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손님이 미국인이고 중년층이 많은 우리 가게는 여유있고 나이도 있는 여성 중년 고객들이 많다. 60, 70이 된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머리, 화장, 손톱, 액세서리 그리고 옷매무새까지 신경을 쓴 그들의 모습은 젊은 내가 보기에도 참 좋아보였다.

나이가 들면 남녀 누구나 외모가 쇠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귀찮다거나 “다 늙어서 누가 봐준다고 꾸며?” 하는 것 보다는 남이 봐주든 아니든 자기 자신을 위해서 가꾸고 신경을 써주면 남은 인생이 즐겁지 않을까 생각한 나였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화장기 없는 아주 수수한 40대 후반의 여자 손님이 가게를 오기 시작했다.

청바지에 편한 셔츠만 입고 다니는 키가 큰 Liz라는 여자는 내가 한국이라는 걸 알고서 자기가 입양한 애들이 한국아이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3살, 5살된 이 딸들은 밝고 건강했고, 입양된 아이들과 엄마사이에 어색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해나, 규리는 내가 자기네 모습과 닮았다거나 Liz와 자기들의 얼굴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려서인지 애들과 엄마사이는 너무 다정하고 자연스러워서 보는 내 모습을 참 흐믓하게 했다. 진심으로 애들을 이뻐하고 사랑하는 Liz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딸아이와 해나, 규리가 만나 한번 놀게 했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고, 같은 나라 언니로서 잘 데리고 놀아라고 했더니 그 애들과 우리 딸에게 참으로 유익한 만남이 됐던 것 같다.

이후 Liz는 그 만남을 고마워했고, 딸아이도 가끔씩 해나, 규리에 대한 얘기를 했다. Liz는 14살 된 자신이 낳은 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몇 개월밖에 안된 해나, 규리를 부산과 인천에서 입양했다. (해나, 규리는 같은 자매가 아니다.)

Liz는 입양된 부모들의 모임이 있는데를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정보를 얻기도 하며, 아이들이 더 크면 한글 학교도 보내겠다고 했다. 한달에 1번씩은 인터넷에서 Recipe를 찾아서 한국 음식을 해 준다고 했다. 더욱이 나를 부끄럽게 했던건 애들 생일이 되면 불고기, 잡채, 떡국등등 한국음식을 만들어서 생일잔치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 나 말고도 주위에 있는 한국엄마들은 어떻게 하면 미국식으로 생일을 폼나게 차려줄까 하며 순전히 미국식으로 생일잔치를 했었던 것 같다.

미국 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 생일을 Liz처럼 한국 고유음식을 만들어 미국 친구들을 초대한다면 한국 친구를 둔 미국 아이들은 이런 기회를 통해서 한국 음식도 먹어보고 (입에 안맞을 수도 있겠지만)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조금 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나, 규리는 참 복된 아이들이다. 한국에서 부모없이 고아원에서 자란다면 성장하는 동안 여러가지 시련과 어려움이 많을 것이고, 많은 유혹속에서 바로 잡아 줄 부모가 없어 힘든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Liz같이 좋은 엄마를 만나 사랑받으며 살고 있으니 한국인인 나로서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며칠전 Liz가 아기 사진 하나를 들고 왔다. 현정이라는 이름의 2살된 여자아이였는데 입양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 곧 미국으로 올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정이의 뇌에 이상이 있어서 걷는데 장애가 있는 것이었다. 건강한 아이도 입양해서 키우기가 쉽지 않은데 걷지도 못하는 남의 나라 아이를 입양하여 키유려 하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현정이라는 아이를 키울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고 기대가 된다며서 울먹울먹하는 것이 눈에 눈물까지 보였다. 한 생명을 키우는데는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입양을 하는데 $15,000이 든다고 하지만 평생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인내와 사랑과 물질과 시간, 그리고 자기의 전부를 바쳐야 하는 희생이 따른다. 한 사람의 관심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의 세 아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한국 사람으로서 고맙다고 하자 한국 아이들을 자기 아이로 키울 수 있어서 되려 Liz가 고맙다고 했다.

버려진 생명을 살리는 사랑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또 한 명의 아기를 키울 수 있게 되서 흥분된다며 글썽이는 그의 얼굴과 전혀 꾸미지 않은 Liz의 온 몸에서 고귀한 아름다움이 뿜어 나오는 듯 했다. 한국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한국아이를 사랑하는 Liz의 온 가족들을 초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