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주의 신학 + 선교신학, 두 렌즈 통해 에드워즈 해석
다양한 선교학적 프레임을 적용해 균형있게 분석하고자
약자에 편 그의 사역, 모든 초점은 '영혼 구원'
하나님 중심의 그의 세계관, 청년들과 디아스포라의 복음적 나침판
에드워즈의 죽음은 인류를 향한 사랑의 실천
랄프 윈터 박사도 그를 선교 개념을 확장시킨 인물로 평가
18세기 대각성 운동을 이끈 신학자이자 목회자 조나단 에드워즈를 ‘선교사’라는 독창적 시각으로 재조명한 책이 나왔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 역사를 보는 두 렌즈 이론』의 저자 신춘식 교수(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선교학과 박사원)는 책에서 ‘두 렌즈 이론(Two-Lens Theory)’을 제안하여, 복음주의 신학적 관점과 선교학적 관점을 동시에 적용함으로써 조나단 에드워즈를 보다 균형있게 이해할 수 있는 새 틀을 제공한다.
전체 536 쪽 분량의 이 책은 경건과 실천, 부흥과 목회와 선교에 대한 통찰을 아우르는 ‘통전적 선교신학’을 담고있다는 평가다. 특히 저자는 책에서 에드워즈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인류를 향한 사랑의 실천이었다며, 그의 죽음을 순교적 죽음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과 가정 중심의 신앙은 청소년들에게 큰 귀감을 준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신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책을 쓰게된 계기를 말씀한다면.
A. 저는 총신대 일반대학원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하며 신학석사(Th.M) 과정에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의 부흥운동에 대해 연구했다. 그 연구를 통해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사역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특히 그가 편집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를 읽으면서, 선교와 선교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제가 인도 선교지로 떠날 때에도 늘 곁에 두고 읽었으며 영적으로 큰 도전을 받았던 책이다.
인도에서 약 8년 동안 신학교 교수 사역을 하면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단순히 부흥운동의 주역일 뿐 아니라, 생애의 마지막 7년(1750–1757년)을 스톡브리지(Stockbridge)에서 인디언 선교사로 보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나단 에드워즈를 선교사적 관점에서 그의 삶과 사역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때에 인도의 선교사 추방정책으로 더 이상 체류할 수 없게 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2015년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안식년 겸 박사과정으로 선교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 신학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고, 보다 구체적인 학문적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1965년 풀러 선교대학원의 설립과 함께 ‘선교학(Missi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개념이 등장하였고, 풀러에서 저는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 찰스 크래프트(Charles Kraft), 폴 피어슨(Paul Pierson), 벤 엥겐(Ben Engen), 랄프 윈터(Ralph Winter) 등 대표적인 선교학자들의 선교적 통찰을 접하게 되었다. 이들의 선교적 통찰을 바탕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지금까지 주로 목회자, 신학자, 철학자, 부흥운동가로 조명되어 온 그를 이제는 ‘선교학적 렌즈(Missiological Lens)’로도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보다 입체적이고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학’이라는 두 관점, 곧 ‘두 렌즈 이론(Two-Lens Theory)’을 통해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에드워즈의 삶과 사상을 분석한 것이다.
