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지르 부토(54) 전 파키스탄 총리가 이슬람 과격주의자로 추정되는 괴한에 암살당하자 이슬람의 폭력적 테러 행위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암살 사건의 가장 유력한 배후 세력인 알 카에다는 사건 직후 부토의 암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슬람 과격주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의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이자 대변인인 무스타파 아부 알 야지드는 이탈리아 민간통신사인 AKI에 자신들이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척결을 공언했던 미국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CNN도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리인 빈스 캐니스트라로의 말을 인용해 알 카에다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가장 유력한 암살 배후 세력이라고 보도했다. 공공장소에서 총을 쏜 뒤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한 것은 이슬람 과격주의 성향의 알 카에다와 탈레반이 사용해 온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 직후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은 부토 암살 행위를 규탄하며 테러에 강경한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건 주모자들에 대해 신속한 법적 심판을 촉구하는 한편 사건 후 무샤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암살 사건에 대한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는 부토 전 총리의 암살범을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비겁자”라고 비난하며 “부토는 암살해도 파키스탄의 민주주의까지 훼손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영국 데이비드 밀리번드 외무장관은 부토 전 총리를 노린 급진주의자들은 파키스탄 민주화를 실현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노린 것이라며 “테러리스트는 결코 승리해서는 안된다”며 강력히 주장했다.

프랑스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무장관은 성명에서 부토 전 총리의 암살 사건에 애도를 표하며 암살 행위를 강력히 비난했다. 러시아 외교부 미하일 카미닌 대변인은 테러 행위를 강력히 비난하며 파키스탄 지도부가 국가 안정을 위해 신속히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 일본 고무라 마사이코 외상도 “폭력적 수단으로 무엇인가를 해결하려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면서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인도의 프라납 무케르지 외무장관은 “부토 전 총리의 암살은 끔찍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란 모하마드 알리 호세이니 외무부 대변인도 이번 암살 행위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파키스탄 정부는 테러가 재발하지 않도록 이들을 처벌할 것”을 요청했다.

유엔과 바티칸도 이번 사건에 대해 애도를 표하며 테러 행위를 지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부토 전 총리의 암살은 파키스탄의 민주절차와 안정에 대한 공격”이라며 범죄자에 대한 법의 심판을 강력히 촉구했다. 바티칸 대변인 프리드리코 롬바르디 신부도 “이번 사건이 폭력으로 얼룩진 나라를 안정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하며 파키스탄인들의 슬픔을 애도했다.

부토 전 총리의 암살 배경에 대해 파키스탄을 지탱하는 세속주의(정교분리)를 무너뜨리고 정국 불안정을 틈타 궁극적으로 파키스탄을 집권하는 등의 이익을 얻으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계획이 아니냐는 의견 등이 제기되고 있다. 또 여성이 지도자로 앞장서는 것에 대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부정적인 인식도 암살 배경에 한 몫 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국내 한 이슬람 전문가는 “하디스(무하마드 언행록)에서는 여성이 지도자가 되면 되는 일이 없다고 가르친다”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여성 지도자를 이슬람의 수치라고 여기며 여간 껄끄럽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알 카에다 외에도 지난 10월 부토 전 총리의 친미 성향에 불만을 표시하며 자살폭탄 테러를 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치인들의 암살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극단주의 라스카르 에 잔그비, 세속적이고 서구화 된 부토가 총리가 되는 것에 반대해 온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배후 세력일 가능성도 점쳐 지고 있다. 또 파키스탄의 국내외 주요 사건에 개입하며 정치적 반대세력 탄압에 이용되어 온 파키스탄 정보부(ISI)도 부토가 총선에 승리할 시 자금과 권력 상실 가능성을 이유로 암살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