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한국교회에는 보수교단인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양교단이 여성 목사 안수를 통과시킴으로서 여성 안수에 대한 과감한 첫 발을 디딘바 있다. 본지는 지난 5월말 목사 취임식을 가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첫 여목사들을 만나 여성 목회의 현장의 소리를 들어보고 있다.
김어진 목사(임마누엘성결교회)에 이어 만난 영광복음선교회 문수영 목사(사진)는 현재 남대문 경찰서를 중심으로 재건대원(넝마주이: 돌아다니면서 넝마, 헌 종이, 빈병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주워 모으는 사람을 일컫는 말)들과 구두닦기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회활동을 벌이고 있다. - 편집자주
- 여성 목회자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오셨는지요.
"저는 신학을 공부하기 전 고시공부를 하다가 아파서 죽게 된 계기로 은혜를 받고 결심을 했죠. 하나님 앞에 제가 헌신을 하기로 작정을 했어요. 시집을 가고 안가고가 문제가 아니었죠. 결론적으로 이 나이가 먹도록 시집을 못갔지만(웃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윤락여성 선교를 시작했어요. 그들의 수용소인 부녀보호소에 들어가서 거기서 개인전도 활동을 하고 그리고 신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그쪽 일을 못하게 되었어요. 그 기관이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면서 그곳 원장님이 기독교 계통의 상담원을 원치 않아서 그때부터 남대문 경찰서를 중심으로 재건대원(넝마주이)들과 구두닦기를 하는 분들을 전도하기 시작했어요. 그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죠.
그 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많고 몸이 불구이고 오갈 때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수용시설 만들었고 같이 살면서 그 사람들을 제자화 훈련을 시켰어요. 대개 공부를 못한 사람들인데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수준을 높였어요. 주로 운전교육이 효과를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립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가 이사를 오게 되면서 동네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동네에 가난한 분들이 많아서 일주일에 두 번씩 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 목회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제가 하는 일이 사람을 키우는 일인데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살지 못해서 사회에 대한 원망,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라서 제가 많이 부딪혔어요. 싸우기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했답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죠. 개개인과 접촉을 하며 키워나가는 일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전부 검정고시로 나와서 대학, 대학원까지 졸업해서 목사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아시다시피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결혼이 힘들어요. 그런데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다 보니 외로운 사람들이 저를 어머니로 생각을 하고 할머니로 생각을 하고, 저한테는 상당히 가족이 많이 생겼죠. 키울 때는 어려웠지만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이제 다 자립하고 가정을 일구고 살면서 명절이면 다 저한테 오거든요. 참 보람이 있어요.
그러나 괴로운 일도 많았어요. 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과거에 군대를 갔다가 매를 맞아서 뇌를 다쳤어요. 그 사람이 집에서 나와서 재건대원 생활을 했어요. 갈 곳이 없으니 우리 선교회로 왔는데 그 사람이 정신발작을 하면 사람들이 힘들어서 그만 내보자고 했습니다. 갈등이 많았어요. 정신병원에 보내면 한달있다가 나오면 우리에게 또 왔어요. 불쌍해서 받아주고 받아주고 그랬는데, 정신발작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괴로워했죠.
제가 그래서 전도활동을 나갈 때 꼭 차에 태워서 다녔습니다. 그때마침 시골에 노인들, 장애자들을 보살펴주고 농사도 짓는 '영광의 집'이라는 시설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 양반이 그날 제초제를 먹고 운명했어요. 그 때 실망을 많이 했고 하나님께 '왜 이런 험한 꼴을 보게 하시냐'고 항의하고 그랬었는데 제 몸이 아프더라구요. 그냥 힘이 빠져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때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선교회 형제들이 전과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새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복음의 힘을 느끼고 감사했지만 실패한 것도 많아요. 그렇게 저와 많이 부딪히던 친구도 생일 때 잠옷 선물을 하고는 자살을 했지요. 그런 경우가 참 괴로운 일이죠"
- 한국교회내 여성목회자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요.