Q. 선교사 리더로서의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가?
A. 조나단 에드워즈는 ‘선교정보 확산 이론(Information Distribution Theory)’을 실제로 실천한 인물이다. 폴 피어슨 박사의 『기독교 선교 운동사』에 따르면, 선교운동을 설명하는 아홉 가지 이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선교 정보 확산 이론’이다.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의 삶과 일기를 출판함으로 이 이론을 대표적으로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는 폐결핵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직전까지, 1747년 조나단 에드워즈의 집에 머물렀다. 그는 생전에 쓴 일기와 생애를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남겼고, 에드워즈는 2년 후인 1749년에 이를 편집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로 출간했다. 이 책은 영국과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선교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불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브레이너드는 24세에 선교사로 나가 29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 순결한 헌신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조지 마즈던(George M. Marsden)은 이 일기를 “그리스도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영적 자서전”이라고 평가했으며,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헨리 마틴(Henry Martyn),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과 같은 19세기 선교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조나단 에드워즈는 스코틀랜드 목회자들과 함께 ‘기도 합주회’를 조직하여, 정해진 날짜에 함께 기도하는 연합기도운동을 펼쳤다. 그는 "기도가 부흥을 일으키고, 부흥은 선교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기도 → 부흥 → 선교라는 연결 고리를 확신하며, 실제로 많은 선교적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단지 목회자나 신학자가 아니라, 선교사들에게 선교의 불을 지핀 리더였고,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고 하면 윌리엄 캐리를 꼽는데, 조나단 에드워즈는 ‘현대 선교의 할아버지’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줬다.
Q. 책에서 강조되는 핵심적인 부분은 무엇인가?
A. 이 책은 지금까지 조나단 에드워즈를 복음주의 신학적 관점에서만 조명한 한계를 벗어나, 선교학적 시각을 더한 새로운 해석 두 렌즈 이론(Two Lens Theoty)을 시도한 것이다.
조지 마즈던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Jonathan Edwards: A Life)』은 지금까지 출간된 에드워즈 연구 중 최고의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제 연구 여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저는 조지 마즈던의 복음주의 신학적 관점에 더해, 선교학자들의 시각을 함께 적용함으로써, 조나단 에드워즈를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학이라는 두 렌즈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 관점을 통합함으로써 에드워즈의 삶과 사역을 보다 입체적이고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네스 라투렛(Kenneth Scott Latourette)은 기독교 역사를 선교 확장의 역사로, 랄프 윈터(Ralph D. Winter)는 문명 운동의 역사로, 폴 피어슨(Paul E. Pierson)은 부흥과 선교 운동의 역사로,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은 교회 성장학적 관점으로 보았다. 저는 이러한 다양한 선교학적 렌즈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에게 적용하여, 그의 신학과 사역을 보다 입체적이고 균형 있게 분석하고자 했다.
책의 구성을 말씀드리면, 1장 서론에 이어 2장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선행 연구들을 분석했다. 기존 연구들이 주로 신학적· 철학적 접근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선교학적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함과 연구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3장 방법론에서는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학이라는 두 렌즈 이론을 제시 했고, 4장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와 선교의 역사적 배경, 5장에서는 제1차 대각성운동과 부흥신학의 정립을 다루었다. 6장에서는 스톡브리지 선교사역 동기, 사역 이해, 의미와 목표, 7장에서는 선교정보 확산과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와의 관계를 통한 세계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 8장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남긴 선교학적 유산을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특히 6장부터 8장까지는조나단 에드워즈를 선교학적 렌즈로 분석하여 단순한 신학자나. 목회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선교사의 삶과 정신을 살아낸 선교사로 재조명했다. 그는 단지 책을 쓰기 위해 선교지로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교적 사명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순종한 것이다. 교회 부흥과 선교는 분리되지 않으며, 부흥이 선교로 이어질 때 참된 열매를 맺는다는 점을 에드워즈의 생애를 통해 강조하고자 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활동한 18세기는, 아직 미국이 독립되기 전 영국 식민지 시대였다. 그 당시 인디언 문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인권 침해와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던 시기였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고향과 터전을 빼앗기고, 억압받으며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세 가지 중요한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제가 이 책에서 강조한 부분도 바로 이 세 가지다.
첫째는 ‘대변자로서의 사역’이다. 에드워즈는 억압받는 인디언 원주민들을 대신해 그들의 편에 서서 변호자이자 대변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영국 백인들의 입장에 서지 않고, 약자의 입장에서 원주민들을 돌보고 도왔다. 이러한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적(Incarnational) 사역과도 맞닿아 있다. 예수님께서 강자가 아닌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의 편에 서셨듯, 에드워즈도 그들의 입장에서 함께하며 섬겼다.
