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목사는 1940년생으로 서울에서 은행업무를 보다 정년퇴직을 했다. 그 후 2000년 1월에 모든 가족을 한국에 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지난 2005년 2월 20일에는 장애인교회를 창립해서 사역하고 있다. 그가 장애인 선교에 헌신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란 소식을 듣고 도미
서울에서 은행근무를 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란 소식을 들었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로 왼쪽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으로 2000년 1월 미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동국대를 졸업, 연세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세탁소에 일하다 신학교로
미국에 왔을 때 직장동료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이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 곳에서 한 달간 기술을 배웠다. 그래서 그 기술로 1년 동안 세탁소에서 일했다. 그런데 난 은행출신이라 정장이 습관화되서 세탁소에서 일할 때도 정장을 입고 일했다. 그러던 중 김연숙 선교사님이 세탁소에 들렀다가 나를 보고 세탁소일 할 사람으로는 안 보이셨는지 나도 모르게 뉴욕 찬양 신학교에 등록을 해버렸다. 신학교에 다니려면 월, 화 이틀을 일을 쉬어야 하는데 세탁소는 파트타임이 안 되었다. 고민이 되었지만 세탁소를 그만두고 신학교를 선택하고 그곳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그렇게 졸업했을 때 김연숙 선교사님이 또 나를 뉴욕연합신학교 상담학 박사 과정에 등록 해버렸다. 그래서 그 곳에서 “장애인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와 교회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쓰고 종교교육학 박사(D.RE) 학위를 받게 되었다.
베데스다 교회에서 장애인 교회 설립
목사안수는 작년 9월 미국 오순절성결교단에서 받았다. 안수 받으러 갈 때 베데스다 교회의 김원기 목사님과 우연히 함께 가게 되었다. 그 때 김원기 목사님이 앞으로의 목회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난 전혀 준비가 안되어있다고 대답했는데 김원기 목사님은 선뜻 자신의 교회를 사용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곳에서 지난 2월 20일에 장애인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다.
순복음뉴욕교회에서 교회밴 운전
정년 퇴직 후 세탁소에서 돈을 벌어가며 생활하다가 순복음뉴욕교회(담임 김남수 목사)에서 교회밴을 운전해가면서 생활했다. 그래서 새벽예배를 항상 가게 되었다. 순복음뉴욕교회 새벽예배 반주자들을 모두 대단한 피아니스트들인데 가끔 펑크가 나면 내게 대신 반주를 맡겨 영광스럽게 반주를 하곤 했다.
주일예배때는 성가대에도 꼭 섰다. 밴을 운전해야하기에 함께 성가대 연습을 할 수는 없었지만 조공자전도사가 나를 항상 성가대에 세워줬다. 전날 연습하라고 가사를 미리 챙겨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장애인 선교에 대한 꿈들을 서로 나눌 수 있었고 그 후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장애인교회엔 비장애인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
장애인 교회라고 해서 장애인만 오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을 돌봐줄 비장애인이 꼭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비장애인이 혼자 오겠다고 하면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하고 택시비를 주기고 한다. 초기에는 비장애인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 일대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교육자가 많이 부족한 상태다. 그리고 장애인 교회를 하다 보니 수화를 배워야 하는데 수화에도 한국수화, 영어수화, 다 달라서 그게 너무 아쉬웠다. 하나로 통일되면 좋겠다.
장애인 문서선교 준비중
장애인들은 교회에 오기도 힘들다. 그래서 마음문을 열기도 힘들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장애인 문서선교다. 장애를 극복한 훌륭한 사람들 즉, 헬렌켈러나 베토벤, 리빙스톤 등의 이야기가 주가 되게 해서 책자를 만들 것이다. 그 책자를 장애인들에게 전달하는 사역을 하고 싶다. 그래서 교회에 오기 힘든 장애인이나 교도소 같은 곳에 있는 이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게 하겠다.
장애인 성가대를 세우는 것이 목표
앞으로 ‘장애인 성가대’를 세울 것이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줄리아드대나 맨하튼 음대에 가보면 장애인은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 꿈나무를 개발해서 정상의 음악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고 싶다. 조공자 전도사도 그런 뜻을 가지고 있어서 대화를 많이 나누곤 했다. 그래서 내년 장애인 교회 1주년 때 장애인 학생들을 모아서 경연대회를 열고 그 중 대학 가겠다고 하는 학생이 있다면 장학금도 지급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야채가게 캐셔 생활에서 받은 은혜
장애인 교회를 창립하면서 순복음뉴욕교회에서 했던 교회밴운전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부터 브롱스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캐셔일을 하기 시작했다. ‘밤에 일하고 낮에 일하면 되겠지’하고 시작했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을 다 합하면 총 17시간이 되고 잠도 자야하고 식사도 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주인이 토요일을 빼주어서 5일만 일하다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만둘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 주인이 행사 시작 전 한달동안을 쉬게 해주고 행사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라고 해서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행사 마치고 다시 돌아갈 직장을 보장받게 되서 너무 감사했다.
