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계부흥사경회 시작

두 가지 뜻이 있나 싶다
하나는 여기 와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원래 여러분이 한 발짝만 더 가면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 집회를 통해서 새로운 삶을 얻을 수도 있다.

죽을 사람 살리는 게 복이죠. 이곳에 온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이 집회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보통 은혜를 받았다고 하죠. 뭐가 받는 것인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깨닫는 것이 은혜라고 말하고 싶다.
선물인데도 선물인지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반면에 선물이 아닌데도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태어나서부터 신체장애자인 자녀를 둔 사람이 있었다. 이 자녀의 부모나 그 자녀나 이들은 항상 자기 피해적으로 살았다. 그 딸이 16살이 되기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 자매가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부모는 그 아이 때문에 기도하게 되었고 그 자매가 새롭게 보이게 되었다. 저주스럽게만 보이던 자기 자녀가 축복스러운 자녀로 깨닫게 된 것이 은혜받은 것이다.

여기오면서 이 교회 목사님이 참으로 용기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 있으면 절대 저를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천 명 모였습니다. 오시죠. 딴 곳에는 부르지도 않는다. 설마 오겠나 해서…

여기는 한 열명 모이는데.. 오시겠냐고..비행기를 열 몇 시간 타고 와서….
나를 위한 것보다는 이 교회 한 사람 두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뜻이 있지 않겠나…
여기서 한 사람이라도 변화가 있다고 하면 이 뉴욕이 바뀌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요나서 보자.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사명이에요. 그 사명에 대해서 뭐가 필요하겠나. 사명은 그것을 받아서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피해 도망가는 사람이 있고 미루는 사람이 있고..
그런 것이 요나서.

아밋대의 아들이라고 했다. ‘아밋대’는 진실하다는 뜻이다. 그 아들이 요나. ‘요나’란 말은 비둘기란 말로 순결하다. 평화, 성결하다..이런 뜻이 있다. 아버지 이름도 좋고 아들 이름도 좋다. 아마 요나가 태어났을 때 이 아버지는 요나가 정말 경건하게 살기를 바래서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 같다.

전 특히 찬송가 172장을 좋아합니다. 그 찬송에 나오는 ‘단비’란 말이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전 무조건 딸 낳아. 그래서 이 이름 붙여야지 이랬습니다. 정말 첫 아이가 딸이 나와서 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근데 그 다음데 또 딸. 그래서 ‘다은’이라고 지었습니다. 셋째도 딸이었습니다. 우린 고민하다가 부르기 쉽게 ‘아름’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딸들을 부를 때 밑에서부터 부릅니다. ‘아름다은단비’
이름은 너무 이쁘고 잘 지었는데 이들이 그렇게 이쁘게 자라지 않습니다. 맨날 흙탕물을 뿌려 놓습니다.

본문에 요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요나’ 참 좋은 의미로 지었는데 아주 성격이 안좋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거꾸로 가고 남들은 쌔빠지게 기도하는데 자기는 퍼자고….
성경에 보니 요나가 삼일길을 하루에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큰 성을… 삼일길을 땀 뻘뻘 흘려서 하루만에 다 돌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 길을 하루만에 대강 철저히 돈 것 같습니다. 대충 돌은 것 같습니다. 요나는 목회자로서 정말.. 목회하다 쫓겨나갈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춘 자 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람은 이름 값대로 살아야 한다.
성도란 거룩한 무리란 말이죠. 거룩을 지향하며 살아야 할 자들이죠. 크리스챤이란 말은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사는 무엇입니까. 잡을 집, 일 사. 이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위해서 교회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집사는 일하다가 죽으라. 집사의 사명은 일하다가 죽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인생을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나를 불러주셨구나..
여자가 볼 때 남자가 가장 멋있게 보이는 때는(한국적 사고로) 남편이 와이셔츠를 입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입니다. 성실할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목사는 양떼를 위해서 24시간 기도하죠. 항상 말씀을 양떼를 위해서 어떻게 요리해서 어떻게 잘 어떻게 성도를 위해서 넣어줄까 이런 고민만 하는 것이죠.

이런 것이 목회자의 모습이어야 하죠. 목사의 팔자는 치는 것입니다. 칠 목 자입니다. 장로는 성도를 잘 살펴야 하는 것이죠. 권사는 권할 권자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말로 쳐도 그 상처를 싸매주어야 하죠. 요즘 용기있게 치는 목사가 어딨어..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죽이 맞아야 교회가 되어지지..

