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선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 미국의 선교 신학자 맥가브란(McGavran)박사는 우리가 선교 신학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다 선교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 것도 선교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선교에 대한 어떤 신학을 구성하기 전에 먼저 '선교'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의를 내려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이 용어가 무엇이든지 다 의미할 수도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25년간 진행되어 왔으며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진행되어지고 있는 "선교"에 관한 광의의 재해석은 "선교의 일반적 의미"에 관해서 성경적으로 그리고 정확히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20세기 말부터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세속주의(Secularism), 상대주의(Relativism) 및 타종교 세력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됨에 따라서 그 문화적 갈등이 심각해져 가고 있다. 비 종교인에 대해서 취해야 할 기독교인들의 태도와 접근 방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선교적 견해의 차이나 문제점 못지 않게 선교 신학 자체가 당면한 과제 중의 하나는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깊은 사색과 정리가 다시 한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이 교회의 본질과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목표 확립에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이 정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선교의 이론 확립 곧 선교 신학 그 자체의 혼란은 물론이거니와 선교의 실제적 활동과 실천 곧 선교사의 파송에도 변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현대 교회 성장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맥가브란은 "주류 교단들과 역사가 오랜 선교회 측에서는 '선교'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점차 확산되는 혼돈 때문에 선교사 파송에 엄청난 쇠퇴가 왔다"고 했다.
교회사학자인 빌헤름 파우크(Wilhelm Pauck)가 초대 교회사를 언급하면서, "초대 교회는 뜨거운 선교 정신에 의해서 교회의 신학이 결정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글을 읽고 필자는 선교학 연구에 대한 자긍심과 격려를 얻었다. 초대교회는 그 선교 정신(the missionary spirit)에 의해서 교회의 신학(The theology of the church)이 결정적으로 형성되었다. 기독교 역사상 초대 교회의 형성기만큼 선교적 노력에 있어서 신학적 책임과 창조성을 발휘한 적이 없다.
그런데 1950년대 이후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의 집단 가운데서 이 "선교"라는 용어의 사용이 놀랄 정도로 급증했다. 그래서 스티펀 니일(Stephen Neill)은 "모든 것이 선교이면 아무 것도 선교가 아니다"(If everything is mission, nothing is mission)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맥가브란이 "교회 성장"(church growth)이라는 용어를, "선교"(mission)라는 용어를 너무 무분별하게 남용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1950년 이전까지는 "mission"이라는 의미가 비록 통일된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히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토마스 옴(Thomas Ohm)은 그의 저서 선교학 이론(Theorie der Mission)에서 "선교"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8가지 종류와 관련을 짓고 있다.
1. 지정된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
2. 파송 받은 선교사들의 선교활동들
3.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지리적 영역
4. 선교사 파송기구
5. 비기독교 지역이나 피선교지
6. 피선교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중심적 근거지
7. 전담 목회자 없이 다른 기존 교회에 의존하는 미 자립지역 교회
8. 명목상으로만 기독교적인 체하는 환경에서 기독교 신앙을 더욱 깊게 하거나 그 신앙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시도된 일련의 특별 사역
이라고 한 반면에 K. 뮐러는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또는 "포괄적 구원"(umfassende Heil)이라는 글에서 "선교"를 정의하기를
1. 신앙의 전파
2. 하나님의 통치 영역 확장
3. 이방인들의 회심
4. 교회를 새로이 설립하는 것
이라고 했다.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The Christian faith is intrinsicaly missionary). 신약의 초대교회도 본질적으로는 선교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만이 유일하게 선교적인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나 불교에서도 선교적 특징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과거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 신학의 특징은 기독교인 상호간의 관계를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보다 더 중요시하면서 기독교가 세상을 향한 관계 즉 "선교"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있는 신학적 연구와 정리가 부족하거나 불충분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들 기독교 신앙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다른 종교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줄어든다는 아이러니칼한 견해나 "기독교가 20세기 이후의 다원화 사회에 대한 신학적 준비가 없다"는 견해도 나왔다.
그러므로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 교수를 역임한 제랄드 H. 앤더슨(Gerald H. Anderson)은
"오늘날 선교에서의 근본 문제는 선교의 본질과 의미를 규명하는 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규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은 신학적 사유 영역 중에서 선교의 신학적 작업(theologizing)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계이다. 이것은 세계 복음화의 효용 증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와 헌신에 있어서도 그들의 의무를 깊이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함을 거듭 지적하는 바이다.
