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퀸즈장로교회에서(담임 장영춘 목사) 7월 8일부터 8월 13일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6주 동안 열 두 차례 강의에 걸쳐서 2005 예배학교를 연다. 이번 예배학교에서는 찬양을 통한 예배의 발견과 회복, 그 안에서 느끼는 기쁨을 목적으로 한다.
8일 첫 번째 시간으로 뉴저지 포도나무교회 담임 최혁 목사가 ‘현대예배’란 주제를 가지고 강사로 나섰다. 최목사는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성경구절을 바탕으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다음은 최목사 강의 요약문이다.
“모짜르트 음악은 모차르트 때 맞는 것이다. 지금 시대 때 오늘날 맞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 하심이 중요하다. 그 임재는 어떻게 친밀하게 올 수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서는 참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나와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이 있는데, 예배는 하나님과 교제이고 사역은 일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예배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열심히 음식을 준비했다. 이것은 사역이라 할 수 있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 밑에서 말씀을 들었다. 마르다는 예수님한테 내 동생 마리아를 데려와서 일하게 하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마리아가 가장 좋은 것을 택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예배’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배에 관심이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예배 때 무관심하고 졸고 형식적으로 드리는 의식 등등. 요한계시록을 죽 보면 예배 싸움이다. 예배와 찬양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하나님을 경배하겠느냐. 사탄을 경배하겠느냐. 이 둘 중에 하나이다. 예배회복을 통한 하나님과 교제. 이것이 일생의 화두이다. 하나님과 참 경배자가 되겠다는 것, 오늘도 하나님께 조금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 맨 마지막에 누구를 경배하느냐 하는 싸움인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선행을 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선행을 물론 해야 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거기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된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교회에는 발렌스가 맞춰져야 한다. 사역에만 너무 치중해서는 안되고 예배가 우선 되어야 한다.
예배는 아버지와 자녀의 교제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남녀가 연애할 때 소곤소곤하는 것처럼 기쁨이 있는 것이 예배이다. 또 예배는 요가가 아니라 대상이 있는 것, 아버지를 향한 초점이 분명해야 한다. 수년 전에 샌디에고에서 발생한 천국의문 사건이 있다. 30명이 다 자살한 사건인데, 교주 디도를 보면 목사의 아들로 어렷을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서 목사가 되었고 성악가로서 찬양을 많이 알았던 자였다. 그런데 부인이 요가, 절, 여기저기 많이 다니면서 남편 디도에게 영적인 것이 많은 것이 아니냐. 그래서 목사가 부인이 말을 듣다가 이상하게 빠져서 결국 자살하게 된 끔찍한 사건이었다.
왜 이 디도라는 목사가 잘못되게 되었나? 자세히 살펴보니 초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태신앙이었고 예배를 열심히 드려도 초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 아주 무서운 시대이다.
아버지께 초점을 맞춰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아버지를 부를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교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신령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령,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드릴 때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 교회 다니면서 예배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예배는 성령 안에서 드리는 것이다. 성령 충만해지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 팔짝팔짝 뛸 수 있는 것이다. 제사 지내듯 예배드릴 수만은 없다. 내 마음 가운데 진리가 오면 가만히 앉아서 예배드릴 수 없다. 감격에 넘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찬양의 영, 경배의 영. 성령이 임해야 한다. 예배만큼 많은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본질과 비본질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본질적인 요소는 절대로 변할 수 없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고수해야 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요소는 자꾸 바뀌어야 한다. 무엇이 본질적 요소인지 비본질적 요소인지 알고 가야 한다.
현대예배에서 찬양음악이 매우 중요하다. 공연 찬양, 회중 찬양 등등 요즘에는 찬양이 많은 역할을 하는 시대이다. 찬양에서 Holy spirit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찬양,CCM,가스펠,CWM(회중찬양,코러스)등등 현대의 경향을 잘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알고 잘 적용해서 가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초 현대, 현대를 떠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그렇다. 첫 번째로 상대주의가 만연한 시대이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아무렇게 해도 상관이 없는 시대이다.
두 번째로 감성주의이다. 지금은 디자인과 감성의 시대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품질을 중요시 했지만, 지금 시대는 품질은 어느 회사 것이나 엇비슷하다. 디자인과 감성으로 승부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세번째로 신비주의이다. 영적으로 악한 세상속에서 크리스천은 오직 예수가 분명해야 한다. 말씀과 찬양 속에 오직 예수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무조건 말씀을 통해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이 충만해져야 한다.