요나는 자기의 아름다운 이름을 활용하지 못한다.
이름대로 살자. 직분대로 살자. 자기 주어진 직분대로 살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가정이 되어지지 않는다.

제가 예전에는 굉장히 예민했다.
사랑이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하는 것. 해 주는 것이다.

결혼 주례를 수백번 했다. 한번도 안 빠지고 하는 말이 있다.
사랑은 내가 바라는 것을 내가 내 아내에게 해 주는 것. 내가 처가집 부모를 섬기는 것. 남편이 내 친정 부모에게 잘 해 주는 것을 바라기 보다 내가 시집 부모를 먼저 섬기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귀한 시간동안 직분대로 살리라는 다짐을 하길 바랍니다.

‘말씀이 임했다’는 말은 소명을 받았다는 말이죠. 마땅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소명을 주는 것입니다. 니느웨로 가라 하셨을 때 당연히 능력을 주실 것이다. 그에 따른 능력도 주신다. 내 생각이 앞서면 안된다. 그 소명대로 하는 사람이 있고 요나처럼 도망가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이 귀한 몸된 교회를 지키리라.. 그 소명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는지… 무슨 이유로든지 그것을 미루고 있다면… 그에 대한 권고의 말씀이 요나서입니다.

요한복음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되신 것이 그리스도죠. 하나임은 곧 말씀.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오신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기독교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왔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어떤 이유로 여기에 왔던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왔다는 것은 섭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중보자가 없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만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온 것임. 하나님의 부르심. 어떤 사람을 통해서 여기 왔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렀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온 것입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죠. 주님 복음 전하는 것이 쉽진 않다.

복음 전하는 것에 2 가지 있다
동방박사들 뭘 보고 찾아왔나. 별 보고 찾아왔다. 소리없는 별을 보고 찾아왔다. 그 별이 예수님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어떤 이는 전도해놓고 양은 생각도 않고 자기만 보기를 바란다.
별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목자들에게는 뭐가 나타났나. 나팔부는 천사가 나타났다. 찬양을 부르면서….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들중에 은사를 받아서 말로 데려오는 사람도 있고, 삶을 통해서 말은 안하지만 그렇게 전도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러분들은 별도 되고 천사도 되길 바란다.

전도할 때도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진 개성이 다르다
정말 주님의 교회로 부흥시키길 원한다면…
먼저 목사님의 장점을 10가지만 생각하라. 그리고 이 교회의 장점 10가지를 생각하라. 그 다음에 집사들의 장점 10가지 적어보십시오. 쉽지 않다. 이것 적어서 3년동안만 열심히 증거하고 다니라. 그랬는데도 교회 부흥 안되면 우리 교회 장로 10명 보내 주겠다.

내 장점을 모르는 자가 남의 장점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만날 때 마다 전하면 왜 부흥 안되겠나.

남자 여자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남자는 시각적인 것이 발전되었다. 오늘은 뉴욕, 내일은 어디, 막 붙여 놓으면 관심을 갖는다. 성경에도 에스더가 3일 금식… 왕한테 가서….화장실에도 전도하자 붙여놓고. 남자는 미각이 발달되서..후각이 발달되서..모든 사업은 먹는데서 시작한다..아수에르가 다 먹고 나니까… 뭐 해 주까? 헤로디아가 춤 추고 나니까.. 니 소원이 뭐꼬…

여자는 청각이 발달되었다. 그래서 여자는 존중해야 한다. 아이를 안고 있을 때 엄마 닮아서 너무 예쁘다고..그리고 여자는 촉감을 좋아해..
전도할 때도 플랜을 가지고 해야 한다..단적인 예지만 이런 것들이 전도의 방법론이 되어지기도 한다..

말씀이 임하실 때 여러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요나가 그렇게 하지않았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미루고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여러분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 예루살렘에서 니느웨까지 가는 길이 험했다. 자기 생각에 너무 먼 거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라.
목사는 기도할 따름. 그저 도구일 뿐임. 예수만 드러내야 한다. 나에게 능력까지 주신다. 내가 생각하는 길이 너무 멀어. 내가 가면 죽을꺼야. 세번째 생각은 그 곳이 적이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요나의 생각이다.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들은 무식할 정도로 믿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신다.

그래서 그는 다시스로 간다. 그 사람들이 심판 받아야 할 자들이지만 그리로 가라고 한다.
근데 자기 생각 때문에… 그 사명을 피해가는 사람은 요나 같은 사람이다.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라는 구절이 세 번이나 나타나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 얼굴 앞에 사는 것이다. Before God. 이게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 안 볼 것이다. 이것은 유신론적 무신론자다. 말로는 있다하면서 안 계시는 것처럼 사는 자들..안 계신 것처럼 사는 자들.

