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 청년들이 쓰는 농담 중에 “성질 나쁜 여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못 생긴 여자는 용서가 안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성질이 나쁘더라도 얼굴만 예쁘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요즈음 세상의 관심은 온통 껍데기에 중심을 두고 있다. 원래 남자였을지라도 예쁘게 성형수술해서 성전환에 성공하면 되고, 수없이 뜯어 고쳐도 얼굴만 예뻐지면 괜찮고, 마약을 하고 불륜을 범해도 예쁜 탤런트 배우들은 용서받는 세상이 된 것이 사실이다.
껍데기 세상
이같은 세상에 살던 아버지는 죽으면서 아들에게 “쭉쭉빵빵한 몸매를 가진 미녀”와 결혼하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래서 그런가. 주인공 할(잭 블렉)은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진 여자를 찾는 것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할에게 일대변환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고장난 엘리베이터 안에 심리 상담가인 토니 로빈스와 함께 갇히면서 벌어진다. 갇힌 엘리베이터 안에서 토니 로빈스는 지나치게 외모에 집착하는 할에게 “진실한 아름다움은 마음에 있다.”고 설득하지만 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 머리속에 온통 껍데기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할에게 토니 로빈스가 머리를 잡고 흔들면서 “사단아 썩 나와라”고 외치자 할은 주문이 걸린 사람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통하여 얼굴을 보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할은 “사람의 눈을 보면 마음을 느낄 수 있고, 그러면 영혼이 보인다”는 토니의 말처럼 변화된 시각을 갖게 된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뚱뚱한 사람도 할의 눈에는 쭉쭉빵빵한 모습으로 보이고,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이들도 아름다운 모습의 아이들로 보인다. 심지어 비듬이 심한 볼 품 없는 사람도, 뚱뚱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들로 보이게 된다. 그러니까 토니 로빈스가 말한 것처럼 할은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하여 영혼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바로 그런 할에게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고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인 여인 로즈 마리(기네스 팰트로)가 나타나는데, 할의 눈에는 그녀의 마음씨 때문에 환상적인 몸매와 얼굴을 가진 여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앉기만 하면 식당의 의자가 부서지고 그녀의 다이빙에 수영장물이 넘쳐나고 그녀의 속옷은 낙하산만큼이나 컸다. 사실 실제 로즈 마리의 모습은 140kg이나 나가는 뚱보였고 앉은 자리에서 더블 피자 한판을 치즈를 듬뿍 얹은 감자를 눈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는 엄청난 대식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할의 눈에는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보였다.
마음이 중요하다
영화를 보면서 심리 상담가의 “사단아 물러가라”는 말이 매우 황당스러웠지만 예사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정말로 우리가 외모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사단이 즐거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평가하실 때 외모로 평가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시고, 마음의 아름다움을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택할 때 외모 때문에 주저하는 사무엘을 향하여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닌가?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
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주님 또한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한채 시장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기도하고, 금식하고 십일조를 자랑하지만 실제는 위선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매우 혹독하게 “독사의 자식”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여기서 “독사의 자식”이란 영화의 표현대로 하자면 “사단의 자식”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우리가 만일 외모만을 중요시여기고 껍데기에 치중하며 마음이나 중심은 더러움과 위선으로 차 있다면 그것은 사단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여전히 겉모습을 중요시여기는 할의 친구 모리쇼가 개입하게 되고 할의 주문이 풀리도록 도움을 준다. 그 덕분에 할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고 마음이 아니라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 보게 된 로즈 마리의 엄청나게 뚱뚱한 모습! 견딜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잠시동안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가 얼마동안 누렸던 시간들, 즉 겉모습이라는 편견을 거두고 로즈 마리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던 할은 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때 천박했던 할(Shallow Hall)은 진실로 “당신은 아름다워요”라고 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할은 정말로 로즈 마리 속에 숨어있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 것이다.
만나기 전에 볼 수 있어야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시대의 비참함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영혼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고 껍데기의 화려함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곤고하고 영적인 가난함에 빠진 거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외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고 영적인 가난함에 빠지게 될 때 할이 진정 아름다운 로즈 마리를 만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진정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좀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적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먼저 “볼찌어다”(계3:20)라고 외치신다. 우리의 눈에 덮인 비늘이 벗겨지지 않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이다. 주님은 이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주님을 볼 수 있어야, 깨달을 수 있어야 주님을 만나고 모셔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눈이 멀어 예수를 맞아들이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매우 부요하고 매우 넉넉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눈은 멀어 있었던 것이다.
안약을 바르라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8)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천박한(Shallow) 껍데기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영성이 이 세상에 두신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즉 주님을 보지 못하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권면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사람들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당연히 그때 우리는 주님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천박함은 껍데기만을 중요시함으로 주님을 보지 못할 때 더욱 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요즈음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천박성, 심지어 크리스천 조차 천박해지는 이유는 껍데기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껍데기의 화려함에 속아 그 아름다운 깊이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껍데기만을 보는 시각을 버릴 때 우리는 주님을 보게 될 것이고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주님이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만나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하정완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영화를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읽고 묵상하는 일에서 기쁨을 찾는 하정완은 꿈이있는교회(www.dreamchurch.com)의 목사이다. 그동안 영화와 관련된 책으로 최근에 쓴 "영화의 바다로"(예찬사)와 "영화에서 주님을 만나다"(규장)등이 있다.
