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음악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특히 많은 단체들이 헨델의 '메시야' 를 공연하면서 이 곳 저 곳에서 '메시야' 합창이 울려퍼지고 있다. 오랜 기간 연습하고 카네기홀까지 빌려서 음악회를 연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바라보며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 곳 한인들이 언제 그렇게 헨델의 '메시야'를 좋아하게 됐냐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메시야'공연이 필요할 정도로 말이다.
솔직히 음악회, 너무 많다. 차별화되지 않은 컨텐츠로 그 밥에 그 나물인 음악회가 주최단체와 관객들의 역량을 소모시키고 있다. 출연진들과 친분이 있는 관계로 공연장에 와 앉아있기는 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관객들. 깊은 고민없이 다만 뭔가를 해야한다는 당위, 기금모금을 위한 손쉬운 해결책으로서의 음악회가 이런 관객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남이 터 닦은 곳에 집을 짓지 않는다'는 개척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것처럼 문화사역자들도 다같이 모여 '메시야' 콘테스트를 열 것이 아니라면 남이 '메시야' 한다고 하면 나는 안해야 한다. 또, 음악 사역단체가 너무 많은 것 같으면 나는 미술, 연극, 영화, 춤 등 다른 문화 사역에 눈을 돌려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혹은 무엇을 하는 게 나한테 편한가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뭘 보길 원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생존의 문제와 씨름했던 미주 한인교회가 여유를 갖고 문화사역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찬양사역이 출발점이 되어 그동안 잘해왔다. 그러나 이제 질을 높이고 외연을 넓힐 때다. 문화사역자들의 높은 영성이 필요하고 컨텐츠의 다양화가 필요하고 관객의 입맛에 맞춰 적절한 당의정을 묻힐 수 있는 지혜와 감각이 필요하다. 똑같은 음악회 만들지 말고, 수준높고 차별화된 음악회, 나아가 전시회, 영화, 연극 다같이 만들어나가자.
솔직히 음악회, 너무 많다. 차별화되지 않은 컨텐츠로 그 밥에 그 나물인 음악회가 주최단체와 관객들의 역량을 소모시키고 있다. 출연진들과 친분이 있는 관계로 공연장에 와 앉아있기는 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관객들. 깊은 고민없이 다만 뭔가를 해야한다는 당위, 기금모금을 위한 손쉬운 해결책으로서의 음악회가 이런 관객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남이 터 닦은 곳에 집을 짓지 않는다'는 개척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것처럼 문화사역자들도 다같이 모여 '메시야' 콘테스트를 열 것이 아니라면 남이 '메시야' 한다고 하면 나는 안해야 한다. 또, 음악 사역단체가 너무 많은 것 같으면 나는 미술, 연극, 영화, 춤 등 다른 문화 사역에 눈을 돌려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혹은 무엇을 하는 게 나한테 편한가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뭘 보길 원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생존의 문제와 씨름했던 미주 한인교회가 여유를 갖고 문화사역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찬양사역이 출발점이 되어 그동안 잘해왔다. 그러나 이제 질을 높이고 외연을 넓힐 때다. 문화사역자들의 높은 영성이 필요하고 컨텐츠의 다양화가 필요하고 관객의 입맛에 맞춰 적절한 당의정을 묻힐 수 있는 지혜와 감각이 필요하다. 똑같은 음악회 만들지 말고, 수준높고 차별화된 음악회, 나아가 전시회, 영화, 연극 다같이 만들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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