유학가서 제일 은혜가 된 것이 새벽기도안하는 것과 입고 싶은 것 입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핫펜츠에 나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대형 박물관에 갔는데 “아 목사님 아닙니까?” 반갑다고.. 목욕탕에서 목사님 찾아오는 인간 너무 미워죽겠어. 그 다음부터 절대 핫펜츠 안입는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실까.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고 하는데… 그것에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고..어떤 이는 그래서 우야꼬?…
경건한 척 살면서도 주님 한 번 봐주십시오. 이렇게 산다. 하나님은 마음 속에 있는 것도 다 아신다.
남만 생각하니까 그렇게 사는 것임.

요나처럼 하나님이 안 보신다 모를 것이다. 하고 다시스로 가는 모습. 하나님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죄 지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어. 나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진리가 어는 정도 되면 자유롭게 된다.

어떤이가 백차가 와서 막 도망갔다. 백차는 그 사람이 이유없이 막 도망가니 끝까지 쫓아가서 니 왜 도망갔노? 알고보니 그 사람이 수배된 사람이었는데 잡히자 마자 하는 소리가 “휴 살았다.” 이렇게 범죄한 마음은 항상 불안한 것임.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 이런 단계까지 나가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믿음 생활할 때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생각으로 살아라.

주어진 소명을 받은 사람이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을 때 풍랑을 만든다. 올라가는 길은 힘들지만 생명이 있다. 내려가는 길을 쉬운 것 같지만 심판의 길.

부러워하지 말라.

기도안해도 잘 되는 것같이 보이고 저 인간은 헌금안해도 물질이 막 붙는 것 같고 …. 이런거 조심해야 한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야겠다고 하는데 짠 배가 도착하고 딱 한 표가 남아서.. 산타루치아..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반대로 가는데.. 배가 딱 오고.. 날씨도 좋고.. 나이스지..

하나님 낯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 .. 잘 되는 것 같다가도 풍랑 만난다.

풍랑 만나니까 먼저 물질적인 손해가 온다. 배에 있던 가구고 뭐고 값나가는 것들 다 바다에 던져야 해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요나를 향해 “너 어디서 왔어?” 얼마나 인격적인 손실이 오는가..

물질적 손실이 왔죠. 뱃멀미.. 나를 통해서 남에게 물질적인 손실.. 회사가 망하고..
소명자가 피해가면 교회가 고통이 오고 가정이 고통이 오고 사업장이 고통이 온다..
그리고 배가 빨리 가야 하는데 또 얼마나 시간적인 손해를 보았나.

요나가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요나는 배포도 크다..풍랑이 오는데도 배 밑에서 잔다..풍랑이 와도 영적으로 민감해서 빨리 깨어야 한다.
제비뽑자고 할 때 그 전에 자수 해야지..하나님의 추적을 당하는 사람은 수단방법을 다 해도 뽑힌다..
그 때 깨달은 것임. 나는 히브리인다. 지금 말로 크리스챤이란 말임.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지 못했습니다. 회개하기 시작한다. 요나의 회개는 삶의 새로운 시작임. 그래도.. 그래도.. 하는 사람이 있다..
회개는 나를 들어 던지는 것이다. 완전히 죽어야 한다. 모든 요소가 막힐 때 나의 연고다..
교회가 부흥이 안되어지는 것은 나의 연고다..
요나가 이 풍랑을 만난 연고는… 나의 연고다..가정의 모든 문제는 나 때문에 그렇다. 어떤 벌도 달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마지막 결론
사명을 받은 자는 감당할 능력도 주신다. 그 사명을 미루지 말라. 그 사명을 피해 감으로 풍랑이 오는 것. 나를 깨우치기 위해서 이 자리로 부르신 것이다. 빨리 깨우쳐야 한다. 남을 탓하기 때문에 풍랑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어릴 적에 막내 숙부님이 나랑 나이차이가 별로 안나는데 장닭을 함께 잡은 적이 있다. 내가 장닭의 목을 비틀고 잡고 있고 숙부가 목을 자르는 데 한 반쯤 자르는 데 내가 장닭의 힘을 못이겨 놔버리고 말았다. 반쯤 목이 잘린 장닭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피를 다 뿌리고 다니는 데 빨리 그 닭을 먼저 잡아야 하는데 숙부는 나를 잡았다. 그러니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

우리가 죽을 때 팍 죽어야 한다. 죽으려면 완전히 죽어야 한다. 살리는 것은 주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