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은 사망 53명, 부상 4천명, 검거 1만8천명이라는 LA시 전체의 통계만 남긴 것이 아니다. 커뮤니티를 지키려고 길거리로 나섰던 의로운 한인 1명이 사망했고 46명의 청년들이 부상당했다. 한인업소 1천6백개가 전소 혹은 파괴됐고 한인만 4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올해는 16주년이다. 그때의 그 상처도 이제는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다. 당시 모조리 무너졌던 한인들의 경제력도 이제 다시 그때 이상으로 성장했고 미국 사회 내의 영향력도 강화돼 가고 있다.

미국 사회 내의 빈곤, 인종 갈등, 미국 언론의 편파적 태도, 주류 정치계의 외면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들이 한인들을 흑인폭동의 주요한 피해자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비단 그런 직접적인 원인 외에도 당시 한인들이 미국 사회의 소수인종으로써 간과했던 문제들이 누적돼 이 사건이 터졌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를 지키려면 남부터 사랑해야... 한-흑갈등에서 한-라티노 갈등으로 전개

당시 한인들이 흑인밀집지구에서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도 불똥이 한인에게 튄 한 가지 이유다. 더 근본적인 면에서는 일부 한인이 흑인의 상권을 점유해 경제력을 확보하면서도 흑인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해선 타 커뮤니티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나누어야 한다는 소중한 진리를 흑인폭동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지금은 한인교회와 흑인교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교류, 연합 활동이 전개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오늘 한인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존재는 라티노들이다. 과거 한-흑갈등이 주인과 고객의 갈등이었다면 한-라티노 갈등은 주인과 고용인의 갈등이다. 라티노의 노동력에 의지해 사업하면서 라티노들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고용주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한인타운 내에서 적지 않게 듣는다. 흑인폭동의 교훈을 상기한다면 지금 라티노 커뮤니티를 위해 우리 한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주류 사회 진출할 지도자 양성 시급

흑인들이 무차별 방화와 약탈을 시작했을 때, 경찰들은 한인타운 내에서 일고 있는 폭동을 진압하기보다는 이 폭동이 백인 거주지구까지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급급했다. 폭동을 진압할 주 방위군 투입도 하루나 늦어져 한인타운이 완전히 전소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타운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의로운 청년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나섰지만 수만명의 폭도들 앞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폭동은 백인 경찰이 흑인 청년을 무차별 구타한 후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미국 주류 언론들은 자신의 상점에서 도둑질하는 흑인 고객을 제지하려다 폭력의 위협을 당하자 총을 쏜 한인 업주의 사건을 계속 방영하며 흑인폭동의 원인인 흑-백 갈등을 한-흑 갈등으로 왜곡해 갔다.

이후 한인들에겐 정치력 신장과 주류 사회 진출이라는 주요한 과제가 생겼다. 한인사회의 중심이 한인교회인만큼 한인교회가 지난 16년동안 리더십을 이 사회에 제대로 배출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때가 됐다. 공부와 성공, 부와 명예라는 등식에서 벗어날 때다. 한인들이 이 사회에 얼마나 공헌하고 존경받으며 그로 인해 정치력을 인정받고 주류 사회에 진출하고 있는가? 기독교적 리더십으로 무장된 2세대를 발굴하기 위해 우리 한인교회는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이제 사랑과 섬김의 행진할 때

한인이민사 1백년이 넘어가면서 우리는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말한다. 그러나 16년 전 오늘 있었던 이 사건은 미국에서의 진정한 성공은 나만이 아닌 남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이제 우리 한인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으로 남을 섬기고 나눠주는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에 발을 내딛을 때다. 16년 전 오늘과 16년 후 오늘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