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계 모 기관 산하 북한인권 단체에서 탈북자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탈북자들은 이 단체가 브로커 역할을 자임, 북한 현지에서 탈북을 도와줄 것을 약속하고 브로커 비용까지 전달받았으나 탈북과정을 소홀히 다뤄 수차례 위기를 넘겼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한국 입국 후 브로커 비용을 반납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하는 등 탈북자들의 금전피해 제보까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본지는 이들 탈북자들의 피해사례를 정기적으로 연재한다.

첫회로 연재되는 탈북자 L씨는 지난 2003년 남편과 함께 탈북에 성공,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다. 북한에 두고 온 아들과 딸을 구하기 위해 교계 모 기관 산하 북한인권 단체의 도움을 얻으려 했으나 오히려 생명을 담보로 장사를 하는 파렴치한 행위에 치를 떨어야 했다고 증언했다.

“헉 헉..” 한치 앞 모르는 탈북여정, 지금도 사선 넘는 탈북자

탈북자 L씨가 북한 인권기관 I씨를 알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여름, 친구의 탈북을 돕던 도중 친구가 잡히자 이를 구하던 과정에서 I씨와 서로 얼굴을 알게 됐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L씨는 아들과 딸 두 자녀의 탈북을 I씨에게 맡기게 된다. L씨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탈북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으나 교계 기관 산하단체라는 점을 신용하고 브로커 비용까지 I씨에게 건네주게 된다.

L씨의 두 자녀는 지난해 11월 심양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 결과는 한국입국이었지만 탈북 과정에서 수차례 사선을 넘나들었다. 특히 탈북을 책임져야할 I씨는 이 과정에서 한 달여 동안 두 자녀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등 안일한 모습을 보였다.

L씨는 지난해 8월 I씨에게 브로커 비용 500만원을 건네면서 두 자녀의 탈북을 책임져 줄 것을 요청했다. 탈북이 성공한 이후 비용을 건네주는 것이 관례였으나 I씨가 “북한친구가 탈북 중에 잡혀 급히 구출해야 한다”고 사정해 500만원을 선불했다.

I씨가 L씨의 두 자녀의 탈북을 책임진 이후 두 자녀가 중국 땅을 밟게 된 날은 지난 2004년 10월4일, 이들은 심양에 10일날 도착해 11일 비행기로 몽골에 떠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몽골로 떠났다던 두 자녀의 소식이 한 달 동안 끊긴 것이다. L씨는 I씨에게 수차례 확인을 부탁했으나 기다려달라는 대답밖에 들을 수 없었다. 이 기간 중 I씨와 북한인권 단체에서 함께 일하는 ㅅ모씨에게도 연락을 했으나 이렇다 할 답변은 없었다.

I씨의 응답을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던 시기는 11월23일, 한달이 훨씬 지난 이후였다. 이날 I씨는 L씨에게“자녀들을 모두 넘겨 보내고 23일밤 몽골 국경으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L씨가 한달동안 소식이 끊어진점을 들어 직접 몽골로 가겠다고까지 했으나 I씨는 자신의 정보가 확실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L씨가 다음날인 24일 몽골대사관에 확인한 결과, 두 자녀는 몽골로 넘어오지 못하고 다시 중국으로 잡혀나갔다. 이에 L씨는 I씨에게 확인을 요청했고 I씨는 “두 자녀가 심양에 잡혀 있다. 수습중이니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긴다.

브로커에 송금 못해 차질..전화통화론 ‘수습 중’ 대답만

L씨의 두 자녀는 몽골국경에서 중국으로 넘겨서 단동을 거져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다. 한국기도로 낙인찍혀 L씨의 두 자녀는 다시 한번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특히 몽골 탈출이 실패한 이유는 I씨가 현지 브로커들에 현금을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지 브로커들이 계획대로 두 자녀의 몽골탈출까지 기획하고 실행하려 했으나 끝내 I씨로부터 입금되지 않아 몽골 국경수비대에 두 자녀의 탈북사실을 고발했다.

이 과정에서도 I씨는 두 자녀의 행방에 대해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I씨는 두 자녀의 행방을 묻는 L씨에게“몽골국경에 감옥이 세워져 거기에 갇혀 있다”고 전달하고 “두 자녀를 구출해 보겠다”고 말했으나 L씨가 나름대로의 루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 두 자녀는 이미 몽골 국경에서 단동을 거쳐 신의주로 넘겨진 상태였다.

두 자녀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은 23일 몽골 국경을 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도중 브로커들이 밤 9시에 국경을 넘을 것을 권유, 철조망을 넘던 중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몽골 국경수비대에 발각돼 중국으로 송환됐다. 보통 국경을 넘는 시간대가 이보다 이르다는 점에서 브로커들이 의도적으로 시간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몽골 국경수비대에 넘겨진 이들은 대략 10여명으로 모두 I씨가 중국현지에서 5~6년간 돈을 벌고 정착하고 있던 이들에게 한국행을 권유, 이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10여명의 아이들의 한국행을 맡았던 브로커들은 I씨로부터 자금을 전달 받기로 했으나 I씨로부터 송금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화 연락마저 두절돼 경비대에 넘겼다. 당시 몽골 국경수비대는 이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중국에서 5~6년간 벌었던 돈도 모두 압수했다.

L씨의 딸은 "함께 잡혀 있던 이들이 돈을 모두 뺏긴 후에 '만일 살아있다면 I씨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억울해 했다"고 말했다. L씨는 "우리 자녀들은 지금 살아 돌아왔지만 이들 대부분이 아직도 잡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안으로 넘겨진 이들은 중국 단동을 거쳐 북한 신의주로 강제 북송됐다. L씨의 자녀들은 북한 보위부로 넘겨져 다시 생사를 오가는 삶을 살아야 했다. L씨의 딸은 "한국기도라는 죄명이 붙으면 대부분 죽음"이라고 말했다.

기적같은 탈북, 그러나 "I씨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못받아"

신의주 감옥에 갇혀 있던 L씨의 두 자녀는 기적적으로 다시 탈북에 성공하게 된다. L씨가 현지 관계자를 통해 L씨의 자녀들을 중국에서 인계를 받아 심양에서 한국으로 탈북에 성공한 것이다. 심양에서도 여권이 다음날 바로 나왔는데 주변 탈북자들이 이같은 사례를 두고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자녀는 무사히 L씨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L씨의 자녀들의 탈북과정에서 일을 그르쳤던 I씨로부터는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L씨는 분통을 터트렸다. 또 두 자녀들은 이 과정에서 사선을 넘나들었으나 정작 I씨로부터 500만원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L씨에 따르면 I씨에 수차례 독촉했으나 I씨는 오히려 "도와주려다 그랬다. 돈을 떼먹지 않는다"는 대답만 했다고 한다. 특히 이러한 과정이 1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어 L씨는 현재 마음에 상처를 안은채 돈은 포기하겠다는 의지마저 든다고 말했다.

L씨는 "여기서 얼마 안되는 돈이라고 말할수도 있지만 그 500만원은 우리 부부가 피땀을 흘려서 번 돈"이라며 "주변 사람들이 증거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L씨와 같은 피해를 호소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어 교계기관 차원의 신속한 정리가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