장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 자선음악회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란 소식을 듣고 도미
서울에서 은행근무를 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란 소식을 들었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로 왼쪽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으로 2000년 1월 미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동국대를 졸업, 연세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세탁소에 일하다 신학교로
미국에 왔을 때 직장동료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분이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 곳에서 한 달간 기술을 배웠다. 그래서 그 기술로 1년 동안 세탁소에서 일했다. 그런데 난 은행출신이라 정장이 습관화되서 세탁소에서 일할 때도 정장을 입고 일했다. 그러던 중 김연숙 선교사님이 세탁소에 들렀다가 나를 보고 세탁소일 할 사람으로는 안 보이셨는지 나도 모르게 뉴욕 찬양 신학교에 등록을 해버렸다. 신학교에 다니려면 월, 화 이틀을 일을 쉬어야 하는데 세탁소는 파트타임이 안 되었다. 고민이 되었지만 세탁소를 그만두고 신학교를 선택하고 그곳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그렇게 졸업했을 때 김연숙 선교사님이 또 나를 뉴욕연합신학교 상담학 박사 과정에 등록 해버렸다. 그래서 그 곳에서 “장애인에 대한 기독교적인 이해와 교회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쓰고 종교교육학 박사(D.RE) 학위를 받게 되었다.
베데스다 교회에서 장애인 교회 설립
목사안수는 작년 9월 미국 오순절성결교단에서 받았다. 안수 받으러 갈 때 베데스다 교회의 김원기 목사님과 우연히 함께 가게 되었다. 그 때 김원기 목사님이 앞으로의 목회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난 전혀 준비가 안되어있다고 대답했는데 김원기 목사님은 선뜻 자신의 교회를 사용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곳에서 지난 2월 20일에 장애인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다.
순복음뉴욕교회에서 교회밴 운전
정년 퇴직 후 세탁소에서 돈을 벌어가며 생활하다가 순복음뉴욕교회(담임 김남수 목사)에서 교회밴을 운전해가면서 생활했다. 그래서 새벽예배를 항상 가게 되었다. 순복음뉴욕교회 새벽예배 반주자들을 모두 대단한 피아니스트들인데 가끔 펑크가 나면 내게 대신 반주를 맡겨 영광스럽게 반주를 하곤 했다.
주일예배때는 성가대에도 꼭 섰다. 밴을 운전해야하기에 함께 성가대 연습을 할 수는 없었지만 조공자전도사가 나를 항상 성가대에 세워줬다. 전날 연습하라고 가사를 미리 챙겨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장애인 선교에 대한 꿈들을 서로 나눌 수 있었고 그 후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장애인교회엔 비장애인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
장애인 교회라고 해서 장애인만 오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을 돌봐줄 비장애인이 꼭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비장애인이 혼자 오겠다고 하면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하고 택시비를 주기고 한다. 초기에는 비장애인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 일대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교육자가 많이 부족한 상태다. 그리고 장애인 교회를 하다 보니 수화를 배워야 하는데 수화에도 한국수화, 영어수화, 다 달라서 그게 너무 아쉬웠다. 하나로 통일되면 좋겠다.
장애인 문서선교 준비중
장애인들은 교회에 오기도 힘들다. 그래서 마음문을 열기도 힘들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장애인 문서선교다. 장애를 극복한 훌륭한 사람들 즉, 헬렌켈러나 베토벤, 리빙스톤 등의 이야기가 주가 되게 해서 책자를 만들 것이다. 그 책자를 장애인들에게 전달하는 사역을 하고 싶다. 그래서 교회에 오기 힘든 장애인이나 교도소 같은 곳에 있는 이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게 하겠다.
장애인 성가대를 세우는 것이 목표
앞으로 ‘장애인 성가대’를 세울 것이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줄리아드대나 맨하튼 음대에 가보면 장애인은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 꿈나무를 개발해서 정상의 음악가가 될 수 있는 길을 열고 싶다. 조공자 전도사도 그런 뜻을 가지고 있어서 대화를 많이 나누곤 했다. 그래서 내년 장애인 교회 1주년 때 장애인 학생들을 모아서 경연대회를 열고 그 중 대학 가겠다고 하는 학생이 있다면 장학금도 지급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야채가게 캐셔 생활에서 받은 은혜
장애인 교회를 창립하면서 순복음뉴욕교회에서 했던 교회밴운전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지난 여름부터 브롱스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캐셔일을 하기 시작했다. ‘밤에 일하고 낮에 일하면 되겠지’하고 시작했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출퇴근 시간을 다 합하면 총 17시간이 되고 잠도 자야하고 식사도 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주인이 토요일을 빼주어서 5일만 일하다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만둘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 주인이 행사 시작 전 한달동안을 쉬게 해주고 행사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라고 해서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행사 마치고 다시 돌아갈 직장을 보장받게 되서 너무 감사했다.
장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 자선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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