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서탄면의 외진 곳, 인적조차 드문 이 허허벌판 한곳에는 ‘주님의 머슴’을 자처하며 11년째 버려지고 병들고 아파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섬기며 ‘사랑의 배달촌’을 꾸려가는 염재용 목사(사랑의배달촌 담임)가 있다.

사랑의 배달촌 입구로 들어서다 보면 “나는 주님을 만나면 무엇을 하다가 왔다고 할까”라고 적힌 팻말이 서 있다. 가슴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탄식같은 이 글귀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날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허허벌판에 맨손으로 일군 ‘사랑의 배달촌’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던 이곳에 염 목사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맨손으로 지금의 배달촌을 일궈냈다. 봉사를 한답시고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철학 때문에 성전과 건물들을 맨주먹으로 지어나간 그의 시도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와 정성 때문엔지 약한 자들을 들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쓰시는 하나님께선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기적으로 사랑의 배달촌 건설을 이끄셨다. 처음엔 거의 혼자서 기초를 닦아 작은 건물들을 세웠고, 차츰 그의 주위로 모여든 장애인들과 힘없는 노인들이 뭉쳐 건물을 넓히고 또 넓혀갔다.

염 목사는 특히 지붕을 얹던 당시를 회상하며 "장애인들이 힘을 합쳐 지붕을 만들어서 천장까지 들어올리는 데 위험 천만한 순간을 몇번이나 넘기며 이틀 만에 겨우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염재용 목사는 갈곳없고 버림받은 이들을 아무 조건없이 받아들여 '에덴동산'을 만들어 나가길 꿈꾼다. ⓒ 송경호 기자
건설뿐 아니라 살림을 해나가는 데에도 하나님은 끝없이 역사하셨다. 인근에 장마 때마다 ‘그물만 쳐 놓으면 고기들이 알아서 잡혀준다는’ 곳이 있어 ‘만나’가 되어주었고, 2급수의 암반수 덕택에 식수 걱정까지 덜었다. 게다가 이제는 30여명이 된 배달촌 식구들과 함께 일군 논밭이 어느 새 1년에 40가마의 쌀을 생산해내는 등 든든하게 자리가 잡혔다.

이제는 그는 버려진 형제들을 입히고 먹일뿐 아니라 염까지 직접 하며 천국의 백성으로 훈련시키고 인도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먼저 섬길지언정 먼저 섬김받으려 하진 않는다

▲낮아짐과 겸손의 자세를 배운다는 사랑의 배달촌 성전 입구 ⓒ 송경호 기자
구석구석 하나도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스스로 일궈낸 성전인 만큼 사랑의 배달촌의 건물 곳곳에는 “이들에게 다시는 더러워진 곳에서 생활하게 해선 안된다”는 그의 사랑과 사상이 묻어나 있다. “주님 이외에는 누구도 예배당 한가운데를 차지할 수 없다”며 가운데가 아닌 왼편에 위치한 강단과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아 “목사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는 성전 입구, 유사시에 몸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인들도 쉽게 대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집안 구조까지.


‘7무사상’을 내세우며 자신의 사역을 결코 드러내지 않아왔던 염 목사지만 한 부흥집회를 인도하던 날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라는 이사야서의 성경구절 때문. 그때 그는 “이제는 이 미천한 머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알려야 할 때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버려진 땅 벌터 광야에서 무의탁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목사를 만난다면 누구나 자신이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염 목사는 누구를 만나도 먼저 남을 ‘대접할’지언정 남에게 먼저 ‘대접을 받고자’ 해본 적은 없다.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모토로 내세운 사랑의 배달촌의 식당에서는 365일 그와 그의 사모가 직접 만드는 별미가 준비돼 있다.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TV나 신문에 나가지 않고 봉사활동이나 후원단체도 받지 않고 7무 사상을 내세우는 이런 시설이라면 ‘망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지경’인데도 하나님께서 내린 말할 수 없는 축복은 사랑의 배달촌이 ‘남을 섬기는 곳’으로 만드셨다. 그래서 지금은 많은 이들이 찾아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은혜를 받는 ‘섬김의 모델’이 세워졌다.

▲동남아 등지로 보낼 의류 등이 보관된 창고 ⓒ 송경호 기자
또 1년에 한번씩 인근 마을의 이웃들과 무의탁 노인 등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도 베푸는 큰잔치를 벌여 작년엔 1100여명이나 참석했으며, 올해도 6월 4일에 2000명을 목표로 하는 큰 잔치를 계획하고 있다. 또 몇 년 전부터 선교를 위해 옷가지 등을 모아 인도와 몽골 등 동남아 지역에 원조도 보내고 선교사도 파송할 정도.

“나는 주님의 종도 아닌 가장 천한 머슴”

그는 요즘 선교원을 짓는 데 한참 정신을 쏟고 있다. “은퇴하고 나서 갈 곳 없는 목회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이곳에 와서 쉼도 얻고 말씀도 전하며 은혜롭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그의 작은 바람에서 물질도 없이 기적의 터 위에 이뤄지는 사업이다.

“나는 부흥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살아왔는데 하나님께선 나를 지금의 사역에 쓰시기 위해 많은 세월을 훈련시키셨다”고 웃는 염재용 목사. 자신은 종도 아닌 이 세상에서 가장 천한 머슴이라며 쉼없이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종이 아닌 진정한 아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