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자에서 기록자로>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예수님의 공생애를 직접 기록한 책은 네 권이다. 우리는 이 네 권의 책을 복음서라 부른다. 복음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게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복음이며, 그분의 삶과 죽음, 부활이 복음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기록한 저자의 이름을 따라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라고 불린다. 같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각 복음서는 저자와 기록한 목적에 따라 강조점과 관점에 차이가 있다. 그 중 마태,마가,누가는 비슷한 구조와 시각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기 때문에 공관복음이라고 불린다. 반면 요한복음은 보다 신학적이로 독특한 관점으로 예수님을 조명했기 때문에 제4복음서라고 불린다.
만일 예수님이 살아생전 자서전을 남기셨다면 단 하나의 완벽한 복음서가 완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음서를 기록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에게도 기록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초기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기록의 필요성이 절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일어날 사건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이러한 기대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다.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7-28) 사도 바울 역시 같은 기대 속에 살아갔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살전4:15)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 참고 인내하는 ‘마라나타 신앙’을 가지고 살았다. 마라나타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16:22, 계22:20)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생각보다 더디게 느껴졌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증인과 목격자)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때 교회는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재림이 지연되자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들도 생겼다.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3:3-4)
이에 대해서 베드로는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기에 재림을 늦추고 계신다. 재림의 지연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8-9)
이러한 배경 속에서 누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1절과 2절을 보자.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눅1:1-2) 그 가운데 일부는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고, 일부는 끝까지 기록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 결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네 권의 복음서가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네 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마태와 요한이 기록했다. 누가복음은 사도바울의 동역자이자 주치 의사였던 누가가 기록했고, 그는 사도행전까지 집필했다. 모두 충분한 자격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기록자로는 부족해 보였던 사람, 마가>
이제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 사람은 마가다.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다.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은 사람도 아니었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 마가가 십 대 후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러나 마가의 가정은 예수님과 제자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초대교회의 중심적인 모임 장소였고, 흔히 마가의 다락방이라 불린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장소,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또한 마가의 삼촌은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핵심 지도자였고, 안디옥 교회의 초대 목회자로 파송된 인물이다. 교회를 박해했던 사울을 데려와 사도 바울로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도 바나바였다.
마가는 오늘날로 말하면 신앙 좋은 가정에서 자란 모태신앙인이었다.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보았을 가능성도 있고, 제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4개의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예수님에 대해서 풍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마가가 가장 먼저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마가에게도 치명적인 실패의 순간들이 있었다. 첫번째 실패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였다. 마가는 모든 제자들이 모두 도망치는 장면 속에서, 한 청년이 베 홑이불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독특한 사건을 기록한다.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막14:50-52) 많은 학자들은 이 청년이 마가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 갑자기 군사들이 들이닥치고, 예수님이 잡히시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성인인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베드로 조차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살벌한 상황을 어린 나이의 마가가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이런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실패는 성인이 된 이후였다. 바나바와 바울이 첫 선교 여행을 떠날 때, 마가는 그 여정에 동참했다. 그러나 선교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팀을 이탈해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이 사건은 훗날 바나바와 바울이 심하게 다투고 갈라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행15:37-40) 마가는 사고를 쳐도 제대로 친 셈이었다. 삼촌이었던 바나바를 제외하고는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의 믿음은 단단해 보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공동체와 끝까지 함께하려는 책임감도 부족한 신앙인처럼 비쳐졌다. 결국 마가는 두 번의 실패를 겪으며 낙오자가 되는 듯한 모습으로 남았다.
<다시 불린 이름, 마가>
그런데 사라졌던 마가의 이름이 베드로이 편지 속에 다시 등장했다.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5:13) 어느 순간 마가는 삼촌 바나바의 손을 떠나서 베드로에게로 간 것처럼 보인다. 그는 베드로 곁에서 설교를 통역하고 사역을 보조하는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베드로에게 직접 훈련을 받으면서 마가는 신앙적으로 거듭나고 성장했다.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는 단순한 친분을 넘어 신앙의 계승자, 곧 영적인 후계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후계자인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른 것처럼 베드로 역시 마가를 자신의 신앙적 후계자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보게 되는 사실이 있다. 자녀가 신앙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언젠가 부모와 가족의 품을 떠나야 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그늘 아래서 보호받아야 하지만, 진짜 성장은 그 손을 떠날 때부터 시작된다. 마가는 삼촌 바나바의 그늘을 벗어나 베드로를 통해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갔다.
마가의 성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때 마가를 신뢰하지 못했던 사도 바울의 입에서도 마가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다.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몬1:23-24) 바울은 마가를 ‘나의 동역자’라고 표현한다. 과거에 마가를 인정하지 않았던 대사도 바울이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마가는 신앙과 사역에서 충분히 성장해 있었다.
바울의 입을 통해 우리는 마가에 대한 더욱 놀라운 고백을 듣게 된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0-11) 동역자들이 하나둘 바울을 떠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 곁을 지키며 힘이 되어 준 사람이 마가였다. 과거에는 신실하지 못했다며 함께 선교할 수 없다고까지 했던 마가를, 이제는 반드시 데리고 오라고 말한다. 마가는 포기하고 떠났던 사람이었지만, 끝까지 지키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짐이 되었던 사람이 힘이 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낙오자에서 증언자로>
이러한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마가의 어린 시절 신앙은 어머니의 신앙이었고, 삼촌 바나바를 따라다니며 형성된 신앙이었다. 그래서 시련을 견딜 힘이 없었고, 믿음으로 버텨내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알아 가면서, 신앙은 비로소 그의 것이 되었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되었다.
이러한 마가가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 바로 마가복음이다. 모태신앙으로 자라 실패를 경험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믿음으로 다시 세워진 사람이 기록한 복음서가 마가복음이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고, 실패자의 삶에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기록자의 삶으로 전환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마가의 눈으로 바라본 예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안에 얼마나 풍성하고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담겨 있겠는가? 마가복음을 따라가면서 마가가 만난 예수님을 우리도 만나고, 예수님이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