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 훈련 중 힘든 것이 공수훈련이다. 낙하산을 등에 지고 하늘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 임무인 공수 부대원들은 뛰어 내릴 때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두려움을 이기고 뛰어 내릴 수 있는 것은 혹독한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저의 형님은 통신병 훈련을 받을 때 전봇대 위로 올라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 올라가지를 못하자 손바닥을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한다. 그 후에 이상하게 무서움이 없어지면서 전봇대를 올라 갈 수 있었다고 했다. 체벌을 받고 나니 두려움이 좀 사라지고 임무를 완수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생긴 모습 그대로 사는 사람과 훈련받은 사람이다.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차이가 있다. 훈련 받은 사람들에게는 가능성이 발휘되어 진다. 그 가능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영어 격언에는 Practice makes perfect(훈련이 완벽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말이 좀 어눌한 저는 신학교 다닐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이 공중기도였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소원과 간구이지만 실제로 공중기도는 하나님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는다. 청중을 의식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에는 많이 떨렸다. 그러나 오래 하다 보니 공중 기도의 두려움도 많이 극복하였다. 공중 기도의 두려움은 계속 반복되는 훈련에 의해 극복되었다.
지금까지 사람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목회를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인생의 짐이 무거운데 더 무거움을 가중 시키고 싶지가 않았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또 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믿음의 훈련을 스스로 받겠지 하고 생각을 했다.그러나 누가 스스로 어려운 훈련을 받겠는가? 예를 들면 누가 새벽기도를 자발적으로 하겠는가? 어떨 때는 목사들도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이 힘들어 속으로 “새벽기도를 누가 만들어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푸념 할 때가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기도의 본인 것을 잘 알면서도 힘이 들때 한번씩 하는 말이다. 어느 1.5세는 새벽기도 때문에 자기는 목사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평신도들이 의무도 없는 새벽기도를 하겠는가?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죄성이 있는 쪽으로 흐르고 약점이 드러나는 쪽으로 가게 된다. 쉬운 쪽으로만 살다보면 결국 열매가 없고 발전이 없는 인생이 된다. 믿는 자들도 영적 성숙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서 보담아 주는 목회도 필요하지만 교회가 병원처럼 환자 중심으로 움직여지면 안된다. 성도를 환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교회는 잘해야 겨우 살아남는 교회가 될 것이다. 제자 훈련하신 옥한흠 목사님께서“명품 진도견도 훈련 안받으면 x개하고 같다”고 했다. “훈련 받으면 살고 안받으면 죽는다” 이 말은 좀 과장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 편하게 죽는것 보다 훈련받고 사는 것이 낫다
지난번 집회하신 권준 목사님의 말씀에도 이민 교회 목사님들이 성도님들을 너무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말씀을 했다. 교회의 평일 새벽기도 숫자는 교인수의 십일조라고 한다. 50명 정도 모여 기도하면 좋겠다.“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3,14).
사람들은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생긴 모습 그대로 사는 사람과 훈련받은 사람이다.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차이가 있다. 훈련 받은 사람들에게는 가능성이 발휘되어 진다. 그 가능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영어 격언에는 Practice makes perfect(훈련이 완벽하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말이 좀 어눌한 저는 신학교 다닐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이 공중기도였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소원과 간구이지만 실제로 공중기도는 하나님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는다. 청중을 의식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에는 많이 떨렸다. 그러나 오래 하다 보니 공중 기도의 두려움도 많이 극복하였다. 공중 기도의 두려움은 계속 반복되는 훈련에 의해 극복되었다.
지금까지 사람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목회를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인생의 짐이 무거운데 더 무거움을 가중 시키고 싶지가 않았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또 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믿음의 훈련을 스스로 받겠지 하고 생각을 했다.그러나 누가 스스로 어려운 훈련을 받겠는가? 예를 들면 누가 새벽기도를 자발적으로 하겠는가? 어떨 때는 목사들도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이 힘들어 속으로 “새벽기도를 누가 만들어서 이 고생을 시키는가?”푸념 할 때가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기도의 본인 것을 잘 알면서도 힘이 들때 한번씩 하는 말이다. 어느 1.5세는 새벽기도 때문에 자기는 목사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평신도들이 의무도 없는 새벽기도를 하겠는가?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죄성이 있는 쪽으로 흐르고 약점이 드러나는 쪽으로 가게 된다. 쉬운 쪽으로만 살다보면 결국 열매가 없고 발전이 없는 인생이 된다. 믿는 자들도 영적 성숙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서 보담아 주는 목회도 필요하지만 교회가 병원처럼 환자 중심으로 움직여지면 안된다. 성도를 환자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교회는 잘해야 겨우 살아남는 교회가 될 것이다. 제자 훈련하신 옥한흠 목사님께서“명품 진도견도 훈련 안받으면 x개하고 같다”고 했다. “훈련 받으면 살고 안받으면 죽는다” 이 말은 좀 과장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 편하게 죽는것 보다 훈련받고 사는 것이 낫다
지난번 집회하신 권준 목사님의 말씀에도 이민 교회 목사님들이 성도님들을 너무 과소 평가하고 있다는 말씀을 했다. 교회의 평일 새벽기도 숫자는 교인수의 십일조라고 한다. 50명 정도 모여 기도하면 좋겠다.“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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