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을 가면 밖에 여러 조형들을 보게 된다. 이중에서 아무 멋도 없이 새까만 벽이 서있고 맞은 편에 하얀 솥뚜껑 같이 생긴 것이 서있다. 이것은 사해사본 중에서 “빛의 자녀들과 어두움의 자녀들의 전쟁규정”(IQM)을 상징하며 그 아래에 두루마리들이 진열(Shrine of Scrolls)되어 있다. 흰 것은 두루마리를 담은 토기 뚜껑과 같이 만들었다.

나는 이제까지 왜 쿰란의 엣센파가 유다 사막에 나가서 경건 생활관 아울러 율법연구생활을 하였는지 그들의 목표, 이상, 신학적 배경을 그들 스스로 어떻게 의식하였는지 소개하였다. 그들은 “새 언약의 공동체”로(7회), 사막에서 율법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지키므로 “말씀의 샘물”을 파고 영생수를 마셔(8회), 하나님이 심기신 “영원한 식목”으로(9회), “이스라엘의 견고한 집”을(10회) 지으려고 하였다는 것을 소개하였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 또는 하나님의 분깃과 같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용어들이 있지만 쿰란 수도원의 자기 표현 중에 “빛의 자녀들”이라는 독특한 칭호가 있다.

공동체 규정의 첫머리에 그들이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에, 들어가는 목적이 “하나님의 총회에 그의 분깃에 따라 모든 빛의 자녀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보수에 그의 과오에 따라 모든 어두움의 자녀들을 미워하게 하려 함이다”고 맺는다(공동체규정 i.9-11). 쿰란에서는 빛과 어두움, 죽음과 생명, 진리와 거짓이 너무도 뚜렷하게 양분되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요한복음과 너무 비슷하여 신약 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쿰란에서는 “사람들의 길에 관하여 참된 보혜사 성령에 의하여 생명의 빛을 볼 때에 그의 모든 죄가 속죄함을 얻는다”(공동체 규정 iii. 6-7). 그의 마음에 우상을 가진 자는 언약의 저주가 따라 붙어 하나님에게서 떠나 악에게 속하며, 빛의 자녀들과 끊어지게 된다.(공동체규정 ii. 16). 두 영의 교훈을 가르치면서 빛의 자녀들에게 인간의 본성을 가르친다. 선한 영과 악한 영이 한 사람 안에서 싸우므로 “그의 분 깃의 모든 영들이 빛의 자녀들도 거치게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의 진리의 천사가 모든 빛의 자녀들을 돕는다”(공동체규정 iii. 24-25).

이와 같이 쿰란에서는 빛, 생명, 진리가 한 쪽에 속하고 어두움, 죽음, 거짓이 한 쪽에 있다. 쿰란 신학에서 아주 독특한 것은 선한 영과 악한 영의 두 영에 관한 신학이다. “하나님이 그의 권고의 날(최후의 심판 날)까지 사람들이 행하게 되는 두 영을 분정 하였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영과 거짓의 영입니다. 진리의 원천은 빛의 샘물이고, 거짓의 원천은 어두움의 샘물입니다. 모든 의의 자녀들에 대한 지배는 빛의 임금의 장중에 있고, 그들은 빛의 길로 행합니다. 거짓의 자녀들에 대한 모든 지배는 어두움의 천사의 장중에 있고, 그들은 어두움의 길로 행합니다. 어두움의 천사 때문에 모든 의의 자녀들의 잘못된 길로 빠집니다”(공동체규정 iii. 18-22). 빛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속하고 진리의 천사가 돕는다. 그리하여 이들은 진리의 자녀들(공동체규정 iv. 5, 6) 또는 의의 자녀들(공동체 규정 ii. 20; iii. 22, ix. 14)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어두움의 자녀들은 벨리알(Belial)의 지배 아래에 있다.(공동체 규정 ii. 4-5). 또는 “구덩이의 자식들”(공동체규정 x. 19, 다메섹 문서 vi. 15, xiii. 14)로 벌레들의 밥이다(공동페규정 xi.21). 이 표현은 이사야 예언자가 음부에 떨어진 바벨론 왕이 구더기 요를 깔고 지렁이 이불을 덮고 있다는 표현을 연상시킨다.(사14:11).

공동체규정에서 “그의 놀라우신 신비로부터 빛이 내 마음에 비취고, 영원하신 존재 안에서 나는 이 지혜를 보았습니다”고(공동체규정 xi. 5-6). 빛이 그의 마음을 비추어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한다. 감사찬송에서 예배자는 “오 주여 내가 주께 감사하나이다. 주께서 내 얼굴을 주의 언약으로 빛나게 하셨나이다”고 말한다(감사찬송 iv. 5,27에서도). 축복에서는 제사장이 받은 죄의 얼굴을 빛나게 할 수 있도록 간구한다(축복의 책 v. 27). 생명의 영원한 빛을 비취신다(감사찬송 xviii. 29).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박물관의 상징적 조형과 같이 빛의 자녀들의 크라이막스는 어두움의 자녀들과의 싸움이다. 여기에서는 빛의 자녀들이 구체적으로 레위와 유다와 베냐민의 자녀들로 나타나고, 어두움의 자녀들은 벨리알의 군대로, 구체적으로 에돔, 모합, 암몬의 군대와 동방과 블레셋 군대와 무엇보다고 앗수리아 킷팀족으로 나타나서 40년간 싸운다. 첫 7년은 전쟁을 준비하고, 안식년 네 번을 뺀 29년 동안 첫 9년은 동방의 셈족과 싸우고, 10년은 남쪽의 함족과, 10년은 북쪽의 야벳족과 싸운다.(전쟁규정 ii. 9-14). 빛의 자녀들과 어두움의 자녀들의 싸움은 막상막하로 빛의 자녀들이 세번 이기면 또다시 어두움의 자녀들이 세 번 이겨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벨리알의 군대를 쳐서 빛의 빛의 자녀들이 이긴다(전쟁규정 i. 13-14). “진실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계시도다”(전쟁규정 xiii.14). 종말의 전쟁으로 이 세상에서 지배하던 모든 어두움, 악, 거짓 벨리알의 세력이 다 소탕하게 된다.

쿰란의 공동체가 그들 스스로 “빛의 자녀들”이라고 말하고 어두움의 자녀들은 벨리알이 지배한다고 할 때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저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상기시킨다(고후4:4) 무엇보다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들 스스로를 “빛의 자녀들”로 인식하였다. 예수께서도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말씀하시고(눅16:8), 요한복음에서는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한다(요12:36). 바울은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살전5:5)

쿰란 공동체는 새 언약에 들어와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깨달으며 빛이 그 마음에 비취어 그의 얼굴도 빛나고 모든 거짓과 어둠의 세력을 다 이긴다고 믿었다. 이 어두움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하고 거짓을 행한대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모든 어두움의 자식들을 다 멸하고 새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모든 악의 세력, 어두움과 거짓의 세력이 속히 다 멸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