"처음에 우리 교단에서 여성안수를 주지 않았는데, 여성안수에 대한 필요성을 참 많이 느껴왔습니다. 제가 하는 사역에서 보살피는 사람들이 경찰서에 잡혀가면 보호자가 없어서 나오게 될 때 못 나오니까 까 그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사회에서는 목사는 알아도 전도사는 잘 모르거든요. 그런 경우에 굉장히 어려웠어요.
제 사역가운데 목사안수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성결교회 여성안수 추진위원회'서 연합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목사가 되고 나니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훨씬 저의 말에 사람들이 무게를 실어줍니다.
목사안수를 받은 지 얼마 되지않아 바로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유교전통, 남존여비 사상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안수가 일찍 시작된 교단의 여 전도사님들과 목사님들을 봤을 때 상당히 설 자리를 잃으셨다고들 합니다. 일반목회에서는 '여성'이 참 힘이 듭니다.
똑같은 부교역자인 경우에도 남자 목회자를 선호하고, 여성 신도들조차도 여성 목회자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일반 목회에서 여성목회자의 설자리가 약한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여성목회자들이 꼭 일반목회만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여성이기에 더 사역할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저는 은사중심, 재능중심의 한국교회가 되어서 여성들도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예를 들면 어린이, 노인, 남자선교회에 여성이 더 필요한 것을 봅니다.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결국은 다 교회가 되니까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사역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자신을 원치 않는 곳에 굳이 갈 필요는 없잖아요. 막힌 곳이 있으면 뚫린 곳으로 가면 되는 겁니다. 점차 자라나는 세대들은 남녀차별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남자, 여자가 아니라 능력, 은사에 따라 일할 수 있는 교회가 되지요"
- '여성 안수는 비 신학적, 비 성경적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결교단에서 '여성안수 추진위원회'를 만들 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여성안수를 기뻐하십니까'라고 주님께 물었지요. 그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세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법에서는 여자가 증인이 못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의 첫 증인으로 여성을 세우셨지요. 그리고 그 당시는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부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을 만지시면서 그런 것들을 깨셨습니다. 그 분의 원칙은 사랑이었고 사람이었지, 결코 어떤 제도나 그런 것들이 그분을 굴레 씌우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또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말씀도 그때 그곳의 상황이지 전체가 아닌데 이상하게 부분에 얽매이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본 줄거리는 그게 아니잖아요. 바울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중에서 여자를 먼저 세웠습니다. 여성이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12제자에는 안 들어갔지만 여제자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은 그것을 상관하지 않으셨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성안수 추진위원회' 활동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기도했지요. 그 때 사도행전에 보면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것을 먹으라 했을 때 베드로가 '나는 이런 것 안 먹는다' 했던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셨어요. 그런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부정하다 하지말라'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씀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성결교회에서도 처음에는 여성안수가 '성서적인가', '비성서적인가'를 두고 서로 토론했는데 '그런 논의는 접자. 그렇다면 먼저 여성안수를 허용한 교단은 비성서적이냐' 해서 그런 논의를 그만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시대적 요청이냐', '시기상조냐'를 두고 논의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늦어져 작년에 극적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아직 안수를 받은 지 몇개월 안되었지만 단독목회를 하시는 분들이나, 병원 등 특수선교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훨씬 사역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안수이후 더 탄력을 받았죠. 더 능력있게 일할 수 있을 거에요"
- 아직도 여성안수가 허용되지 않은 교단 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목회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참 안타까워요. 저도 이전에 힘들었던 적이 많아요. 예를 들면 제가 다녔던 대학 동문모임이 있는데 그곳에 전도사는 숫자가 적어요. 더 유능한 사람이고 그렇지만 일단은 전도사여서 참여도가 낮고 주도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렵죠.
