되는 ‘한국 이야기’는 흥미거리는 될 수 있을런지 몰라도 설득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화는 ‘내 주위의 것’이어야 훨씬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의 생활과 거리가 있는, 나의 모습에서 동떨어져 있는 예화는 이해를 돕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잘못된 습관들도 떠나 보내야 합니다.
법과 질서를 경시하는 풍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주권이 필요하다고 해서 문서를 위조하는 행위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새벽 기도에 나온 사지가 멀쩡한 성도들이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잘못된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이 특권이 되어 있는 잘못된 의식도 떠나 보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송구(頌舊)가 아닌 송구(送舊)가 필요합니다.

김동욱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