둘째는 ‘교육 사역’이다. 에드워즈는 원주민들이 변화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영어를 가르쳤는데, 단순히 언어 교육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영어를 사용했다. 당시 대부분의 영어 교육은 주입식이었지만, 그는 이야기식으로, 즉 성경의 비유나 내러티브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르쳤다. 이러한 접근은 학문적으로도 교육 방법 연구에서 주목받는 부분이다. 그는 주입식 대신 이해 중심의 대화식 교육을 펼쳐 큰 효과를 거두었다.
셋째는 ‘설교 사역’이다. 에드워즈는 두 부류의 청중에게 설교했다. 하나는 영국 정착민들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인디언 원주민들이었다. 그는 청중의 수준과 배경에 따라 설교 방식을 달리했다. 정착민들에게는 신학적이고 지적인 설교를, 원주민들에게는 비유와 이야기 중심의 설교를 전했다. 청중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말씀을 전달한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혼의 구원’이었다. 에드워즈에게 있어 교육이나 설교, 봉사 모두는 말씀을 통해 인간이 변화되고 구원에 이르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구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그의 선교 사역의 핵심이었다.
Q. 조나단 에드워즈가 오늘날 미국 사회와 디아스포라 한인 가정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그의 ‘70가지 결심문’이 경건 생활 회복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A. 우리가 직면한 신앙의 위기와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오히려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에드워즈는 단순한 교리를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말씀을 살아낸 인물이다. 그의 신앙은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적 지식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신학과 삶을 분리하지 않았고, 매일의 일상 속에서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살아 있는 신학자였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그가 20세 이전에 작성한 ‘70가지 결심문’이다.
이 결심문은 단순한 도덕적 선언이나 자기계발적 다짐이 아니었다. 매일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성찰하며, 성경적 기준에 따라 자신을 훈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말씀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깊은 경건의 실천이었다. 그는 이렇게 결심했다.
“나는 나의 모든 말과 행위가, 내가 죽을 때 후회되지 않도록 살 것이다”, “나는 나의 성품을 날마다 변화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살필 것이다”
오늘날 청소년 세대는 급변하는 디지털 문화, 성적 무질서, 정체성 혼란, 자아중심적 가치관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사회는 ‘네가 중심이다’, ‘느낌이 진리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고 말하지만, 결과는 혼란과 공허, 정체성의 붕괴다.
이럴 때 조나단 에드워즈는 오늘 세대를 위한 탁월한 영적 모델이 된다. 그는 어린 나이에 자신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굴복시키며, 매일 자신의 동기와 감정, 사고와 행동을 성경의 거울 앞에 세웠다. 그는 끊임없이 “나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가?”를 질문하며 자신을 훈련시켰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그의 인격을 세우고 영혼을 정결케 했다. 그는 하루 24시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실천했다.
둘째, 에드워즈는 가정 신앙교육의 모범이다. 그는 위대한 설교자였지만, 동시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말씀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 강단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똑같이 진지하게 하나님을 섬겼다.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가정 예배를 통해 신앙을 전수했으며, 각 자녀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도록 인도했다.
그 결과 에드워즈의 가문은 후대에 수많은 신학자, 대학 총장, 판사, 목회자, 교수, 지도자들을 배출한 신앙 명문 가문이 되었다. 이러한 열매는 단순한 유전이나 환경이 아니라, 말씀 중심의 가정교육과 부모의 경건한 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앙 전수에 어려움을 겪는 디아스포라 가정들에게 에드워즈 가정은 성경 중심의 양육이 다음 세대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다.
셋째, 그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회복하게 하는 인물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 안에서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이 짧고도 깊은 고백은 단순한 교리 문장이 아니라, 에드워즈의 삶 전체를 지탱한 신앙의 중심이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간의 참된 기쁨이며, 그분 안에서만 정체성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이 진리는 오늘의 혼란한 시대에 더욱 절실한 회복의 기준이 된다.
