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키산맥 해발 3천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다고 한다. 나무가 더 이상 자라기 힘든 높이라는 말이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는 것이다. 혹독한 기후와 조건 속에서 견딘 이 나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명품 바이올린이 된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영혼의 멜로디를 내는 아름다운 승리자는 아무런 고난없이 좋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고난을 통과한 사람일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셨다. 십자가의 좁은 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고 제자로서의 삶의 열매를 맺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넓고 형통한 길을 원한다. 당장 부딪히는 고통의 현실을 달가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비전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니다. 너무 좁고 힘든 길이어서 사람들은 쉽게 넓은 길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버리고 만다.
우리는 고난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었던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을 알고 있다. 욥이 그랬고 요셉이 그러했으며 다니엘, 세례요한, 바울...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나왔다. 이유없는 고난이 깊은 절망으로 이어졌을 때에도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승리했다.
현대의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이기심과 필요을 채워줘야 하는 무속신앙 속의 신쯤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부족을 느끼는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주시옵소서!”를 연발하며 대부분의 기도시간을 소진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그 무언가를 위해.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정안수 떠 놓고 빌었던 우리 조상들처럼 아직도 계속해서 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이러한 샤머니즘적인 신앙관을 버려야할 때다. 물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행복하고 기쁨에 가득 찬 생활을 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근원적인 기쁨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말고 승리하라는 말씀이다. 다른 아무 조건없이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하신 그 사랑 하나만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기뻐하지 않고 불평하거나 염려하는 순간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순식간에 가로채가고 만다. 그들은 ‘공중 권세잡은 자들’로서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눈을 번득이고 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허점을 노출하지 말아야 한다.
이 땅 위에서 우리의 신앙의 단련을 위해 고난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더 크게 사용하실 주의 종들은 더 큰 연단을 받게 될 것이다. 마치 이것은 특수부대 요원과 방위산업체 요원의 훈련의 강도가 상이한 것과 같은 뜻일 것이다. 특전용사가 되려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견디어내야 하겠는가.
만날 때마다 불평이 그 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주위에 불평의 기운을 강하게 전념시켜 다른 사람들까지 불평하게 만들어버린다. 불평하는 사람 옆에 가서 같이 동조하지 말라. 순식간에 또다른 불평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져내려 질식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이 땅에서 인간으로 오셔서 친히 살아보신 예수님은 너무나 잘 아시고 계신다. 슬픔 속에서 울어도 보셨고 가난을 경험하셨으며 사람들의 배척과 조롱을 당하실 때 그 쓰라린 마음을 친히 당해보셨다. 배신도 당하셨고 마침내 지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너무도 잘 아신다. 인간 세상에서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삶의 연속인가를...
이것은 믿는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는 놀랍고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훈련과 연단은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에 절대적 요소인 것이다. 이렇게 힘든 세상을 이기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우리의 영혼육이 강건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 혹시 시련 가운데 있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 주님이 이미 완벽한 승리를 거두신 싸움을 우리는 뒤따라 가는 것이다. 결국 승리는 성령의 검을 든 우리의 것이다!
평생 다리를 구부리고 힘겹게 서있는 수목한계선 지대에 서 있는 나무들처럼 꿋꿋하게 이기고 나아간다면 마침내 지상에서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로 천국을 울릴 가장 향기로운 악기가 되어있을 것이다.
지금의 처지가 열악하고 고통속에 있다하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고난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깊은 연단을 이겨낸 그 사람의 내면과 영혼은 단단하게 여물어져 있으며 깊고 그윽한 향기로 가득하다. 주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서야할 때다. 때가 악하고 지상의 시간들이 마지막 때임을 여러 가지 싸인으로 알려주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더욱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나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교회와 나라를 지키자. 그리하면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아아, 주님이 나 때문에 크게 웃으실 수 있다면.......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욥기 23: 10 -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는 것이다. 혹독한 기후와 조건 속에서 견딘 이 나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명품 바이올린이 된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영혼의 멜로디를 내는 아름다운 승리자는 아무런 고난없이 좋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고난을 통과한 사람일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셨다. 십자가의 좁은 길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고 제자로서의 삶의 열매를 맺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넓고 형통한 길을 원한다. 당장 부딪히는 고통의 현실을 달가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비전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니다. 너무 좁고 힘든 길이어서 사람들은 쉽게 넓은 길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버리고 만다.
우리는 고난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었던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을 알고 있다. 욥이 그랬고 요셉이 그러했으며 다니엘, 세례요한, 바울...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나왔다. 이유없는 고난이 깊은 절망으로 이어졌을 때에도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승리했다.
현대의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이기심과 필요을 채워줘야 하는 무속신앙 속의 신쯤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부족을 느끼는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주시옵소서!”를 연발하며 대부분의 기도시간을 소진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그 무언가를 위해. 가족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정안수 떠 놓고 빌었던 우리 조상들처럼 아직도 계속해서 빌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이러한 샤머니즘적인 신앙관을 버려야할 때다. 물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행복하고 기쁨에 가득 찬 생활을 하길 원하신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근원적인 기쁨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말고 승리하라는 말씀이다. 다른 아무 조건없이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하신 그 사랑 하나만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기뻐하지 않고 불평하거나 염려하는 순간 마귀는 우리의 마음을 순식간에 가로채가고 만다. 그들은 ‘공중 권세잡은 자들’로서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눈을 번득이고 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허점을 노출하지 말아야 한다.
이 땅 위에서 우리의 신앙의 단련을 위해 고난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더 크게 사용하실 주의 종들은 더 큰 연단을 받게 될 것이다. 마치 이것은 특수부대 요원과 방위산업체 요원의 훈련의 강도가 상이한 것과 같은 뜻일 것이다. 특전용사가 되려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견디어내야 하겠는가.
만날 때마다 불평이 그 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주위에 불평의 기운을 강하게 전념시켜 다른 사람들까지 불평하게 만들어버린다. 불평하는 사람 옆에 가서 같이 동조하지 말라. 순식간에 또다른 불평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져내려 질식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이 땅에서 인간으로 오셔서 친히 살아보신 예수님은 너무나 잘 아시고 계신다. 슬픔 속에서 울어도 보셨고 가난을 경험하셨으며 사람들의 배척과 조롱을 당하실 때 그 쓰라린 마음을 친히 당해보셨다. 배신도 당하셨고 마침내 지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너무도 잘 아신다. 인간 세상에서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삶의 연속인가를...
이것은 믿는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는 놀랍고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훈련과 연단은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에 절대적 요소인 것이다. 이렇게 힘든 세상을 이기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우리의 영혼육이 강건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 혹시 시련 가운데 있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 주님이 이미 완벽한 승리를 거두신 싸움을 우리는 뒤따라 가는 것이다. 결국 승리는 성령의 검을 든 우리의 것이다!
평생 다리를 구부리고 힘겹게 서있는 수목한계선 지대에 서 있는 나무들처럼 꿋꿋하게 이기고 나아간다면 마침내 지상에서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로 천국을 울릴 가장 향기로운 악기가 되어있을 것이다.
지금의 처지가 열악하고 고통속에 있다하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고난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깊은 연단을 이겨낸 그 사람의 내면과 영혼은 단단하게 여물어져 있으며 깊고 그윽한 향기로 가득하다. 주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서야할 때다. 때가 악하고 지상의 시간들이 마지막 때임을 여러 가지 싸인으로 알려주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더욱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나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교회와 나라를 지키자. 그리하면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아아, 주님이 나 때문에 크게 웃으실 수 있다면.......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욥기 23: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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