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늘 케이블 TV로 《한산 리덕스》를 관람했다. 과거 극장에서《한산: 용의 출현》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다른 영화인 줄 알고 시청했는데, 완전히 새로운 후속작이 아니라 기존 《한산: 용의 출현》을 확장한 감독판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고뇌와 전쟁의 배경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해 주는 영화였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그분은 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의 영웅이었다. 오늘 다시 내 영웅이 되었다.
[2] 그분을 오죽 존경했으면, 천국에서도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질 정도다. 내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 장군도 신을 믿고 있었는데, 천국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다.
챗GPT에 물어보니 이런 답을 준다. “성경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천국에 갔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옥에 갔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3] 이런 애매한 대답은 듣지 않음만 못하다.
성경적으로 답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순신 장군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구원을 확정할 수 없다. 그리고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을 자동으로 구원하는 것도 아니다. 아울러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 계획에 따라 구원하실 사람을 구원하신다.”
[4] 롬 2:14-15절을 근거로 예수님을 몰라도 ‘양심으로 구원받는 경우’가 있음을 주장하는 이들이 예상외로 많다. 하지만 그건 본문의 의미를 잘 몰라서 갖는 생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이라 하더라도 그 양심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 역사 없이는 양심으로라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의를 행할 자는 없다는 게 문제다.
[5]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아래 있으며(3:9),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선언한다(롬 3:10). 이어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음을 밝힌다(롬 3:23).
결국 양심은 구원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죄와 책임을 드러내는 증거이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양심에 따른 자기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다(롬 3:21–26).
[6] 구원은 양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다.
아쉽지만 《한산 리덕스》를 시청하면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고마움을 새롭게 다져보았다. 만일 그분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 것이며, 오늘 나의 존재는 가늠할 수 있었을지에 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문득 성경 속 한 사람이 떠올랐다.
[7] 그는 바벨론을 정복하여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지배를 끝내고 고대 근동의 국제 질서를 크게 바꾼 왕이다. 스 1:1–4에 따르면, 고레스는 바사 왕 원년에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도록 명령하고 유다 백성이 귀환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 백성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유다 백성들의 운명에 이방 정복왕 고레스를 사용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8] 하나님은 그 한 사람의 역할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꾸어주셨다.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당시 조선은 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 세상에 역사를 바꿔놓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 사람’들이 꽤 있다. 히틀러, 모택동, 스탈린, 김일성과 같이 악한 영향을 미친 이들이 있다.
[9] 그런가 하면 소크라테스, 간디, 세종대왕, 이순신같이 선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도 있다.
그렇다면 2026년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소수의 인물은 누구일까? 대한민국과 국민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이 되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역사를 바꾸는 한 사람의 영향력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10]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이 수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고, 한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위대한 인물을 존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나는 누구의 삶에 얼마큼 선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 훗날 누군가가 나를 기억할 때, 그 사람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 준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