선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 미국의 선교 신학자 맥가브란(McGavran)박사는 우리가 선교 신학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다 선교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 것도 선교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선교에 대한 어떤 신학을 구성하기 전에 먼저 '선교'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의를 내려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이 용어가 무엇이든지 다 의미할 수도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25년간 진행되어 왔으며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진행되어지고 있는 "선교"에 관한 광의의 재해석은 "선교의 일반적 의미"에 관해서 성경적으로 그리고 정확히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20세기 말부터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세속주의(Secularism), 상대주의(Relativism) 및 타종교 세력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됨에 따라서 그 문화적 갈등이 심각해져 가고 있다. 비 종교인에 대해서 취해야 할 기독교인들의 태도와 접근 방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선교적 견해의 차이나 문제점 못지 않게 선교 신학 자체가 당면한 과제 중의 하나는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깊은 사색과 정리가 다시 한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이 교회의 본질과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목표 확립에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이 정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선교의 이론 확립 곧 선교 신학 그 자체의 혼란은 물론이거니와 선교의 실제적 활동과 실천 곧 선교사의 파송에도 변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현대 교회 성장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맥가브란은 "주류 교단들과 역사가 오랜 선교회 측에서는 '선교'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점차 확산되는 혼돈 때문에 선교사 파송에 엄청난 쇠퇴가 왔다"고 했다.
교회사학자인 빌헤름 파우크(Wilhelm Pauck)가 초대 교회사를 언급하면서, "초대 교회는 뜨거운 선교 정신에 의해서 교회의 신학이 결정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글을 읽고 필자는 선교학 연구에 대한 자긍심과 격려를 얻었다. 초대교회는 그 선교 정신(the missionary spirit)에 의해서 교회의 신학(The theology of the church)이 결정적으로 형성되었다. 기독교 역사상 초대 교회의 형성기만큼 선교적 노력에 있어서 신학적 책임과 창조성을 발휘한 적이 없다.
그런데 1950년대 이후부터는 그리스도인들의 집단 가운데서 이 "선교"라는 용어의 사용이 놀랄 정도로 급증했다. 그래서 스티펀 니일(Stephen Neill)은 "모든 것이 선교이면 아무 것도 선교가 아니다"(If everything is mission, nothing is mission)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맥가브란이 "교회 성장"(church growth)이라는 용어를, "선교"(mission)라는 용어를 너무 무분별하게 남용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1950년 이전까지는 "mission"이라는 의미가 비록 통일된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히 분명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토마스 옴(Thomas Ohm)은 그의 저서 선교학 이론(Theorie der Mission)에서 "선교"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8가지 종류와 관련을 짓고 있다.
1. 지정된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
2. 파송 받은 선교사들의 선교활동들
3.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지리적 영역
4. 선교사 파송기구
5. 비기독교 지역이나 피선교지
6. 피선교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중심적 근거지
7. 전담 목회자 없이 다른 기존 교회에 의존하는 미 자립지역 교회
8. 명목상으로만 기독교적인 체하는 환경에서 기독교 신앙을 더욱 깊게 하거나 그 신앙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서 시도된 일련의 특별 사역
이라고 한 반면에 K. 뮐러는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또는 "포괄적 구원"(umfassende Heil)이라는 글에서 "선교"를 정의하기를
1. 신앙의 전파
2. 하나님의 통치 영역 확장
3. 이방인들의 회심
4. 교회를 새로이 설립하는 것
이라고 했다.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The Christian faith is intrinsicaly missionary). 신약의 초대교회도 본질적으로는 선교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만이 유일하게 선교적인 것은 아니다. 이슬람교나 불교에서도 선교적 특징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과거의 기독교 특히 개신교 신학의 특징은 기독교인 상호간의 관계를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보다 더 중요시하면서 기독교가 세상을 향한 관계 즉 "선교"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있는 신학적 연구와 정리가 부족하거나 불충분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들 기독교 신앙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다른 종교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줄어든다는 아이러니칼한 견해나 "기독교가 20세기 이후의 다원화 사회에 대한 신학적 준비가 없다"는 견해도 나왔다.
그러므로 필리핀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 교수를 역임한 제랄드 H. 앤더슨(Gerald H. Anderson)은
"오늘날 선교에서의 근본 문제는 선교의 본질과 의미를 규명하는 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한 규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은 신학적 사유 영역 중에서 선교의 신학적 작업(theologizing)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계이다. 이것은 세계 복음화의 효용 증대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와 헌신에 있어서도 그들의 의무를 깊이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함을 거듭 지적하는 바이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