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인/ 여야 권력 투쟁 심각. 국민들은 갈 곳 몰라 방황.

기사 내용/ 여야간에 권력 투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각각의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하여 여야간에 죽기살기식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기만 들지 않았지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막가파식 정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정치에는 해서는 안될 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준을 이미 넘어선 지 오래다. 여야는 각 지지 지역을 볼모로 하여 이전투구식의 정쟁에 휩쓸려 있고, 국민들은 여야 지도자 모두를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여야 지도자들이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를 해야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야는 이민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장면 2- 어느 가족신문의 기사

헤드라인/ 아빠, 엄마 간 갈등 심각, 자녀들은 불안에 떨어

기사 내용/ 아빠와 엄마 간에 이혼을 전제로 한 싸움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빠는 딸을, 엄마는 아들을 볼모로 하여 이젠 자녀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아빠와 엄마는 지금 죽기 살기식으로 할 말, 안할 말들을 토해 놓음으로 인해 양자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자녀들은 자신들을 볼모로 하여 싸우는 부부간의 전쟁에 개입되기 싫다며 가출을 선언하고 나서 이 부부간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빠와 엄마 간에 평화를 되찾고 서로 사랑을 해야 자녀들도 안심하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공부하라고 잔소리는 하지만 자신들 때문에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을 부모들은 아는지…. 아빠와 엄마는 우리 자녀들이 정말로 가출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많은 가정들에서 이러한 권력 투쟁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 권력의 근원은 역시 돈이다. 70년대만 해도 그 돈이 남자에게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권력 투쟁 자체가 있지 않았지만 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급기야 90년대 들어서면서 사무 자동화와 컴퓨터의 급격한 발달은 온라인 시대를 몰고 왔고, 이는 급여 등의 자동이체를 몰고와 그 돈이 여자들의 수중에 들어가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거기에다가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남자들만 바라보고 사는 시대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돈은 힘을 불러오고, 그 힘은 권력을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 일단 호주머니가 든든해진 아내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에 이르른다. 그래서 남편을 좌지우지 해 보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그리고 혼자서도 이제는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 그러다보니 남편을 공경하고, 하늘같이 모셔야 한다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리타분한 구시대적 발상쯤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권력.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권력이 죽음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아는가? 특별히 가정에서의 권력은 필수적으로 다툼, 즉 갈등을 불러오도록 되어 있다. 권력은 힘을 동반한다. 그 힘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갖게 만든다.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타입으로 만들어 보려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 말을 듣지 않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게 되고 급기야는 아예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별히 자녀들은 권력의 향방에 민감하다. 돈이 아빠가 아닌 엄마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 그 때부터 아빠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모든 것을 엄마에게 집중시킨다. 엄마한테만 잘 보이면 세상 살아가는 데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 가정은 역기능의 가정이 되고야 만다.

분명한 것은 가정은 권력의 싸움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권위는 있어야 하지만 권력이 생겨나서는 안되는 것이 가정이라는 장소이다. 권력은 인간의 헛된 욕심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해 보려는 욕심,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과시해 보려는 욕구, 내 힘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 이런 것들이 권력을 가진 자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가정에 그러한 권력이 있다면 이미 가정이 아니다. 평안이 깨어지고, 치유와 회복이 사라진다. 은총이 없어지며 은혜는 온데간데 없어지고야 만다. 가정은 권력으로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라 권위로 세워져야 한다. 그 권위도 자신이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세워주어야 한다. 더불어 가정에서의 권위는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야 하고, 또 희생과 섬김이 있어야만 참된 권위가 세워질 수 있다.

우리는 가정에서의 권력과 권위를 생각할 때 예수님의 오심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권력을 갈구하지 않으셨다. 오직 희생과 섬김, 사랑만이 삶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러한 낮아짐이 오히려 예수님의 권위를 만들어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이 권력을 휘두른다면 그 가정은 이미 역기능의 가정이요, 행복이 무너진 가정이다.

남보기에는 평안한 듯 보이고, 항상 자녀들이 말을 잘 듣기에 뭔가 되어 가고 있는 가정 같아 보이지만 자녀들의 심성은 이미 병들어 있으며, 그 가정의 아내 또한 아픈 상처의 연속일 것이다. 반대로 아내가 권력을 쥐고 휘두른다면 남편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있음이 자명하다. 어머니의 말이 곧 법이요, 진리인 가정. 당연히 역기능 가정일 것이고, 그 가정에는 앙칼진 목소리가 득세하게 될 것이다. 자녀들의 심성 역시 피폐해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휘두를 때 자주 착각에 빠진다. 자녀들이 말 고분고분하게 잘 듣고, 공부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으로 잘되어 가는 가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한참 후에 나타난다. 사춘기를 지나고 자유분방한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그 아픔이 독버섯처럼 그 가정을 휘감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서야 ‘아차’하고 후회해 보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부부들이여! 권력에 대한 미련을 갖지 말라! 권력에 대한 미련은 참으로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 우리는 한국의 정치 현장에서 노쇠한 정치꾼들을 보면서 얼마나 그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 했는가? 3김이 물러가고 새로운 정치의 시대가 왔지만 아직도 ‘낮의 촛불’ 운운하면서 그 노쇠함을 버리지 못하는 정치인을 보면서 얼마나 역겨워 하는가? 그들로부터 우리는 반사적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이란 겉으로는 좋게 보이지만 ‘헛되고 헛된’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배우자와 자녀에게 권력을 휘두른다고 해서 자신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낮아져야 높아진다. 겸손한 자세로 내려가야 추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나 배우자가 내 소유는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존재인 것을 왜 잊고 사는가?

그저 주님의 모습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이 권력을 탐하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한 발 한 발 걸어 가셨듯이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회장, 총회장, 장로회장, 제직회장, 무슨 회장, 무슨 부장이라는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그 사람의 이름이 드높다 할지라도 추해 보일 뿐이다. 가정에서도 그 작디 작은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불쌍하고 추해 보일 뿐이다. 그저 다 내려놓으라! 그저 섬기고, 그저 발을 씻기라! 오직 사랑만으로 이 세상을 덮어가라! 그럴 때 그 사람에게 권위는 저절로 생겨나게 된다. 억지로 세운 권위는 순식간에 무너지고야 만다.

오늘, 가정에 들어가거들랑 배우자를 바라보면서 감사를 하고 그를 찬양하라! “그대 있음에 내가 있고, 그대를 위해 나는 살아가리라!” 자녀들을 보면서도 그들에게 감사하라! “너희와 같은 아들, 딸을 섬길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노라! 잘 커 주어서 고맙고 감사하구나!”
가끔은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앞치마도 두르고, 걸레도 들어 보자.

가끔은 남편을 위해 발도 씻어 주자. 상대방이 귀찮아하는 것을 내가 먼저 시작해 보자! 그렇게 낮아지고 겸손해질 때 사랑이 온 가정을 덮을 것이고, 용서와 긍휼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들이 다 되어 갈 것이다.

추부길 목사 (웰빙교회 담임, 한국가정사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