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믿음이 강하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은 상대적으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반면에 믿음이 약하면 약할수록 세상과 타협하고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순간 이성을 쫓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기독교 교육과 일반 교육의 다른 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매우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일반 교육의 진리는 증명을 통해서 이해가 가능한데 비하여 기독교 교육의 진리는 증명을 통해서 학생들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기독교 교육의 진리는 ‘증명’을 통해서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기독교교육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사랑을 통해서만 생겨납니다. 사랑하면 믿을 수 있고, 사랑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해야만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겨야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을 하실 때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다윗의 왕이여’라며 소리 지르며 찬미했습니다.

그러나 가짜입니다.

그들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입술로는 찬송을 해도 속은 가짜란 말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혀 찬송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서입니다. 사랑을 하니까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 진정한 선물은, 물건 그 자체가 아니라 나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도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눈에 보이는 물질에 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내 영혼의 중심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드린 다는 것은 나의 시간과 몸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과 몸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리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나의 목소리와 나의 몸짓으로 주님을 높여드리는 것 그 이상의 것이 없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그가 부르는 곳 어디든지 달려가는 것처럼 주님과 내가 영원한 사랑에 빠지면 주님을 찬양하고 싶은 거룩한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한국 맹인 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앞을 못 보는 맹인들이지만, 그들의 얼굴과 찬양 소리는 한결같이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영적인 눈은 높은 보좌에 앉으신 그분을 향해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입니다.

지휘자도, 반주자도 악보도 없지만 그들의 간절한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천성을 향해 부르는 목소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들은 찬양을 입술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영으로 찬양을 부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찬양은 사랑하는 분에게 드리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우리 소리 높여 ‘최고의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소리’를 올려드리지 않겠습니까?

유태웅
퀸즈중앙장로교회 전도사
생면선선교회(Life Line Mission)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