다른 교단에서도 일단은 전도활동, 선교활동를 하라고 한다면 안수를 주어서 사역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 왜 발목을 잡아요. 그래서 교단이탈을 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우리교단에서도 그런 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용기가 없어서 교단을 옮기는 일을 못했지만, 저는 사역을 위해서라면 교단을 옮기는 것에 대해 비난할 의향이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교단에 꼭 남아서 사역을 해야 하겠다면 여성안수 허용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안수 허용을 위해 활동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을 위해서 다른 교단으로 옮기든지, 그 교단에 있으려면 소신껏 여성안수를 위해 일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것이 이뤄져야 다음 사람들, 후배들이 일하잖아요"
- 그동안 일해오셨던 '여성안수 추진위원회'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저는 전혀 과격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호소했습니다. 교단지를 통해 호소하고 또 대의원들에게 호소문을 많이 보냈습니다. 또 집회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호소했습니다. 저만 간 것이 아니라 '여성안수 추진위원회'에 소속된 전국 여교역자회, 권사회 등등의 기관에 속한 여전도사님 권사님들아 모두 나서서 로비활동을 벌였습니다.
개별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다 해야지' 그러세요. 그런데 투표소 들어가서는 또 달라지시더라구요. 안타까웠어요. 많은 분들이 '언젠가는 될거다. 그런데 시기상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실 때 저는 이야기 했죠. '시기상조라고만 하지말고 지금 되면 얼마나 좋아요'라고요. 이 일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어떤 목사님은 수술을 하고 나서 도저히 오실 수 없는 상황이셨는데 사모님께서 죽을 써주시면서까지 총회에 참석하셔서 여성안수 위해 활동해주시고 너무도 감사합니다. 또 총회장님과 임원님들도 여성안수 해줬다고 욕을 얻어 먹으면서도, 이후 후속조치위원님들도 욕을 먹으면서도 많은 노력을 해주셨어요. 감사드려요.
여성안수 추진위원들도 수고했지만 욕을 얻어 먹으면서도 수고해주신 분들이 많아요. '예수님 오실 때까지 반대하시는 분들, 일어나세요' 해서 여러 분들이 일어났었는데 그런 분들도 이제 기정사실화 하시고 받아들여주시니 감사해요. 이것때문에 교단에 분열이 일어나고 그러면 안되는데 참 감사하지요"
- 목회활동에 있어서 '여성이라서 이것이 좋다'라고 하실 수 있는 점이나 '이런 부분은 어렵다'라고 하시는 점이 있으시다면.
학문적인 것, 권위적 면은 놔두고서라도 여성은 여성 나름의 섬세함이 있고 사랑이 많습니다. 남성들 보다 어머니적인 사랑인 있으니까 목회에서 큰 장점이 되지요. 또 남자들의 경우 금전적으로 사고를 많이 하는데 여성은 이 부분이 좀 약해서 주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세상에는 어머니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곳이 많습니다. 약한 자들, 소외된 자들, 어린 자들에게 특히 어머니같은 사랑이 필요해요. 병원도 그렇지요. 여성의 힘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이렇게 필요한 곳에 가서 일해야지 필요로하지 않는 곳에 왜 가겠습니까.
어려운 점은 개인적으로 학교를 다닐 때는 남학생, 여학생이 차이가 없는데,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가 은혜를 받고 목회의 길로 들어선 분들이 계시는데 가정과 목회활동을 병행하는데 고생이 많습니다.
각자가 하나의 은사, 재능, 노하우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디에서 일하든 유능한 사람이 되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그런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집에서 글을 쓰는 친구인데 꾸준하게 활동을 하면서 녹슬지 않고 점점 빛을 발하고 있어요. 이제는 문이 활짝 열려서 스스로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죠. 무엇이든 좌절하지 않으면 가능합니다. 하려고 하면 다 되요.
