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강단과 신앙 담론에서 가장 빈번하게 울려 퍼지는 구호 중 하나는 단연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이다.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고 세속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휩쓸릴 때마다,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이 그리는 이상적인 풍경을 소환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초대 교회의 원형은 단순한 생활 공동체로서의 겉모습이 아니다. 거대한 로마 제국에서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실재를 살아냈던 그들의 구체적이고 급진적인 신앙 양식이다. 복음의 야성을 잃어버린 현대 교회가 참으로 초대 교회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음의 구체적인 표지들을 다시 대면해야 한다.
1. 제국을 전복시킨 정치적 고백
초대 교회의 가장 첫 번째 표지는 그들의 신앙고백이 지녔던 위험한 정치성이다. 오늘날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신앙의 표현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1세기 로마 제국 치하에서 이 고백은 목숨을 건 반역의 언어였다.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퀴리오스(주님)'와 '소테르(구원자)'는 오직 한 사람,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된 칭호였다. 로마는 카이사르가 주님이시다라고 외치는 자들에게만 시민의 평화와 안전, 경제적 번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검과 군사력이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을 선언했다. 황제가 아니라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가 온 우주의 유일한 참된 주님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 복종해야 할 유한한 피조물에 불과함을 선포하는 거룩한 주권의 회복이다.
2. 죽음의 문화를 거스른 생명과 성(性) 윤리
초대 교회가 로마 사회에 던진 가장 충격적인 파장은 그들의 급진적인 도덕성과 생명 존중이었다. 2세기 교부 문헌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을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들은 남들처럼 결혼하여 자녀를 낳지만, 갓난아이를 내버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식탁은 모두에게 개방하여 함께 나누지만, 침상은 결코 공유하지 않습니다."
당대 그리스-로마 문화는 겉으로는 세련된 철학과 법률을 자랑했으나, 속으로는 생명 경시와 성적 문란이 극에 달한 사회였다. 특히 장애를 갖고 태어났거나 원치 않는 성별(특히 여아)의 아기는 길가나 쓰레기장에 내다 버리는 영아 유기가 합법적 관습으로 횡행했다. 버려진 아이들은 노예나 성매매의 도구로 전락했다. 또한 귀족과 서민을 막론하고 난잡한 혼외정사와 축첩, 소아성애가 만연했다.
초대 교회는 이 거대한 죽음의 문화에 온몸으로 맞섰다. 성도들은 밤마다 쓰레기장과 길거리를 뒤져 버려진 핏덩이 아기들을 집으로 데려와 자신의 자녀로 입양해 길렀다. 또한 로마의 방탕한 성 문화를 거부하고,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인격체로서 맺는 거룩한 언약으로서의 결혼을 지켰다.
3. 계급과 젠더의 장벽을 허문 성찬의 식탁
초대 교회가 실천한 떡을 떼는 일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로마 제국의 철저한 신분 피라미드를 무너뜨린 사회학적 지각변동이었다. 초대 교회의 가정교회 식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노예와 그 노예를 부리는 주인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불렀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 세상의 신분증은 문밖으로 내던져졌다. 초대 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 차별 없는 환대의 식탁을 회복하는 일이다.
4. 로마 전염병 속에서 피어난 자기희생적 환대
초대 교회가 로마 세계에서 비주류 소수자 집단에서 지중해 문명을 뒤바꾼 거대한 생명력으로 폭발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전염병에 직면했을 때 보여준 파격적인 사랑이었다.
2세기 후반과 3세기 중반의 역병으로 당시 로마 제국 전역에서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도시는 시체로 뒤덮였고 공포가 일상을 지배했다. 로마의 이교 사제들과 귀족, 의사들조차 감염을 피해 도시를 버리고 도망쳤으며, 심지어 가족조차 병든 혈육을 집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니시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성도들은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도시 한가운데 남아 병든 이들을 돌보았다.
"우리 형제들 대부분은 한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자신을 아끼지 않고 서로를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병자들을 돌보았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의 병을 자신에게 옮겨와 그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초대 교회를 본받는다는 것은, 세상이 위기 앞에서 각자 도생의 문을 닫아걸 때, 세상의 고통 한가운데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속적 현존이야말로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래의 얼굴이다.
5. 피 흘림을 거부한 비폭력 평화주의
그리스-로마 세계는 정복과 군사력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다. 적을 섬멸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장군이 영웅으로 칭송 받았다. 그러나 터툴리아누스, 오리게네스, 순교자 유스티누스와 같은 초대 교부들은 산상수훈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마 26:52)를 글자 그대로 신실하게 따랐다. 그들은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써(순교) 제국의 폭력을 무력화시켰다.
지금 우리가 속한 작은 공동체 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이웃에게 식탁을 내어주고, 세상의 거짓된 성공 서사를 거부하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예수의 뒤를 따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초대 교회의 새벽은 다시 밝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