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년간의 한국 사랑을 하면서 이제 완전한 한국인이 되었습니다. 남은 생도 한국에서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33년간 나사렛성결교단의 선교사로써 한국을 사랑하며 한국인이 되고자 노력했던 나사렛대학교 백위열 총장이 총장을 이임하며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총장용 자가용 대신 낡은 봉고차를 직접 운전해 출퇴근하고 월급과 외부 강사비 전액을 학교에 기부하는 ‘청빈 총장’으로 화제가 됐던 천안 나사렛대학교 백위열(63·미국명 William H. Patch)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교정을 떠난다.
오는 2월 17일에 열리는 이임식을 끝으로 학교생활을 마감하는 백 총장이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73년 10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 동부나사렛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세인트로렌스 대학원을 거쳐 로체스터 대학에서 상담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그는 어느 날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이 되라’는 음성을 듣고 한국을 자원하여 아내 그리고 어린 두 딸과 함께 선교사로 오게 되었다. 한국 땅에 온 그는 처음에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나사렛대학교 전신인 나사렛신학교 초대 교장직을 맡아 교육활동에 투신하게 된다.
처음 한국땅을 발은 1973년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 시작되던 시기로 그는 바쁜 재소자 사역과 교육활동 중에도 선교활동을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도시락을 싸들고 농촌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며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배우며 한국사랑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한국인 남자아이를 입양하여 키울정도로 백총장의 한국사랑은 남다르다. 백총장은 영어학과 교수인 부인과 함께 나사렛대학을 위해 33년간 봉사하며 그동안 대학에 봉사한 것에 비해 너무나 작은 보답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월급과 강사비 전액 학교에 기부한 청빈 총장
월급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받는 강사료까지 모두 학교에 내놓았던 백총장은 나사렛대에서 제공하는 승용차도 항상 부담스러워 낡은 승합차를 주로 이용하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교육적 혜택을 못하고 집안에 감추져 생활하는 것을 목격한 백총장은 이들에게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들을 위해 전국대학 최초로 대학부설 특수 유치원, 초등학교 과정을 개설했으며, 나사렛대가 전국대학 최초로 장애인전형을 실시하도록 해 장애인들의 교육권을 실천하는데 앞장서 왔다.
장애인 교육권 실현 및 재소자 처우 개선에 앞장서
특히 장애인들의 학습권 실현 및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점을 인정받아 지난 2003년에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수여하는 장애인 인권상을 수상했다.
장애아 문제만큼이나 백 총장은 재소자 사역에도 관심이 많았다. 처음 선교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교도소 사역에 앞장서온 백 총장은 최근까지 수원교도소, 천안교도소, 대전교도소 등에서 내·외국인 재소자들에게 정기적인 특강 및 성경학습 등을 진행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민들에게 앞선 문화를 베풀어 주는 ‘시혜자’가 아니라 한국인과 함께 한국인화 되었던 ‘동화자’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총장으로서의 8년 임기는 끝났지만 아직도 한국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하는 백 총장. 30년을 넘게 살아온 이 땅이 이제는 전혀 남의 나라 같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백 총장은 이임 후 한국에 온 이래 처음으로 1년간의 장기적인 안식년을 두 딸과 한국인 입양아들이 있는 미국에서 보낸후 부인과 함께 한국에 다시 돌아와 나사렛대학교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봉사와 한국인과 미국인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국제화를 이루는데 일조하는데 몸바치는 제2의 삶을 살 계획이라고 밝혔다.
33년간 나사렛성결교단의 선교사로써 한국을 사랑하며 한국인이 되고자 노력했던 나사렛대학교 백위열 총장이 총장을 이임하며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총장용 자가용 대신 낡은 봉고차를 직접 운전해 출퇴근하고 월급과 외부 강사비 전액을 학교에 기부하는 ‘청빈 총장’으로 화제가 됐던 천안 나사렛대학교 백위열(63·미국명 William H. Patch)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교정을 떠난다.
오는 2월 17일에 열리는 이임식을 끝으로 학교생활을 마감하는 백 총장이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73년 10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 동부나사렛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세인트로렌스 대학원을 거쳐 로체스터 대학에서 상담학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그는 어느 날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이 되라’는 음성을 듣고 한국을 자원하여 아내 그리고 어린 두 딸과 함께 선교사로 오게 되었다. 한국 땅에 온 그는 처음에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사역을 시작했으며, 나사렛대학교 전신인 나사렛신학교 초대 교장직을 맡아 교육활동에 투신하게 된다.
처음 한국땅을 발은 1973년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 시작되던 시기로 그는 바쁜 재소자 사역과 교육활동 중에도 선교활동을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도시락을 싸들고 농촌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며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배우며 한국사랑의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한국인 남자아이를 입양하여 키울정도로 백총장의 한국사랑은 남다르다. 백총장은 영어학과 교수인 부인과 함께 나사렛대학을 위해 33년간 봉사하며 그동안 대학에 봉사한 것에 비해 너무나 작은 보답도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검소한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월급과 강사비 전액 학교에 기부한 청빈 총장
월급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받는 강사료까지 모두 학교에 내놓았던 백총장은 나사렛대에서 제공하는 승용차도 항상 부담스러워 낡은 승합차를 주로 이용하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교육적 혜택을 못하고 집안에 감추져 생활하는 것을 목격한 백총장은 이들에게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들을 위해 전국대학 최초로 대학부설 특수 유치원, 초등학교 과정을 개설했으며, 나사렛대가 전국대학 최초로 장애인전형을 실시하도록 해 장애인들의 교육권을 실천하는데 앞장서 왔다.
장애인 교육권 실현 및 재소자 처우 개선에 앞장서
특히 장애인들의 학습권 실현 및 사회적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점을 인정받아 지난 2003년에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수여하는 장애인 인권상을 수상했다.
장애아 문제만큼이나 백 총장은 재소자 사역에도 관심이 많았다. 처음 선교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교도소 사역에 앞장서온 백 총장은 최근까지 수원교도소, 천안교도소, 대전교도소 등에서 내·외국인 재소자들에게 정기적인 특강 및 성경학습 등을 진행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민들에게 앞선 문화를 베풀어 주는 ‘시혜자’가 아니라 한국인과 함께 한국인화 되었던 ‘동화자’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총장으로서의 8년 임기는 끝났지만 아직도 한국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하는 백 총장. 30년을 넘게 살아온 이 땅이 이제는 전혀 남의 나라 같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백 총장은 이임 후 한국에 온 이래 처음으로 1년간의 장기적인 안식년을 두 딸과 한국인 입양아들이 있는 미국에서 보낸후 부인과 함께 한국에 다시 돌아와 나사렛대학교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봉사와 한국인과 미국인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국제화를 이루는데 일조하는데 몸바치는 제2의 삶을 살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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