물론 다 잘해야 겠지만 여자 목회자들이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개교회에서 여성 목회자를 안 쓰려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여성 목회자들이 더 유능하고 그래서 모두가 필요로하는 여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어진 목사(임마누엘성결교회)에 이어 만난 영광복음선교회 문수영 목사(사진)는 현재 남대문 경찰서를 중심으로 재건대원(넝마주이: 돌아다니면서 넝마, 헌 종이, 빈병 등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주워 모으는 사람을 일컫는 말)들과 구두닦기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목회활동을 벌이고 있다. - 편집자주
- 여성 목회자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오셨는지요.
"저는 신학을 공부하기 전 고시공부를 하다가 아파서 죽게 된 계기로 은혜를 받고 결심을 했죠. 하나님 앞에 제가 헌신을 하기로 작정을 했어요. 시집을 가고 안가고가 문제가 아니었죠. 결론적으로 이 나이가 먹도록 시집을 못갔지만(웃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윤락여성 선교를 시작했어요. 그들의 수용소인 부녀보호소에 들어가서 거기서 개인전도 활동을 하고 그리고 신학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그쪽 일을 못하게 되었어요. 그 기관이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면서 그곳 원장님이 기독교 계통의 상담원을 원치 않아서 그때부터 남대문 경찰서를 중심으로 재건대원(넝마주이)들과 구두닦기를 하는 분들을 전도하기 시작했어요. 그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죠.
그 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많고 몸이 불구이고 오갈 때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수용시설 만들었고 같이 살면서 그 사람들을 제자화 훈련을 시켰어요. 대개 공부를 못한 사람들인데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수준을 높였어요. 주로 운전교육이 효과를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립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가 이사를 오게 되면서 동네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동네에 가난한 분들이 많아서 일주일에 두 번씩 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 목회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제가 하는 일이 사람을 키우는 일인데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살지 못해서 사회에 대한 원망,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라서 제가 많이 부딪혔어요. 싸우기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했답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죠. 개개인과 접촉을 하며 키워나가는 일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전부 검정고시로 나와서 대학, 대학원까지 졸업해서 목사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아시다시피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결혼이 힘들어요. 그런데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다 보니 외로운 사람들이 저를 어머니로 생각을 하고 할머니로 생각을 하고, 저한테는 상당히 가족이 많이 생겼죠. 키울 때는 어려웠지만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이제 다 자립하고 가정을 일구고 살면서 명절이면 다 저한테 오거든요. 참 보람이 있어요.
그러나 괴로운 일도 많았어요. 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과거에 군대를 갔다가 매를 맞아서 뇌를 다쳤어요. 그 사람이 집에서 나와서 재건대원 생활을 했어요. 갈 곳이 없으니 우리 선교회로 왔는데 그 사람이 정신발작을 하면 사람들이 힘들어서 그만 내보자고 했습니다. 갈등이 많았어요. 정신병원에 보내면 한달있다가 나오면 우리에게 또 왔어요. 불쌍해서 받아주고 받아주고 그랬는데, 정신발작을 하면 사람들이 많이 괴로워했죠.
제가 그래서 전도활동을 나갈 때 꼭 차에 태워서 다녔습니다. 그때마침 시골에 노인들, 장애자들을 보살펴주고 농사도 짓는 '영광의 집'이라는 시설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 양반이 그날 제초제를 먹고 운명했어요. 그 때 실망을 많이 했고 하나님께 '왜 이런 험한 꼴을 보게 하시냐'고 항의하고 그랬었는데 제 몸이 아프더라구요. 그냥 힘이 빠져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때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선교회 형제들이 전과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새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복음의 힘을 느끼고 감사했지만 실패한 것도 많아요. 그렇게 저와 많이 부딪히던 친구도 생일 때 잠옷 선물을 하고는 자살을 했지요. 그런 경우가 참 괴로운 일이죠"
- 한국교회내 여성목회자에 대한 편견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요.
