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있었던 뉴욕목사회의 차기회장 선출이 경선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걱정하는 소리들이 있다. 필자는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들의 뜻에 따라 추대되는 회장보다는 경선에 의하여 선출되는 회장이 훨씬 더 강한 지도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필자도 간여하고 있는 단체의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자리에 회원의 자격으로 참가하는 경우들이 있다. 필자가 간여하는 한 단체는 필자보다는 연세가 훨씬 많으신 분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계시다. 전체적인 회원의 수를 헤아려보면, 내 또래의 회원들의 숫자가 훨씬 많지만 젊은 회원들은 회장을 선거하는데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몇몇 어르신들이 내정해 놓은 회장 후보에 대하여 박수를 쳐 통과시켜 주는데에 일조를 하거나 거수기 노릇을 할 뿐이다. 연세가 드신 원로들이 내정해 놓은 후보에 대하여 딴지를 걸거나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하면, 그 사람은 금방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 ‘화합을 깨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혀 버린다.

문제는 그렇게 ‘추대’된 회장이 얼마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이다. 반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선출된 회장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 중에는 단지 욕을 얻어 먹지 않으려고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경선에서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은 ‘확실한 지지자’이다.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당선된 회장은 적어도 구성원의 절반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다. 도대체 지지 세력이 정확히 몇 %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추대된 회장에 비하면, 확실한 절반의 지지가 훨씬 더 바람직한 것이다.

모든 단체의 회장은 경선으로 선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주사회에서의 경선은 기본이다. 목사회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경선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당선자에게 전폭적인 축하와 지지를 보내는 아름다운 풍토가 뉴욕목사회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김동욱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