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Photo : )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1] 나이가 들어가니 기억력이 자꾸 쇠퇴함을 절감한다. 분명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게 뭔지가 생각나지 않아서 헤맬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모두 기억 속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영광 속에 살고, 어떤 사람은 실패의 기억 속에 살아간다. 잊고 싶지 않은데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지우고 싶은데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2] 그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차원의 ‘기억’을 말한다. 하나님은 기억하실 때 과거를 떠올리시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시며 행동하신다. 여기서 “기억하다”의 히브리어 단어 ‘자카르’(זָכַר)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언약적 맥락에서 사용되는 수준 높은 단어이다.

[3]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기억하실 때’ 행동하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창세기 8:1절과 출애굽기 2:24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사…” “하나님이 그 언약을 기억하셨더라…”
온 세상이 물에 잠겼다. 하늘도 땅도 미래도 없다. 그때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다.” 그 순간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물이 줄어든다,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다.

[4] 하나님의 기억은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끝내지 않는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기억은 구원을 불러온다. 이스라엘은 울부짖고 있다. 노예이다. 희망이 없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셨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열 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짐’, ‘노예에서 자유인이 됨’의 열매가 나타났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카르’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구원의 스위치다.

[5]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이 ‘기억’(ἀνάμνησις)을 우리에게 넘기셨다. 고전 11:2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게 우리말 번역인데, 원어에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마실 때마다 나를 향한 기억을 위하여(나를 기억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하라”이다. 여기서 ‘기억’이란 헬라어 ‘아남네시스’(ἀνάμνησις)이다.

[6] 이 단어는 ‘다시’(ἀνά)란 말과 ‘기억하게 하다’(μιμνῄσκω)가 결합된 말이다. 즉, “다시 현재로 불러내는 기억”을 의미한다.
성만찬은 그저 ‘추억하는 시간이 아니다. 생일처럼 기념하는 날도 아니다. 감정적인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만찬은 시간의 벽을 깨는 사건이다. 2000년 전 십자가 사건을 지금 여기서 경험하라는 초청이다.

[7] 2000년 전 십자가를 떠올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십자가 사건에 지금 참여하고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유월절 자리에서 성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즉, ‘유월절’은 ‘출애굽에 대한 기억’이요, ‘성만찬’은 ‘십자가에 대한 기억’이다.
출애굽의 ‘자카르’가 십자가의 ‘아남네시스’로 완성되는 것을 뜻한다.
성만찬은 단순한 의식이 절대 아니다.

[8] 그것은 과거의 십자가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각 교회와 목회자들은 지금도 “기념하라”라고 번역한 한글 성경을 읽으면서 성만찬을 기념하고 있다. 이것이 목회자들이 성찬식을 자주 하지 않고, 연중행사로 그치고 마는 이유이다. 감동과 감격에 목이 메어 우는 일 하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9] 여전히 십자가를 과거에 묶어 두고, 신앙을 추억처럼 다루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마실 때마다 나를 향한 기억을 위하여(나를 기억하기 위하여) 이것을 행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을 그저 떠올리라는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고 맛보라는 초청이다.
하나님은 기억하실 때 과거에 머무르지 않으신다.

[10] 그분의 기억은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떠올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십자가 사건이 실제로 우리 자신에게 적용되고 임하는 현실이 되도록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기억하실 때 과거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그 기억으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마찬가지다.

[11]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단순히 떠올리는 데 그치지 말고, 그 구원의 능력이 지금 우리의 삶 속에 실제로 임하고 역사하도록 믿음으로 참여하고 체험하고 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