이처럼 요즈음 세상의 관심은 온통 껍데기에 중심을 두고 있다. 원래 남자였을지라도 예쁘게 성형수술해서 성전환에 성공하면 되고, 수없이 뜯어 고쳐도 얼굴만 예뻐지면 괜찮고, 마약을 하고 불륜을 범해도 예쁜 탤런트 배우들은 용서받는 세상이 된 것이 사실이다.
껍데기 세상
이같은 세상에 살던 아버지는 죽으면서 아들에게 “쭉쭉빵빵한 몸매를 가진 미녀”와 결혼하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래서 그런가. 주인공 할(잭 블렉)은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진 여자를 찾는 것을 지상최대의 목표로 삼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할에게 일대변환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고장난 엘리베이터 안에 심리 상담가인 토니 로빈스와 함께 갇히면서 벌어진다. 갇힌 엘리베이터 안에서 토니 로빈스는 지나치게 외모에 집착하는 할에게 “진실한 아름다움은 마음에 있다.”고 설득하지만 할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 머리속에 온통 껍데기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할에게 토니 로빈스가 머리를 잡고 흔들면서 “사단아 썩 나와라”고 외치자 할은 주문이 걸린 사람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통하여 얼굴을 보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할은 “사람의 눈을 보면 마음을 느낄 수 있고, 그러면 영혼이 보인다”는 토니의 말처럼 변화된 시각을 갖게 된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뚱뚱한 사람도 할의 눈에는 쭉쭉빵빵한 모습으로 보이고,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이들도 아름다운 모습의 아이들로 보인다. 심지어 비듬이 심한 볼 품 없는 사람도, 뚱뚱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들로 보이게 된다. 그러니까 토니 로빈스가 말한 것처럼 할은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하여 영혼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바로 그런 할에게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고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인 여인 로즈 마리(기네스 팰트로)가 나타나는데, 할의 눈에는 그녀의 마음씨 때문에 환상적인 몸매와 얼굴을 가진 여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앉기만 하면 식당의 의자가 부서지고 그녀의 다이빙에 수영장물이 넘쳐나고 그녀의 속옷은 낙하산만큼이나 컸다. 사실 실제 로즈 마리의 모습은 140kg이나 나가는 뚱보였고 앉은 자리에서 더블 피자 한판을 치즈를 듬뿍 얹은 감자를 눈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는 엄청난 대식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할의 눈에는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보였다.
마음이 중요하다
영화를 보면서 심리 상담가의 “사단아 물러가라”는 말이 매우 황당스러웠지만 예사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정말로 우리가 외모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사단이 즐거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평가하실 때 외모로 평가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시고, 마음의 아름다움을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택할 때 외모 때문에 주저하는 사무엘을 향하여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닌가?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
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주님 또한 겉모습을 화려하게 치장한채 시장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기도하고, 금식하고 십일조를 자랑하지만 실제는 위선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매우 혹독하게 “독사의 자식”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여기서 “독사의 자식”이란 영화의 표현대로 하자면 “사단의 자식”이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우리가 만일 외모만을 중요시여기고 껍데기에 치중하며 마음이나 중심은 더러움과 위선으로 차 있다면 그것은 사단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여전히 겉모습을 중요시여기는 할의 친구 모리쇼가 개입하게 되고 할의 주문이 풀리도록 도움을 준다. 그 덕분에 할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게 되고 마음이 아니라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 보게 된 로즈 마리의 엄청나게 뚱뚱한 모습! 견딜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잠시동안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그가 얼마동안 누렸던 시간들, 즉 겉모습이라는 편견을 거두고 로즈 마리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던 할은 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때 천박했던 할(Shallow Hall)은 진실로 “당신은 아름다워요”라고 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할은 정말로 로즈 마리 속에 숨어있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 것이다.
만나기 전에 볼 수 있어야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시대의 비참함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영혼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하고 껍데기의 화려함에 길들여진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곤고하고 영적인 가난함에 빠진 거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외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고 영적인 가난함에 빠지게 될 때 할이 진정 아름다운 로즈 마리를 만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진정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좀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적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먼저 “볼찌어다”(계3:20)라고 외치신다. 우리의 눈에 덮인 비늘이 벗겨지지 않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이다. 주님은 이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주님을 볼 수 있어야, 깨달을 수 있어야 주님을 만나고 모셔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눈이 멀어 예수를 맞아들이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매우 부요하고 매우 넉넉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눈은 멀어 있었던 것이다.
안약을 바르라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8)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천박한(Shallow) 껍데기만을 추구하는 모습이, 영성이 이 세상에 두신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즉 주님을 보지 못하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권면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사람들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당연히 그때 우리는 주님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천박함은 껍데기만을 중요시함으로 주님을 보지 못할 때 더욱 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요즈음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천박성, 심지어 크리스천 조차 천박해지는 이유는 껍데기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껍데기의 화려함에 속아 그 아름다운 깊이를 보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껍데기만을 보는 시각을 버릴 때 우리는 주님을 보게 될 것이고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주님이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만나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하정완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영화를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읽고 묵상하는 일에서 기쁨을 찾는 하정완은 꿈이있는교회(www.dreamchurch.com)의 목사이다. 그동안 영화와 관련된 책으로 최근에 쓴 "영화의 바다로"(예찬사)와 "영화에서 주님을 만나다"(규장)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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