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가 자랑스런 나라인가? 경제 부강을 이룬 일본 나라가 자랑스런 나라인가? 과학 부강을 이룬 독일 나라가 자랑스런 나라인가? 경제 부강과 과학 부강과 군사 부강을 이룬 미국 나라가 자랑스런 나라인가? 월드 컵에 우승한 브라질 나라가 자랑스런 나라인가?

물론 그 나라 사람들은 그런 자기들의 나라가 자랑스런 나라라고 자부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자랑스런 나라란 말은 자기가 자기 나라를 가리키며 자부하는 말이라 기 보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가리키며 칭송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자기들도 자기 나라를 바라보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터키 사람들과 동티모르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로부터 사람다운 대접을 받았다고 말하며 한국 나라를 칭송할 때 한국 나라는 자랑스런 나라가 된다. 문제는 간단하고 단순하다. 어떤 나라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이념을 넘어서서 세계를 품으며 겸손한 자세로 도움과 격려와 사랑의 손길을 펼 때 그 나라는 자랑스런 나라가 된다.

오늘날 자랑스런 나라 되는 것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이다. 얼마 전 일본 오사카에서 “민족주의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를 가지고「제 9차 일한 교회지도자 간담회」가 열렸다.

일본 대표도 한국 대표도 각각 자기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배타적 및 정복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서술했다. 일본의 신도주의적 국가주의의 잘못을 일본 대표가 신랄하게 비판했고 아울러 미국의 정치적 국가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일본 신사를 참배한 부시 대통령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서구 선교운동 배후에 문화적 경제적 및 식민주의적 민족주의적 요소가 숨겨져 있었다고 지적하며 그것을 반복하는 실수를 우리가 범하면 안 된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발표를 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개인주의와 종족주의와 민족주의이다. 그것은 지구 상에 존재한 모든 증오와 싸움의 근원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에게로 향하는 운동이다. 현대가 목격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간의 증오와 전쟁, 일본과 한국간의 증오와 전쟁, 남한과 북한간의 증오와 전쟁, 그리고 미국과 아프카니탄 (및 이락)간의 증오와 전쟁은 선과 악의 가치 판단에 근거한 증오와 전쟁이라 기 보다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념과 이해관계에 근거한 증오와 전쟁이라고 하겠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부정하는 가장 도전적인 성구는 이사야 19장23-24이라고 하겠다. 그날에 세 원수 나라들인 이스라엘과 앗수르와 애굽이 피차 왕래하고 함께 경배하고 함께 세상에 복이 되겠다고 했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건설하는 것이 성경의 중요한 주제이고 기독교와 선교 역사의 중요한 주제이다.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길은 종족들과 나라들이 서로 만나는 길이다.

필자는 증오하고 무시하던 일본 교회 지도자들과 만나고 또 만나므로 민족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고 북한 사람들과 만나고 또 만나므로 국가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증오와 전쟁의 기운이 팽배한 이 때에 자기 나라의 이해관계를 증진하는 일을 넘어서서 하나님 나라와 세계 평화를 선포하고 증진하는 일이다.”

나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서고 내 민족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일이 쉬운 일도 가능한 일도 아니다. 슈바이쳐 박사와 테레사 수녀처럼 나라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일이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우리들이 목표로 세워야 할 이상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랑스런 나라 만들기 운동은 구호나 시위로 되는 것도 아니다. 삶으로 된다. 자랑스런 나라 만들기 운동이 자칫 정치적인 구호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자칫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띈 운동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악한 자들의 편이 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약한 자들의 편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세이고 예수님의 자세가 아닌가?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