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태20:15)

12월을 맞이하면 성탄절과 아울러 年末 그리고 역사의 종말, 인생의 終末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종말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 個個人의 문제에 비춰볼 때에는 불안과 두려움도 엄습해 오곤 한다. 그것은 죽음과 동시에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속에서 저질렀던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드러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태복음20장1절~16절에 나타난 천국의 비유인 <포도원의 노동자> 비유 말씀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다루어 주시는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포도를 수확하는 계절을 맞이하여 포도원의 주인은 품군을 얻기 위하여 이른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섰다. 질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하여는 포도송이가 충분히 익어야 하나 동시에 너무 익기 전에 따야만 한다. 포도 수확은 일각의 유예도 있어선 안된다. 그러기에 많은 품군이 필요한 것이? ?/SPAN>. 포도원 주인은 몇번이고 장터에 가서 품군을 고용한다. 여기서 예수의 시대에도 실업자가 있었고 노동자는 생활을 위해서 임금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녁이 다되어 해가 기울어지는 오후5시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섰는지라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섰느뇨>라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한 이들이 노인이었는지 병들어 있는 자들이었는지 아니면 보기에 품군으로 쓰기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듯한 사람들이었던 것같다. 그러나 주인은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말해 주었다. 여기서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서 노동의 생산성보다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을 지적해주고 있다.

그런데 해가 저물매 품군을 불러 품삯을 마지막에 들어온 자부터 나누어 주기 시작하였다. 그 때 노동을 했던 모두의 눈이 주인의 손에 집중이 되었다. 아니! 마지막에 들어와 겨우 한시간만 일한 품군에게 하루치의 임금인 1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는 것이 아닌가! 주변의 품군들 사이에 흥분된 분위기가 나돌았다.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 들어와 땀흘려 고생하며 일한 품군들의 마음 속에 당연히 자기들은 몇배 더많은 품삯을 받을 수가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나누어 준 것은 오직 1데나리온 뿐이었다. 그들은 흥분하여 심히 노하며 주인을 원망하며 불평을 터뜨렸다. <마지막에 들어온 자들은 1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소이다. 뜨거운 태양 빛 아래서 땀흘려 고생하며 일을 하루종일 한 우리에게 저들과 같은 대우를 한단말이오> 그것은 열심히 일한 자를 희생시키는 일이요 게으른 자들을 우대하는 주인의 변덕스런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인은 말한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1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내가 다른 연약한 자에게 후하게 줌으로 네가 질투하느냐?> 여기에서 우리는 능률화, 조직화, 합리화, 효율화라고 하는 목표 지향의 현대 산업 구조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을 읽을 수 있다.

포도원 집주인인 하나님이 약속한 하루의 품삯인 데나리온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義 즉 예수님 그 자신이었다. 아무런 일도 못한 무익한 자라고 여겨지는 자에게 1데나리온을 주는 것은 아무런 공로도 없이 무익한 종과 같이 생각되는 자를 죄인인 그대로 그리스도의 속죄,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하여 받아들여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요, 후한 처사이다. 하나님은 공로상, 공덕의 구원을 취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은 지금 연말을 맞아서 하나님의 사랑에 둘러싸여 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나라의 기초는 하 나님의 후한 처사이다. 이 비유를 통해서 주 예수는 우리들 하나님 아버지의 본질을 계시해 주셨다. 역사의 終末에 나타나는 그것은 <하나님의 후한 처사>이다.

재일대한기독교회 총간사 박수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