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16일 국내 최정상급 등반가, 박정헌 씨(34)는 고향후배 산악인, 최강식 씨(25)와 함께 히말라야산맥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미터)의 남서쪽 17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촐라체봉(6440미터)을 등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1년 내내 햇빛 한 줌도 들지 않는 얼음기둥을 정복한 기쁨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 빙하가 갈라진, 50미터 깊이의 크레바스에 후배가 갑자기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얼음벽에 후배의 온 몸이 부딪혔습니다. 25미터 길이의 자일이 팽팽하게 펴졌습니다. 1.5미터 폭으로 하늘이 몽롱하게 보였습니다. 시체처럼 매달린 채 멍하니 5분이 지났을까요. 꼭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크레바스 밖에서 앞서 가던 선배는 “악” 하는 소리와 함께 휘몰아친 충격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후배의 체중 75킬로그램을 못 이겨 자신의 체중 71킬로그램이 경사면에 충돌해 왼쪽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팽팽하게 당겨진 자일이 몸을 조이는 바람에 숨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자일을 잘라 나라도 살아야 할 것인가.’

히말라야에서 다리를 못 쓰는 동료와 함께 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 때 크레바스 안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형님, 살려 주이소. 다리가 부러졌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크레바스를 2미터 앞두고 선배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열 손가락에 남은 힘을 쏟아부어 자일을 쥐었습니다.

무감각한 다리이지만 후배는 필사적으로 자일에 매달렸습니다. 배낭 속의 등강기를 이용해 한 뼘씩 크레바스를 탈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러진 갈비뼈가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온 몸에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자 크레바스 틈으로 후배의 머리가 나타났습니다. “살았다.” 후배를 바깥으로 끌어낸 뒤 선배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살아서 돌아왔지만 선배는 자일을 쥐었던 손가락 8개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선배의 그 뭉툭한 손을 볼 때마다 후배는 그 구원의 감격을 되살리겠지요. 크레바스에 빠진 후배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죽을지라도 그를 살리겠다’는 굳은 결심이 먼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이 뭉개지는 행동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우리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굳게 결심하셔야 했고 희생적으로 행동하셔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9:51). 우리가 굳게 결심하지 않고서는 용기 있는 행동, 희생적인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려면 첫째로 마음을 다지고 또 다지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굳은 결심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수시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대단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로 흔들리는 마음에 쐐기를 박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뭔가 하나를 이루려면 기도도 전쟁을 벌이듯이 사생결단을 하고 해야 합니다.

셋째로 기도의 능력에 힘입은 결행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마21:10). 그 어떤 고난이 기다린다고 해도 과감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셔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결박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결행했습니다(행20:23-24). 우리도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단단히 결심할 뿐만 아니라 기도로 힘을 얻어 결행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김종춘 목사(www.dreamel.com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