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부흥 100주년이 되는 해로 떠들썩하게 시작했던 2007년의 달력도 이제 한 장 뿐이 남지 않아서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새해 초기부터 감리교 교역자들 간에는 여러 가지 언짢은 반응과 함께 시작되었던 "Again 1907" 이었습니다. 언짢았다고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표현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평양 부흥운동은 1903년 감리교 선교사와 전도부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원산 부흥운동의 확산이었다는 역사적 시각 때문입니다.

일부 감리교 학자들 간에는 "Again 1907" 이라기보다는 "Again 1903" 이라야 옳지 않으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원산에서 일어났던 부흥 운동은 감리교 전도부인들을 중심으로 한 기도 운동으로 시작되었고 이러한 부흥의 불길을 캐나다 출신의 감리교 선교사였던 하지 선교사가 평양의 집회에서 옮겨주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양에서 있었던 부흥을 다시 한 번 100년 만에 이 세대에서 경험하자는 "Again 1907"은 2007년 벽두를 깨웠고 여러 가지 행사가 줄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제 100주년이 지나가면서 돌아볼 때, 실제적인 부흥보다는 여러 가지 개신교의 관행과 행사들을 오히려 반박하는 "안티-기독교"가 더 흥왕 되게 대두되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뉴욕의 교계에서는 이런 저런 일로 목회자상이 실추(?)되는 일들이 발생하였고, 일부 교회에서는 교인들과 목회자 간의 갈등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했던 한 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교계 전체로 봐서는 플러스 성장보다는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한 해가 되지 않았나 추측이 됩니다. 2007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이러한 모든 사건들 가운데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첫째: 부흥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1903년 원산 부흥이나, 1907년 평양 부흥은 조용한 가운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일각에서 발생된 것이지 크고 높게 붙인 현수막과 선전을 통해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부흥은 부르짖고, 떠들면서 시작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저 사모하는 심령들이 모여서 주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할 때, 부흥은 임했던 것입니다.

둘째: 개신교의 도덕적인 경각심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Again 1907년을 부르짖는 것 보다는 오히려 조용한 내적 성장을 추구하고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책임 의식을 높여서 사회와 더불어 성장하고 그 시대의 사회의식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신앙 인격이 성장할 때, 비로소 그 시대의 문화를 주도하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신교의 문화사역과 영성의 부흥이 맞물려서 세상을 주도하고 앞서가야지 세상과 동떨어진 "Church Against Culture"의 Module로는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일깨워 주었습니다. 복음이 복음답게 되고, 크리스천이 크리스천다워지려면 복음적인 시각에서 세상 가치관을 이해하고 논리와 파워면에서 세상의 가치관이 극복되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극복하고 뛰어넘지 않으면 절대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고, 우리가 오히려 세상에 끌려가고 세상적인 지혜를 도입하기에 전전긍긍하는 "부족한 기독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2008년을 한 달 앞두고 어떤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것인가? 이제는 제발 행사만을 부추기는 그런 행사를 만드는 교회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새해에는 진정한 부흥, 처음에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엄청난 파도를 일으켜 "물이 바다를 덮는" 한 해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도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