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미주에서 밀알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1979년 한국 밀알 선교단을 처음 시작할 때 저희들이 가졌던 꿈이 한국내에 있는 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있는 장애인들에게도 선교를 하자는 꿈을 가졌었고 한국 밀알 선교단을 세운지 5년 정도 나름대로 기초를 다져놓고 84년도에 미국에 왔는데 이 때 두 가지 비전을 가지고 왔습니다. 첫 번째는 세계장애인 선교를 위한 그 전진기지를 미국에 세우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장애인 선교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제가 총신대를 나왔는데 신학적인 것만 가지고는 어렵겠다. 실제로 해보니까 어렵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장애인 선교에 유익이 되겠다는 사회복지를 미국에서 공부할 요량으로 84년 필라델피아로 유학을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3년 후에 필라델피아에서 최초로 미주밀알을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미주에 밀알을 조직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미국에 밀알을 세운 이유는 미국 각 지역에 밀알을 세워서 좀 못사는 나라 후진국 나라에 미국에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제 3세계에 대한 장애인 선교에 도움을 얻고자 하는 그런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밀알선교단이 가지고 있는 선교정책은 선선진국 후후진국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캐나다 지역에 밀알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후진국쪽으로 밀알선교단을 세우는 시점입니다.

벌써 미주 밀알 선교단도 21년째 그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평가를 한 번 내려주십시오

사실 미국 쪽은 장애인 복지나 교육이 워낙 잘 되어 있는 곳이라서 이런 곳에 장애인들을 위한 단체를 만든다는 것에 질문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밀알 선교단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미주에서 20년 동안 2가지 측면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주에 있는 교포 장애인들을 보면 물론 영주권 시민권을 가진 이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습니다. 유학생이라던가 신분이 불안한 장애인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고 예를 들면 1년에 10만불 정도 장애인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밀알선교단이 진행하는 많은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지만요. 그 외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외롭고 힘들게 생활하는 장애인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측면은 장애인 선교입니다. 단순한 서비스나 혜택제공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경공부를 하거나 교회로 인도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미국이 아무리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교회로 인도하는 것 등은 전혀 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덧붙인다면 이런 사역을 통해 우리 교포 사회 안에 장애인 문제를 이슈화시키고 한인이민교회들이 장애인들에게 보다 관심을 가지고 찾게 만드는 데 많은 중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현재 미주에 9개 지부가 있는데 한인이 많은 지역에는 다 들어가 있습니다.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이며 일반 교회를 깨워서 장애인들과 연결시키는 일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밀알선교단에서 집중하고 있는 사역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밀알선교단은 한국밀알선교단, 미주밀알선교단, 유럽밀알선교단 이 셋이 큰 주축이며 이를 합쳐서 세계밀알연합회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밀알선교단이 선교적인 목표를 향해서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세워진 밀알선교단들을 통해 후진국쪽에 많은 밀알선교단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후진국에 설립된 각 밀알선교단은 선진국에 세워진 밀알선교단들이 분담해서 지원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중국 연하 지구에는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복지관 같은 것을 지어서 7-80명의 장애인들이 합숙생활을 하게 하면서 신앙생활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이 밀알선교단은 워싱턴 밀알선교단에서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푸레아토 공화국은 LA 밀알선교단에서 맡아서 지원을 하고 현지인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운영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시카고 밀알선교단은 인도지역을, 뉴욕 밀알은 네팔 지역을 맡아서 지원 및 후원하고 있습니다. 네팔에는 밀알 학교도 세워졌습니다. 유럽 밀알선교단 쪽은 아프리카 쪽과 동부권을 맡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지역은 밀알 사역을 시작 못했는데 올해와 내년에는 이 지역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밀알선교단의 구성원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단원이란 말과 자원봉사자라는 말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밀알 단원은 밀알 전체를 구성하는 회원입니다. 최종적인 총회를 통해서라도 권리를 발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자원 봉사자와 거의 같습니다. 밀알안에서는 크게 세 가지 형태의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밀알학교 처럼 전적으로 정부기관의 지원을 받는 곳도 있으며 복지관 처럼 일부만 지원을 받는 곳도 있습니다. 미국도 뉴욕, 토론토, LA 지역에서는 일부 프로그램을 정부에서 지원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간사들입니다. 여기에는 풀타입 스탭과 파트타임 스탭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장애인들을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주거나 상담을 해주기도 합니다.

또 하나가 단원들입니다. 밀알 단원에는 기도 단원, 협력(후원) 단원, 실행 단원이 있습니다. 실행 단원은 매주 모임에 참석하거나 장애인들을 직접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합니다. 이 모든 단원들을 사무실 직원들이 관리하면서 성격이나 특성에 맞게 장애인들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유럽 미국에서 각각의 밀알사역이 다른 것처럼 미국에서도 지역별로 그 활동이 다르다. 리더의 개성에 따라 혹은 지역별 장애우들의 특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밀알선교단을 이끌어 오면서 가장 힘이 되주었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이지만 신앙적인 측면에서 가장 힘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싶구요. 실제적으로 또 힘을 얻는 것이 있다면 밀알 안에 헌신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강원호 목사님 같은 분들이지요. 이 분은 한국밀알이 생긴지 1년 만에 함께 이 사역에 동참해서 지금까지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들을 위한 사역을 당연히 해야함을 느끼는 데 이분들은 전혀 장애인도 아니고 관계도 없는 분들인데 헌신하는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많은 힘을 얻습니다.

끝으로 장애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상 실명된 이후에 절망감과 좌절감이 무척 컸습니다. 이런 말 하면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요. 저는 73년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그래함 집회에 참석하고 나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한국에서 제일 좋은 특수학교인 서울맹아학교에서 중고등학교 6년을 교육받았고 선생님들을 통해서 많은 좋은 말씀도 들었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궁극적으 장애인이라는 아픔과 절망감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근데 빌리 그래함 집회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아픔을 궁극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밀알 선교단을 만든 것도 결국 신앙적으로 사람이 변화를 갖지 않으면 그 어떤 것을 가져다 주어도 절망이나 좌절에서 극복할 수 없다는 이런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나도 신앙적으로 해결 되었는데 그럼 이 사실을 알려서 다른 장애인들도 내가 겪었던 절망과 좌절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취지에서였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제 전공이 사회복지학과입니다. 총신대에서도 사회복지학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학이라는 것이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잘 살게 할 것인가를 다루지 않습니까. 근데 아무리 사람을 잘 살게 만든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행복을 못 누리는 것 같습니다. 신앙이 가장 큰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앙을 가지면 전혀 다른 세계가 전개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26년 동안 밀알선교단 사역을 해오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을 가졌든 안 가졌든 장애인들이 빨리 자기 자신의 장애 문제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동기가 신앙으로든 묵상으로든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장애를 현실로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인정할 때 친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고 가족도 사회도 도와 줄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