"처음에 우리 교단에서 여성안수를 주지 않았는데, 여성안수에 대한 필요성을 참 많이 느껴왔습니다. 제가 하는 사역에서 보살피는 사람들이 경찰서에 잡혀가면 보호자가 없어서 나오게 될 때 못 나오니까 까 그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사회에서는 목사는 알아도 전도사는 잘 모르거든요. 그런 경우에 굉장히 어려웠어요.
제 사역가운데 목사안수의 필요성을 절감했기에 '성결교회 여성안수 추진위원회'서 연합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목사가 되고 나니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는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훨씬 저의 말에 사람들이 무게를 실어줍니다.
목사안수를 받은 지 얼마 되지않아 바로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유교전통, 남존여비 사상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안수가 일찍 시작된 교단의 여 전도사님들과 목사님들을 봤을 때 상당히 설 자리를 잃으셨다고들 합니다. 일반목회에서는 '여성'이 참 힘이 듭니다.
똑같은 부교역자인 경우에도 남자 목회자를 선호하고, 여성 신도들조차도 여성 목회자를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일반 목회에서 여성목회자의 설자리가 약한 것이 사실이죠. 그러나 여성목회자들이 꼭 일반목회만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여성이기에 더 사역할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저는 은사중심, 재능중심의 한국교회가 되어서 여성들도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예를 들면 어린이, 노인, 남자선교회에 여성이 더 필요한 것을 봅니다.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결국은 다 교회가 되니까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사역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자신을 원치 않는 곳에 굳이 갈 필요는 없잖아요. 막힌 곳이 있으면 뚫린 곳으로 가면 되는 겁니다. 점차 자라나는 세대들은 남녀차별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남자, 여자가 아니라 능력, 은사에 따라 일할 수 있는 교회가 되지요"
- '여성 안수는 비 신학적, 비 성경적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결교단에서 '여성안수 추진위원회'를 만들 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여성안수를 기뻐하십니까'라고 주님께 물었지요. 그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세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유대법에서는 여자가 증인이 못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의 첫 증인으로 여성을 세우셨지요. 그리고 그 당시는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부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을 만지시면서 그런 것들을 깨셨습니다. 그 분의 원칙은 사랑이었고 사람이었지, 결코 어떤 제도나 그런 것들이 그분을 굴레 씌우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또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말씀도 그때 그곳의 상황이지 전체가 아닌데 이상하게 부분에 얽매이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본 줄거리는 그게 아니잖아요. 바울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중에서 여자를 먼저 세웠습니다. 여성이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12제자에는 안 들어갔지만 여제자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은 그것을 상관하지 않으셨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성안수 추진위원회' 활동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기도했지요. 그 때 사도행전에 보면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것을 먹으라 했을 때 베드로가 '나는 이런 것 안 먹는다' 했던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셨어요. 그런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부정하다 하지말라'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씀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성결교회에서도 처음에는 여성안수가 '성서적인가', '비성서적인가'를 두고 서로 토론했는데 '그런 논의는 접자. 그렇다면 먼저 여성안수를 허용한 교단은 비성서적이냐' 해서 그런 논의를 그만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시대적 요청이냐', '시기상조냐'를 두고 논의하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늦어져 작년에 극적으로 통과되었습니다. 아직 안수를 받은 지 몇개월 안되었지만 단독목회를 하시는 분들이나, 병원 등 특수선교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훨씬 사역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안수이후 더 탄력을 받았죠. 더 능력있게 일할 수 있을 거에요"
- 아직도 여성안수가 허용되지 않은 교단 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목회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참 안타까워요. 저도 이전에 힘들었던 적이 많아요. 예를 들면 제가 다녔던 대학 동문모임이 있는데 그곳에 전도사는 숫자가 적어요. 더 유능한 사람이고 그렇지만 일단은 전도사여서 참여도가 낮고 주도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렵죠.
