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요즘 몸이 많이 쇠해가고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90분 강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고 느꼈으나 지금은 그 시간이 더디 감을 피부로 느낀다. 나이 들어감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
그 때문에 아내로부터 제재를 많이 당하고 있다. 음식 먹는 일도, 잠자는 일도, 일상적으로 하는 일도 다 터치를 받고 있다.
[2] 사랑하는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이다. 하지만 쉽게 용납되질 않는다. 할 일은 많고 세월은 아깝고 일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도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최대한 많이 선용하고픈 욕심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만큼 시간 활용에 따른 행복과 즐거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를 준비함에 있어서의 기쁨과 가치를 나만큼 제대로 누리는 이도 드물 것이다.
[3] 무엇보다 내 생명의 양식인 성경 말씀 묵상과 분석을 통해서 얻고 누리는 결실들은 세상 어떤 보화보다 더 소중하고 귀하다. 오랜 세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깊은 곳에 파묻혀서 임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진귀한 보물들이 성경 속에 즐비하다. 그것들을 하나씩 캐내는 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도 나는 잠 못 이룬 채 진리를 탐구하게 된다.
그런 내게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준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쓴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란 책 29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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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뭘 할 건지는 모르지만, 난 빈둥거리며 놀지는 않을 거야.
난 발견가야. 너희도 발견가라면 1분도 빈둥거릴 틈이 없을걸.”
아니카가 물었다.
“네가 뭐라고?”
“발견가.”
토미가 물었다.
“그게 뭔데?”
“그야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지. 아니면 무슨 뜻인 줄 알았겠어?”
“세상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어. 그러니 누군가가 그것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그게 바로 발견가가 하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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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리를 사모하는 이들은 모두가 다 발견가가 되어야 한다. ‘진리를 탐구하는 발견가’ 말이다. 1분, 아니 1초도 빈둥거릴 여가가 없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과 ‘묵상’의 차이를 아는가? ‘생각’은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묵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을 뜻한다. 이 땅에 살다 가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는 자로 살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6] 성경은 스스로를 ‘보물창고’로 묘사하며, 우리에게 끈기 있는 탐구를 요청하고 있다.
성경은 진리 탐구를 감추어진 보화를 찾는 것에 비유한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잠 2:4-5).
이 말씀은 우리가 일반적인 ‘생각’을 넘어선 깊은 ‘묵상’으로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7] 보이는 것, 익숙한 것 너머에 숨겨진 보배를 찾기 위해서는, 평범한 안목으로는 부족하다. 마치 땅속 깊이 파묻힌 광물을 캐내듯, 마음과 뜻을 다하는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필요하다.
발견가에게는 시간이 곧 기회요 금이다. 노쇠해지는 몸을 절감하더라도, 시간을 최대한 선용하려는 귀한 욕심은 바로 이 진리 탐구의 기쁨과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8] 빈둥거릴 틈이 없다. 우리가 찾아야 할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 진리’라는 사실이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단순히 학문적 지식이나 철학적 개념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성경을 묵상할 때, 우리는 말씀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형상, 그분의 마음, 그분의 구속 사역의 깊이를 발견해야 한다.
[9] 남들이 표면적으로 읽고 지나치는 문장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발견가, 곧 묵상가가 누리는 특권이다.
그리고 이 진리의 발견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10] 아무리 육신이 쇠약하고 병약하다 해도, ‘진리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일에는 1초도 낭비할 수 없다’라는 비장한 각오로 살아가는 자세보다 더 귀하고 복된 일이 없음을 놓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