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두리하나 찬양단을 맡고 있는 탈북자 마영애씨는 지난 15일 웨체스터 효성교회에서 있었던 추석맞이 경로 잔치에서 짧은 간증과 더불어 아코디언과 양금을 연주했다.

마영애씨는 연주에 앞서 "여러분들을 보니 북에 두고 온 고향 친척들과 이웃이 생각납니다. 이 곳 미국에서는 마음껏 찬양하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습니까.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어 마음껏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성경책 한 권을 구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런 잔치 식탁을 마주할 때 마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가 생각이 납니다. 북한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300만이 넘는 노약자가 굶어죽었습니다. 여러분 북한 동포를 위해서 하루에 1분만이라도 기도해 주십시오, 커피 한 잔 씩 줄여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작년 4월 평양출신탈북자들을 주축으로 조직한 예술단을 이끌고 미국으로 온 그는, 아틀랜타에서 있었던 간증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해 줄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국정원측은 미국으로 오기 전 마씨에게 북한에 대해 언급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아틀랜타 공연이 끝난 후 시카고로 이동하는 중 그를 보호하고 감시했던 통일부 산하 남북청소년교류연맹 총재 정경섭씨는 마씨에게 "우리가 북한을 자극하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했는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마씨 부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에 돌아갔을 때, 자유롭게 간증하지 못할 뿐더러 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으로 판단, 결국 미국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마씨의 아들인 최효성군에게는 1달 후 돌아올 것을 약속했고, 작년 5월에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이미 끊어놓은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 정착 이후 몇 번의 시도끝에 아들 최효성군을 미국에 밀입국 시키려다 결국은 적발되어 지금은 추방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 다행이 감옥에서는 풀려나와 마씨와 함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추방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난민신청이 잘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 국회에서도 미이민국에 제 아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를 써 주셨고, 각지에서 제 아들을 돕기 위한 손길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끊임없이 간증하고 간증을 통해서 북한의 실상을 말하는 그에게 어떤 이가 "조금 약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안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자 마씨는 단호히 "그러면 안됩니다. 오히려 더 강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결국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시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양금 연주를 하면서 "제가 6살 때 부터 11년간 북한에서 음악 영재 교육기관에서 양금연주를 배웠습니다. 이전에는 이 악기로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우상을 찬양했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어 하나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한과 북한이 복음으로 통일 되는데에 헌신하길 원하고, 통일된 그날 평양에 교회가 세워지기 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간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