다른 교단에서도 일단은 전도활동, 선교활동를 하라고 한다면 안수를 주어서 사역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지 왜 발목을 잡아요. 그래서 교단이탈을 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우리교단에서도 그런 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용기가 없어서 교단을 옮기는 일을 못했지만, 저는 사역을 위해서라면 교단을 옮기는 것에 대해 비난할 의향이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교단에 꼭 남아서 사역을 해야 하겠다면 여성안수 허용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안수 허용을 위해 활동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을 위해서 다른 교단으로 옮기든지, 그 교단에 있으려면 소신껏 여성안수를 위해 일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것이 이뤄져야 다음 사람들, 후배들이 일하잖아요"
- 그동안 일해오셨던 '여성안수 추진위원회' 활동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저는 전혀 과격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호소했습니다. 교단지를 통해 호소하고 또 대의원들에게 호소문을 많이 보냈습니다. 또 집회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호소했습니다. 저만 간 것이 아니라 '여성안수 추진위원회'에 소속된 전국 여교역자회, 권사회 등등의 기관에 속한 여전도사님 권사님들아 모두 나서서 로비활동을 벌였습니다.
개별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다 해야지' 그러세요. 그런데 투표소 들어가서는 또 달라지시더라구요. 안타까웠어요. 많은 분들이 '언젠가는 될거다. 그런데 시기상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실 때 저는 이야기 했죠. '시기상조라고만 하지말고 지금 되면 얼마나 좋아요'라고요. 이 일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어떤 목사님은 수술을 하고 나서 도저히 오실 수 없는 상황이셨는데 사모님께서 죽을 써주시면서까지 총회에 참석하셔서 여성안수 위해 활동해주시고 너무도 감사합니다. 또 총회장님과 임원님들도 여성안수 해줬다고 욕을 얻어 먹으면서도, 이후 후속조치위원님들도 욕을 먹으면서도 많은 노력을 해주셨어요. 감사드려요.
여성안수 추진위원들도 수고했지만 욕을 얻어 먹으면서도 수고해주신 분들이 많아요. '예수님 오실 때까지 반대하시는 분들, 일어나세요' 해서 여러 분들이 일어났었는데 그런 분들도 이제 기정사실화 하시고 받아들여주시니 감사해요. 이것때문에 교단에 분열이 일어나고 그러면 안되는데 참 감사하지요"
- 목회활동에 있어서 '여성이라서 이것이 좋다'라고 하실 수 있는 점이나 '이런 부분은 어렵다'라고 하시는 점이 있으시다면.
학문적인 것, 권위적 면은 놔두고서라도 여성은 여성 나름의 섬세함이 있고 사랑이 많습니다. 남성들 보다 어머니적인 사랑인 있으니까 목회에서 큰 장점이 되지요. 또 남자들의 경우 금전적으로 사고를 많이 하는데 여성은 이 부분이 좀 약해서 주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세상에는 어머니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곳이 많습니다. 약한 자들, 소외된 자들, 어린 자들에게 특히 어머니같은 사랑이 필요해요. 병원도 그렇지요. 여성의 힘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이렇게 필요한 곳에 가서 일해야지 필요로하지 않는 곳에 왜 가겠습니까.
어려운 점은 개인적으로 학교를 다닐 때는 남학생, 여학생이 차이가 없는데,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가 은혜를 받고 목회의 길로 들어선 분들이 계시는데 가정과 목회활동을 병행하는데 고생이 많습니다.
각자가 하나의 은사, 재능, 노하우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디에서 일하든 유능한 사람이 되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 그런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집에서 글을 쓰는 친구인데 꾸준하게 활동을 하면서 녹슬지 않고 점점 빛을 발하고 있어요. 이제는 문이 활짝 열려서 스스로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죠. 무엇이든 좌절하지 않으면 가능합니다. 하려고 하면 다 되요.
물론 다 잘해야 겠지만 여자 목회자들이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개교회에서 여성 목회자를 안 쓰려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여성 목회자들이 더 유능하고 그래서 모두가 필요로하는 여성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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