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감람산 교회(담임 윤사무엘 목사)는 교회 설립 2주년을 기념, 김기홍 장로(한국 전 해병대 부사령관, 준장 전역, 해군 중앙교회 시무장로)를 초청하여 지난 7월 25일부터 27일 3동안 간증집회를 진행했다.

이에 김기홍 장로는 '주여! 주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란 주제로 장군 장로의 꿈을 이루기까지 지나온 신앙의 여정을 3부작으로 간증했다. 특히 김 장로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여 말씀과 찬양으로 집회를 인도해 많은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쳤다.

첫째 날 김 장로는 "하나님 편에 선자" (삼하 22: 1-4)라는 제목으로 군인으로서 실전에 참전한 경험을 영적인 전투와 비교하여 매일 주안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소상히 전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김 장로는 해방(6세)이후 가족을 따라 첩첩 산중으로 둘러싸인 두메산골에 와서 자랐다. 사면이 산인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공부했던 그는 부친의 농사일을 도우며 30리 떨어져 있는 중·고등학교를 왕복 60리를 뛰고 걸으며 학교에 다녔다. 이런 체력훈련은 훗날 해병대 34년 복무 생활에 밑거름이 됐다. 그가 13세 때 동네 노방전도단에 의해 전도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으나, 김해 김씨 장손 집안이라 유교가 강해 핍박이 심했다. 김 장로는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을 때 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직 기도로 믿음을 지키며,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과 삶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예수 믿으면 이뤄진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그는 외모·말씨·시골출신·실력 등 열등감과 약점을 극복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마침내 장교로 임관됐다. 군 생활을 기도로 시작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제단을 쌓았다. 중위때 월남전에 배치되어, 14개월 복무하던 중 짜빈동 작전에서 180 병력을 이끌고 철저한 전쟁 준비를 3개월 반을 하였다 (그물망 참호파기, 지뢰, 삼중 철조망, 조명 지뢰밭 등). 꾸준한 기도로 영적 무장도 철저히 했다. 주일 예배를 참석하고자 부대에서 특별 배려로 헬기가 제공되어 군인교회에 가서 온전한 주일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후, 2000여 월맹 정규군의 공격을 받게 됐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군은 15명만 전사자가 나고 적군을 완전 전멸하는 전공을 세워 한국 정부로부터 충무훈장을 받고, 월남전에 길이 남는 짜빈동대첩으로 지금도 군사훈련시 교육되고 있다. 귀국하여 울진 삼척에 침투한 무장공비 120명 중 12명을 사살 내지 생포, 그 이듬해 진해에 침투한 무장공비 2명을 소탕하는 전과를 세움으로 동기생보다 진급이 빨랐다.

김기홍 장로는 실전체험과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영적 전쟁에 적용하여 △철저한 전쟁준비 △기도로 무장 △불굴의 믿음 △하나님의 지혜에 의지 △오직 주님만 바라며 전진을 강조했다.

이튿날 집회는 “에벤에셀의 하나님” (삼상 7:7-12)에 대한 김 장로의 간증이 이어졌다. 그는 백령도에서 군인교회 건축시 군목과 함께 받은 연단과 시험을 통과하여 정금같이 나오는 축복의 길로 도우시는 하나님을 증거했다. 아내의 병을 기도로 치유함을 받고, 군목의 사모가 어려운 중 딸을 낳게 되는 등, 성전 건축시 거센 사탄의 방해를 모두 물리치고 하나님의 성을 건축했다.

김 장로는 강화도에서 대민 관계를 잘 하여 대통령으로부터 하사금을 받는 모범 장교가 되었으며,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지만 당시 해병대 최고 지위에 있던 이가 철저한 불교신자라 거의 군복을 벗을 뻔 한 위기에 몰려 건축이 중단됐다. 그러나 후에 본부에 이전한 후에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건축헌금 모금하여 강화해병교회를 봉헌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미국 해군 대학원 국제 국방관리과정을 졸업하게 되었고, 국방대학원 안보 정책과정도 졸업, 장군이 됐다. 해병대 사령부 참모장(준장)이 된 후에도 새벽기도·철야기도·기도원 기도를 꾸준히 계속했다. 장군 차량으로 이동시 설교말씀을 항시 들으며 은혜 받고 찬양으로 무장을 하였다.

셋째날 주일집회는 힐스데일 은혜장로교회(담임 홍명철 목사)와 뉴저지 감람산교회가 합동으로 힐스데일 은혜장로교회서 예배 드렸다. 이날 김 장로는 '범사가 잘 되는 삶”(요한 3서 2절)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며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가 형통한다'며 육신의 삶이 허무함을 밝혔다.

그는 해병대 부사령관(소장)시 장로로 임직 받음으로 오랫동안 기도한 장군 장로의 꿈을 이뤄, 현재 해군중앙교회 시무장로로 봉사하고 있다. 부사령관시 해병대를 해군으로 부터 독립을 시키는 일을 주도했으며, 사령관의 꿈을 놓고 기도하던 중 주님의 뜻이 아님을 깨닫고 준장으로 전역함으로 34년 군 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장군으로 전역하자 바로 신학대학 3학년으로 편입하여 신학사를 받게 된다. 또한 간증 집회를 시작하게 되어 수백회 인도를 하던 중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 석사과정을 마치게 된다. 또한 어려운 이들을 돕는 선교를 시작하며 기독교인으로 사회봉사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김기홍 장로는 국방부 군사정책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겸임교수로 대전 목원대학교에 부임하여 오늘날까지 14년간 강의하며 또한 협성신학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면서 여름·겨울방학을 이용하여 각각 2달씩 미주에 있는 한인교회 450개를 순방하며 간증 집회를 인도했다. 현재까지 미국 40개 주를 순방하며 집회를 인도했으며, 국내에서는 매주말마다 집회를 인도하여 3000여 회 집회를 하면서 영적 군사가 될 것을 권면하고 영적 전쟁 준비를 시키고 있다. 김 장로는 "군 생활 보다 전역후 14년 6개월이 더욱 영적으로 풍성하고 행복하다"고 간증했다.

김기홍 장로 홈페이지: www.kimkih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