현대 사회는 “너 자신을 드러내라”는 메시지로 가득하지만, 그 결과는 정체성의 혼란과 관계의 붕괴다. 가정은 해체되고 교회는 방향을 잃고 청소년들은 존재의 이유를 잊은 채 방황한다. 이때 에드워즈의 하나님 중심 신학은 가정이 신앙의 중심으로, 교회가 복음의 본질로, 청소년이 영광의 목적을 향해 다시 서도록 이끄는 복음적 나침반이 된다.
오늘날 다문화 사회 속에서 진리의 기준은 흔들리고, 신앙은 상대화되고 있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의 언어·문화·신앙 단절도 깊어졌다. 이런 혼란 속에서 에드워즈의 경건한 삶과 성경적 통찰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이 시대 가정을 다시 세우고 세대 간 영적 회복을 이루는 실제적 도구가 된다. 그의 삶과 글,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과 가정 중심의 신앙 전수는 디아스포라 한인 가정들이 다시 붙들어야 할 회복의 나침반이다.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A. 제가 전하고자 하는 부분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의 마지막 장면이다. 참 불행하게도 그는 스톡브리지 사역을 마감하게 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지금의 프린스턴 대학교가 처음에는 ‘뉴저지 칼리지(New Jersey College)’로 불렸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 뉴저지 칼리지의 제3대 총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당시 제2대 총장은 아론 버(Aaron Burr)였고, 그는 에드워즈의 사위였다. 에드워즈의 딸 에스더(Esther)와 결혼한 인물이다. 아론 버가 36세, 에스더가 20세로 16살 차이였다. 그런데 결혼 후 5년 만에, 아론 버는 41세의 젊은 나이로 과로와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에스더의 나이는 불과 25세였다. 사위가 세상을 떠나고 총장 자리가 공석이 되자, 뉴저지 칼리지 이사회는 새로운 총장을 모시기 위해 논의했다. 이사회는 “학문적 역량과 목회 경험을 모두 갖춘 사람은 조나단 에드워즈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청빙했다.
에드워즈는 처음에는 고사했다. 가족과의 거리, 건강 문제, 또 집필 중인 책과 연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사회가 세 번이나 간청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수락했다. 1757년 12월 이사회가 결정을 내렸고, 그는 1758년 1월 프린스턴으로 향했다. 그러나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1758년 3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공식적으로는 1758년 2월에 취임했으니, 취임 두 달 만의 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천연두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처럼 예방할 수단이 거의 없었다. 백신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등장했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단계였다. 에드워즈는 공동체의 건강과 공공의 유익을 위해, 당시로서는 위험을 감수하며 자발적으로 천연두(Smallpox) 예방접종을 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으로 인해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고 1758년, 3월 22일 5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많은 목회자들은 에드워즈의 예방접종 결정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어거스틴의 신학을 따르고 루터와 칼빈의 전통을 잇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질병이나 재앙과 같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병에 맞서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에드워즈가 천연두 백신을 맞고 사망하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에 하나님이 치셨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죽음을 재해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가 예수를 증거하다 돌에 맞아 죽었을 때, 당시 유대인들은 그를 ‘신성모독자’로 규정했지만, 기독교는 그를 ‘최초의 순교자’로 본다. 마찬가지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죽음도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인류를 향한 사랑의 실천이었다고 본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자신의 몸을 던져 인류의 유익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순교적 죽음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랄프 윈터(Ralph Winter) 박사도 그런 관점에서 에드워즈를 평가했다. 그는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처럼 선교 개념을 ‘복음 전파’에서 ‘사회 참여와 의료, 교육 등 인간 삶의 전 영역으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조나단 에드워즈는 시대를 앞서간 선교적 신학자였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신학적 한계를 넘어선 행위였다. 오늘날처럼 하나님이 의사와 약을 통해 일하신다는 믿음은 당시에는 없었다. 질병에 맞서는 인간의 시도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죽음 또한 그 연장선상에서, 순교적 헌신과 사랑의 실천으로 새롭게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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