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戊子年)의 해가 밝았다. 본지는 한 해를 시작하며 한인교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중심으로 본지 편집고문 목회자들과 신년 인터뷰를 갖고 한인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첫 순서로 방지각 목사(효신장로교회 원로목사)는 인터뷰를 통해 한인교회들의 영적각성과 아울러 바른 지도자들이 더욱 필요한 시대라고 주장했다.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서는 선교의 방향전환이나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 듯한 모습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타민족 스스로 사회와 교회를 이끌 어 갈 수 있는 지도자를 발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자녀교육에 있어 교회 교육을 통한 인물양성과 가정에서의 철저한 신앙관 성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본지는 김중언 목사(후러싱제일교회)와 김남수 목사(순복음 뉴욕교회)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평양 대부흥운동 1백주년에 대한 뉴욕이민 교회가 걸어왔던 길에 대한 평가는?

뉴욕교회들이 힘을 합쳐 할렐루야대회를 개최해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그래도 유일한 부흥운동의 조명이었다. 그리고 한인 교회들이 비록 개교회적이지만 평양 대부흥운동을 조명하여 보낸 것은 나름대로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흥운동은 성도들의 자발적인 회개운동에서 시작된 운동이었던 반면에, 오늘날 교회들이 주도하는 운동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들어 내고자 하는 모습처럼 보여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부흥운동은 교인들의 참여 하에서 일어나야 하며, 동시에 내적인 교훈들(개별적 회심의 회개 운동, 교회의 영적인 부흥, 교회의 증가 등등)이 강조돼야 한다. 평양의 부흥과 회개운동은 어떤 인위적인 것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는 '기념일' 또는 '기념대회'라는 것으로 모든 것을 대치하려는 듯한 빗나간 모습들이 있어 아쉽다.

-뉴욕 교회들안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대처는?

회개와 영적 각성의 때에 일어난 그러한 일들은 영적 각성을 통한 교회부흥의 불씨를 일으키는 것을 막는 모습이었다. 부흥과 복음전도는 고사하고, 교회의 신뢰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충격적인 사건들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러한 일들은 단지 외부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 이와 비슷하게 교회를 둘러싼 많은 문제점들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살피는 기회들을 스스로 가져야 할 것이다.

단 그러한 문제들이 오히려 교회의 영적 각성과 바른 지도자들이 더욱 필요로 하는 시대임을 자각하고, 교회와 성도들은 더욱 기도와 선교적 열정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아프간 사태와 관련하여 앞으로 한인교회가 지향해야 할 선교패러다임은?

아프간 사태는 그 기본적인 이해에 있어서 오늘날 일어나는 서구나 미국과 대립된 중동의 회교 세력들간의 갈등과 대치라는 틈바구니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그 사건을 넓게 보자면, 오늘날의 서구사회의 물질중심과 패권주의적인 힘을 자랑하고자 하는 데에서 일어난 이러한 비극은 얼마든지 계속하여 일어나리라 본다.

따라서 이것을 너무 선교의 방향전환이나 선교의 모습에 대한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 듯한 모습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비록 비극적인 일이기는 하나, 만일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선교에 대한 전반적인 전환이 꼭 필요한 것처럼 이해한다면, 앞으로 선교는 그 방향에 대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한다.

단, 이러한 비극적인 일을 교훈삼아 이러한 일들이 혹시 준비부족이나 선교지현황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인한 것이라면 많은 점에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타민족들에 관한 선교는 타민족 스스로 사회와 교회를 이끌 어 갈 수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지도자를 발굴하여 지원할 수 있도록 그 시스템을 변화시키면 좋을 것이다.

-한국 대선에 있어 장로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한국교회는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교회와 정치와의 관계를 설정할 때 중요한 것은?

정치란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들을 어떤 가치관을 지닌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지도력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정의는 이미 낡은 시대적인 흐름으로 치부되고 있는 안타까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또한 실제로, 오늘날 기독교적 가치관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에는 한국을 비롯한 우리 사회가 너무나 다원화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이익집단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정치 지도자는 국민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다른 가치관을 제도화하거나 덕목을 제공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현실임을 우리는 모두 공감한다. 이미 한국의 역사에서 볼 때, 장로 대통령들이 그러한 도덕적 가치관이나 정신적 목표를 실현하는 것에서 실패했다는 것이 그 교훈들이 될 것이다.

만일 기독교적 가치관을 실현하고자 하는 대통령이라면, 그 대통령은 이미 그러한 기독교적 가치관이 무엇이며,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지도자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그러한 기준에 이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만일 기독교적 가치관을 실현하는 것이 기독교 대통령의 꿈이라면, 그 대통령은 이미 그 주변의 각료나 참모들이 기독교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로 둘러싸여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그런가? 전혀 아니다. 따라서 정치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또한 힘든 문제는 기독교인 대통령은 둘째치고, 오늘날의 기독교와 기독교회가 과연 그러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앞장을 서고 있느냐하는 문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기독교는 그 특수한 진리의 체계를 실현해 내 가는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사회가 그 교회의 문제들을 염려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다만, 국가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일에 대통령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요, 또한 대통령이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보편적 양심과 사회적 정의라는 차원에서 일을 수행하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며, 대통령은 보다 성경적 교훈에 자신을 집중하면서, 그 진리를 자신의 주변과 사회에 적용하고자 하는 애쓰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사회와 공교육을 바라보면 기독교적 가치관이 무너져가고 있다. 그렇기에 교회내 자녀교육이 더욱 중요한데, 교회는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해야 할까.

오늘날 현대사회는 이미 기독교적 가치관을 실현해 나가는 일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고 있다. 다만 그 명목을 유지하고자 교회와 성도들은 사회와 교육기관을 향하여 압력을 행사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미 학교에서 학생들을 기독교적 가르침으로 훈계하는 것조차 법으로 막아버리고자 하는 지경에서, 뒤늦게 그 법의 무료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별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기독교적인 지도자들이 사회와 입법기관에서 분명한 신앙관에 입각한 그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 공교육은 기대하기 힘들 뿐이다. 하여간 실제로 사회와 세상의 교육은 비(반)기독교적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교회는 이러한 사회와 세속학교에서의 흐름을 올바로 깨닫고, 유일한 희망이란 교회 교육을 통한 인물양성과 가정에서의 철저한 신앙관의 성립에 있음을 절감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교육은 학교와 가정을 잇는 중요한 가교나 통로로서 일을 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교육은 보다 세심한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초한 자녀들을 향한 조기교육을 강조하고, 그 사람을 키워내면서 공교육에서 흔들거리는 아이들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성경중심의 삶의 체계를 세워나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