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에서 10년차 이상된 선교사 세 명이 9.11테러 이후 관심이 촉발된 이슬람 지역의 실상을 알리고, 새로운 선교의 기회가 열리고 있는 이 지역 선교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한민족복지재단, CTS기독교TV, 한국강해설교학교는 최근 기독교TV 11층 컨벤션홀에서 ‘한국교회 이슬람 선교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2005한국이슬람선교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강의는 교민 1.5세대로 미국에서 NGO활동을 하다가 92년 중앙아시아로 파견된 홍성집(실크로드 순회) 선교사와 이란에서 19년간 사역하며 테헤란 한인교회를 맡아오던 이만석 선교사(현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13년간 우즈베키스탄에서 복음전파 및 NGO 사역을 해 온 김경일 선교사가 맡았다.

아프가니스탄의 사례를 소개하며 무슬림 사역에 사전 준비와 전략적 접근을 강조한 홍성집 선교사는 이날 “사회와 정부의 핍박뿐 아니라 목숨을 걸고 믿는 강한 무슬림 지역의 현지인들을 무책임하게 전도하면 안된다”며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달란트로 큰 그림을 가지고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선교사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은 근 3년 전부터 선교의 문이 열려 ‘희년’의 때를 맞은 상황. 2001년 8월, 8명의 선교사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민족을 위해 중보기도운동에 나섰을 때 이미 사람들은 ‘아프간의 희년’이 왔다고 말했다. 이 때 아프가니스탄은 유럽과 미국의 여러 선교사들로 구성된 이 8명에 대해 전 이슬람권에 본보기로 삼기 위해 공개 재판을 열었다. 그러나 알카에다가 9.11테러를 자행하면서 알카에다의 수뇌부인 아프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선교 환경은 급격히 달라졌다. 당시 공개 재판 후 행방이 알려지지 않던 8명의 선교사들은 무사히 풀려 나왔고, 그해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전세계 기도운동이 시작되면서 세계 곳곳의 탈리반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홍 선교사는 “3년 전 아프가니스탄 선교의 문이 열렸던 당시가 기회”라며 “복음의 문이 닫힌 지역이 열릴 때를 대비하여 인근 국가에서 언어를 공부하고 문화에 적응하여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등 주변국 선교사가 아프간의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빠른 시간 내 언어를 구사하고 문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중앙아시아에서 한 국가씩 열어주신 것처럼 이란을 비롯한 페르시아 아랍권도 계속해서 여실 것이다”며 “미리 젊은이들을 유학 보내 언어를 준비시키고, 선교접근제한지역의 민족을 위해 기도하자”며 페르시아창(이란, 아프간, 타지키스탄, 쿠르드 등) 선교에 동참하기를 촉구했다.

이만석 선교사는 이슬람 인구가 급증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란에 대한 관심과 선교적 대응을 요청했다. 이 선교사는 “무슬림들은 국가차원에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정부와 고위층을 상대로 정책적으로 파고들고 있다”며 “이슬람은 기독교를 세밀하게 연구하고 침투하는데, 교회가 이슬람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완전히 불공평한 게임이 아니냐”며 반문했다. 기독교 국가인 영국에서는 이슬람 교도가 사원에서 예배 드리는 인원이 성공회 예배 인원을 이미 추월했으며 프랑스, 독일 등 G7국가에서도 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수없이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동남아시아 공략을 위해 한국을 이슬람 본거지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정부가 제공한 부지에 이슬람 대학이 설립되고,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가르치는 법안이 통과된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엄청난 물량 공세로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들이거나 아랍어 강의를 위해 이슬람 선교사를 파송한다면 자연스럽게 국내 무슬림 세력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슬람 장학금으로 아랍에 유학을 갖다온 이들도, 막연히 이슬람을 긍정적으로만 소개한다면 엄청난 홍보효과를 보는 것이다.

특히 이 선교사는 소수 이슬람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랑의 종교’, ‘부드러운 종교’로 이슬람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우려하며 노회, 총회 차원에서 이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이란 일간지에는 ‘이슬람을 모독하고 무함마드와 코란을 모독한 자는 그 자리에서 죽여도 괜찮다’는 식의 무슬림 강경파의 칼럼이 버젓이 실린다는 것이다. 코란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결코 이슬람이 부드러운 종교가 아님을 알 수 있다고 이 선교사는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 때 세계를 정복했으며 지금은 무슬림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의 종교적 상황을 전했다. 이란 종교지도자는 ‘시아파 전체의 최종 결정권자’로 불리며, 실제 그의 말 한마디는 마치 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 시작 전 30분간 미국을 저주하는 기도를 하기도 한다. 또 이란은 미국대사관 탈취기념일을 제정하여 지키고 있다. 최근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도 출마 자격을 시아파로 제한하고, 1천여명이 넘는 후보자에서 국가가 추천한 사람 중 한 명을 선택하는 식의 ‘이슬람식 민주주의’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작년 국회의원의 선거에는 개혁 성향을 띤 국회의원의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놀랍게도 이란 국민들은 반대 급부로 점차 마음이 열리고 있다고 전했다. 79년 회교혁명 이후 환율이 곤두박질 치면서 국민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비롯됐다. 과거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중동의 파리’라 부를 정도로 부흥했었으나, 지금은 전 가족이 생계에 뛰어들어도 저축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한다. 변함없이 율법을 강요하는 이란 정부에 국민들은 ‘돌파구’를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회의 심한 압박에도 개종을 부인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보며 기독교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이란인의 마음에 번개탄을 집어넣으셨다”며 “지금이라도 이란으로 간다면 이란 선교의 선구자가 될 것”이라며 이란과 이슬람 선교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을 요청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상황을 전한 김경일 선교사는 반아랍주의를 표방하던 우즈베키스탄이 9.11테러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추방당하면서 암울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 침체와 민심 이탈 현상으로 아랍국에서 7억 달러를 지원 받은 우즈벡은 근본 과격주의에만 적용시키던 종교법을 기독교 선교사들에게까지 적용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선교사들은 과거 활동 기록과 투서 등을 통해 교묘하게 강제 추방됐으며, 우즈벡 한민족복지재단 대표 소장으로 있던 김 선교사도 추방 됐다. 외국 선교사들의 추방은 한편으로는 현지인 리더십으로 이양되는 장점이 있었다. 김 선교사는 이후 카자흐스탄 알마타로 사역지를 변경하고 국경지역에서 우즈벡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시킬 계획을 밝혔다.

김경일 선교사는 “집중 전도 지역인 투르크 세력권에 열매가 많지 않으나 복음 전파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며 “회교권 최고의 황금어장인 중앙아시아에 뜨거운 열정과 복음의 확장에 나서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