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년간 미주 한인들과 아침을 함께 하던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홈 스위트 홈' 진행자 노형건 단장. 말더듬이었던 그가 최고 인기 프로그램 DJ가 되기까지의 사연을 <10년된 다이어리>는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 성악가로서, 오페라 지휘자로서 미주사회에서 명성을 날리던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찬양으로 바친 지난 10여 년의 세월, 그리고 '선교오페라'를 통해 조국과 전세계로 펼쳐질 그의 꿈이 배여있다.
사진작가 서성일의 작품으로 빚어진 오페라 캘리포니아 선교오페라단 노형건 단장의 영상메시지 <10년된 다이어리>는 다음과 같은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모래밭에 노형건과 또하나의 발자국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노형건 발자국은 없어지고 옆에서 걷던 그 발자국만
깊이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었습니다.
물었습니다! 노형건인 어디 갔느냐고?!
옆에서 걷던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안고 가고 있노라고
울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님께 안겨 살아온 10년 시간이
"10년 된 다이어리"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합니다.
이제 또 걸어가야 될 그 길을
이 책을 읽으시는 당신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다민족 선교오페라 'Oh Jesus'가 전세계 무대에 오를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노 단장은 "온 인류가 화합하여 하나님께 신령과 마음으로 찬양을 드릴 때까지 저의 찬양은 계속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지난 20년을 꿈꾸어오던 세계최초의 영혼구원을 위한 다민족 선교오페라 'Oh Jesus'는 그가 만난 '사랑이신 주님'을 증거하고자 하는 취지에 비롯됐다.
멜깁슨의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의 음악을 담당했던 마이크 왓츠(Mike Watts)의 음악과 문희의 각색으로 오는 2006년 전세계에 선보이게 된다.
노 단장은 이벤트성으로 그치는 콘서트 공연이 아닌 선교 목적의 오페라 공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번의 공연으로 그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공연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되어야 하고 선교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오페라는 사실 돈이 많이들고 외국적인 예술장르이지만 저렴하게 할 수 있고 한국의 영성을 담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찬양을 담은 오페라로 한류열풍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노형건 단장은 중앙대학 음대 졸업 후 국립 합창단과 김자경 오페라단에서 단원 및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1980년 도미, 미국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Opera Full Scholarship 장학생으로 오페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워싱턴 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 중 1989년 남가주로 이주해 오페라 캘리포니아 선교 오페라단(전 나성 한미 오페라단) 창단했으며 16년동안 수많은 오페라와 뮤지컬 공연을 했다.
1998년 '주님께 드려요' 1집 음반 출반 및 1999년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2집 음반 출반, 2003년 '허락하셨네' 3집 음반출반 국내외 500여회 이상의 찬양집회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3700여 회에 이르는 미주지역 최장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홈 스위트 홈'(AM1650 라디오 서울) 진행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에스더, La Boheme, La Traviata, Le Nozze Di Figaro) 및 남가주에 위치한 세계등대교회 시온 찬양대 지휘자 및 기독 여성 합창단, 사랑 여성 합창단, 믿음 남성 합창단 등의 단체를 이끌고 있다.
오페라 캘리포니아 선교 오페라단의 단장으로 활동 중 지난 2002년 아프리카 선교사역의 일환으로 케냐, 탄자니아, 콩고등 아프리카 지역의 복음사역을 위해 '르완다어'와 '스와힐리어'로 된 찬양 번역집을 20,000여장 제작 무상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2004년 7월, 100여명의 헌신자(소년소녀 합창단 40명 포함)들과 아프리카 선교사상 최초로 우간다와 르완다에서 뮤지컬 'For God so loved the world'를 공연했다.
오는 2006년에는 아프리카 우간다 빅토리아 호수 주변의 섬에서 에이즈와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영혼들을 위한 의료선교선박 제작을 돕기 위한 찬양사역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또 성악가로서, 오페라 지휘자로서 미주사회에서 명성을 날리던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찬양으로 바친 지난 10여 년의 세월, 그리고 '선교오페라'를 통해 조국과 전세계로 펼쳐질 그의 꿈이 배여있다.
사진작가 서성일의 작품으로 빚어진 오페라 캘리포니아 선교오페라단 노형건 단장의 영상메시지 <10년된 다이어리>는 다음과 같은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모래밭에 노형건과 또하나의 발자국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노형건 발자국은 없어지고 옆에서 걷던 그 발자국만
깊이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었습니다.
물었습니다! 노형건인 어디 갔느냐고?!
옆에서 걷던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안고 가고 있노라고
울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님께 안겨 살아온 10년 시간이
"10년 된 다이어리"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합니다.
이제 또 걸어가야 될 그 길을
이 책을 읽으시는 당신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다민족 선교오페라 'Oh Jesus'가 전세계 무대에 오를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노 단장은 "온 인류가 화합하여 하나님께 신령과 마음으로 찬양을 드릴 때까지 저의 찬양은 계속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지난 20년을 꿈꾸어오던 세계최초의 영혼구원을 위한 다민족 선교오페라 'Oh Jesus'는 그가 만난 '사랑이신 주님'을 증거하고자 하는 취지에 비롯됐다.
멜깁슨의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의 음악을 담당했던 마이크 왓츠(Mike Watts)의 음악과 문희의 각색으로 오는 2006년 전세계에 선보이게 된다.
노 단장은 이벤트성으로 그치는 콘서트 공연이 아닌 선교 목적의 오페라 공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번의 공연으로 그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공연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되어야 하고 선교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오페라는 사실 돈이 많이들고 외국적인 예술장르이지만 저렴하게 할 수 있고 한국의 영성을 담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찬양을 담은 오페라로 한류열풍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노형건 단장은 중앙대학 음대 졸업 후 국립 합창단과 김자경 오페라단에서 단원 및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1980년 도미, 미국 Washington D.C.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서 Opera Full Scholarship 장학생으로 오페라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워싱턴 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 중 1989년 남가주로 이주해 오페라 캘리포니아 선교 오페라단(전 나성 한미 오페라단) 창단했으며 16년동안 수많은 오페라와 뮤지컬 공연을 했다.
1998년 '주님께 드려요' 1집 음반 출반 및 1999년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2집 음반 출반, 2003년 '허락하셨네' 3집 음반출반 국내외 500여회 이상의 찬양집회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3700여 회에 이르는 미주지역 최장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홈 스위트 홈'(AM1650 라디오 서울) 진행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에스더, La Boheme, La Traviata, Le Nozze Di Figaro) 및 남가주에 위치한 세계등대교회 시온 찬양대 지휘자 및 기독 여성 합창단, 사랑 여성 합창단, 믿음 남성 합창단 등의 단체를 이끌고 있다.
오페라 캘리포니아 선교 오페라단의 단장으로 활동 중 지난 2002년 아프리카 선교사역의 일환으로 케냐, 탄자니아, 콩고등 아프리카 지역의 복음사역을 위해 '르완다어'와 '스와힐리어'로 된 찬양 번역집을 20,000여장 제작 무상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2004년 7월, 100여명의 헌신자(소년소녀 합창단 40명 포함)들과 아프리카 선교사상 최초로 우간다와 르완다에서 뮤지컬 'For God so loved the world'를 공연했다.
오는 2006년에는 아프리카 우간다 빅토리아 호수 주변의 섬에서 에이즈와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영혼들을 위한 의료선교선박 제작을 돕기 위한 찬양사역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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