이틀 동안 이어지는 최혁 목사 강의는 9일 퀸즈장로교회에서 7시에 하나님의 임재와 친밀감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을지 강의할 예정이다.
8일 첫 번째 시간으로 뉴저지 포도나무교회 담임 최혁 목사가 ‘현대예배’란 주제를 가지고 강사로 나섰다. 최목사는 “요한복음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성경구절을 바탕으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다음은 최목사 강의 요약문이다.
“모짜르트 음악은 모차르트 때 맞는 것이다. 지금 시대 때 오늘날 맞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 하심이 중요하다. 그 임재는 어떻게 친밀하게 올 수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에서는 참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나와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이 있는데, 예배는 하나님과 교제이고 사역은 일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예배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열심히 음식을 준비했다. 이것은 사역이라 할 수 있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 밑에서 말씀을 들었다. 마르다는 예수님한테 내 동생 마리아를 데려와서 일하게 하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마리아가 가장 좋은 것을 택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예배’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배에 관심이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예배 때 무관심하고 졸고 형식적으로 드리는 의식 등등. 요한계시록을 죽 보면 예배 싸움이다. 예배와 찬양의 관점에서 읽어보면 하나님을 경배하겠느냐. 사탄을 경배하겠느냐. 이 둘 중에 하나이다. 예배회복을 통한 하나님과 교제. 이것이 일생의 화두이다. 하나님과 참 경배자가 되겠다는 것, 오늘도 하나님께 조금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 맨 마지막에 누구를 경배하느냐 하는 싸움인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선행을 하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선행을 물론 해야 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거기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된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교회에는 발렌스가 맞춰져야 한다. 사역에만 너무 치중해서는 안되고 예배가 우선 되어야 한다.
예배는 아버지와 자녀의 교제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남녀가 연애할 때 소곤소곤하는 것처럼 기쁨이 있는 것이 예배이다. 또 예배는 요가가 아니라 대상이 있는 것, 아버지를 향한 초점이 분명해야 한다. 수년 전에 샌디에고에서 발생한 천국의문 사건이 있다. 30명이 다 자살한 사건인데, 교주 디도를 보면 목사의 아들로 어렷을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서 목사가 되었고 성악가로서 찬양을 많이 알았던 자였다. 그런데 부인이 요가, 절, 여기저기 많이 다니면서 남편 디도에게 영적인 것이 많은 것이 아니냐. 그래서 목사가 부인이 말을 듣다가 이상하게 빠져서 결국 자살하게 된 끔찍한 사건이었다.
왜 이 디도라는 목사가 잘못되게 되었나? 자세히 살펴보니 초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태신앙이었고 예배를 열심히 드려도 초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 아주 무서운 시대이다.
아버지께 초점을 맞춰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아버지를 부를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교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신령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령,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드릴 때 성경 말씀, 하나님 말씀이 매우 중요하다. 미국 교회 다니면서 예배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예배는 성령 안에서 드리는 것이다. 성령 충만해지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 팔짝팔짝 뛸 수 있는 것이다. 제사 지내듯 예배드릴 수만은 없다. 내 마음 가운데 진리가 오면 가만히 앉아서 예배드릴 수 없다. 감격에 넘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찬양의 영, 경배의 영. 성령이 임해야 한다. 예배만큼 많은 문화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본질과 비본질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본질적인 요소는 절대로 변할 수 없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고수해야 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요소는 자꾸 바뀌어야 한다. 무엇이 본질적 요소인지 비본질적 요소인지 알고 가야 한다.
현대예배에서 찬양음악이 매우 중요하다. 공연 찬양, 회중 찬양 등등 요즘에는 찬양이 많은 역할을 하는 시대이다. 찬양에서 Holy spirit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찬양,CCM,가스펠,CWM(회중찬양,코러스)등등 현대의 경향을 잘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알고 잘 적용해서 가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초 현대, 현대를 떠났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그렇다. 첫 번째로 상대주의가 만연한 시대이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고 아무렇게 해도 상관이 없는 시대이다.
두 번째로 감성주의이다. 지금은 디자인과 감성의 시대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품질을 중요시 했지만, 지금 시대는 품질은 어느 회사 것이나 엇비슷하다. 디자인과 감성으로 승부하는 시대에 도래했다.
세번째로 신비주의이다. 영적으로 악한 세상속에서 크리스천은 오직 예수가 분명해야 한다. 말씀과 찬양 속에 오직 예수가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무조건 말씀을 통해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이 충만해져야 한다.
이틀 동안 이어지는 최혁 목사 강의는 9일 퀸즈장로교회에서 7시에 하나님의 임재와 친밀감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을지 강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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