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세계 문학사에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수많은 문학 비평가로부터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손꼽혔지만, 정작 독자들에게는 난해하고 부담스러움을 준 책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대표적인 작품
이다. 그런가 하면 전 세계에서 수천만 부가 팔려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임에도 정작 문학적 평가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한 작품들도 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그 대표적인 예다.
[2] 전 세계 수천만 독자를 사로잡았지만, 그 누구도 댄 브라운을 ‘위대한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일까? 영국의 작가 필립 풀먼은 댄 브라운의 문장을 가리켜 “밋밋하고 왜소하며 못났다”라고 혹평했다. 그의 인물들은 평면적이고 2차원적이며, 대화는 현실감이 결여된 채 공허하게 부유한다. 문학성을 기준으로 보면, 이 소설은 마땅히 평가 절하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다빈치 코드』는 문학의 세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3] 그 소설은 첫 페이지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낚아채고, 매 장면마다 다음을 궁금하게 만들며,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 점이야말로 대중으로 하여금 그 책을 읽고 또 읽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다. ‘이야기 구조의 탄탄함’, ‘속도감 있는 전개’, ‘역사와 종교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능숙하게 배합한 스토리텔링 기술’은, 비록 문장이 우아하지 않더라도 독자의 본능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
[4] 2006년, 나는 『다 빈치 코드가 뭐길래?』(생명의말씀사)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그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 거짓과 소설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림과 사진을 통해서 입증시킨 나의 첫 작품이다. 댄 브라운은 책 서두에 ‘머리말’이라는 말 대신 ‘사실’(Fact)이라는 단어를 써서 책의 내용이 사실에 기초한 내용임을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팩션(Faction) 기법’을 활용해서 쓴 소설이었다. ‘허구’(Fiction)만으로는 먹히지 않으니까 ‘사실’을 가미한 것이다.
[5] 책 속에 나오는 사람이나 장소 이름은 ‘사실’
(Fact)이지만 내용은 ‘허구’(Fiction)다. 때문에 그 책은 ‘사실’이라는 ‘머리말’과는 달리 ‘허구’와 ‘거짓’으로 일관된 ‘팩션 기법’으로 쓴 소설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서두에 적힌 ‘사실’이란 말에 속아서 내용 자체를 사실로 착각하며 그 글을 읽은 셈이다. 저자 댄 브라운이 독자들을 완전히 속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6] 소설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진실된 사실과 세련된 문장과 문학적 깊이인가, 아니면 독자를 붙잡아 두는 힘인가? 이 두 요소는 서로 배타적이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 ‘상업적 성공’과 ‘문학적 가치’가 종종 엇갈린다. 댄 브라운의 성공은, 독자가 ‘진실되고 잘 쓴 책’을 원하기보다는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시켜서 계속 읽고 싶은 책’을 원한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7] 『다빈치 코드』는 독자를 감탄시킬 만큼 감동적인 내용이나 표현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결론을 향해서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 책이 비록 문학적 가치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한때 수많은 이들의 손에 들려서 애독하게 된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필력이 아니라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힘’이, 이 책을 ‘세계적 현상’(Syndrome)
으로 만든 것이다.
[8]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리더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볼 때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천하보다 소중한 진리의 말씀이자 진실 된 복음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인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사실이자 진리 그 자체이다. 진위성과 작품성은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소중한 말씀을 어떻게 전하느냐에 있어서 염려하고 고민하고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 많다.
[9] 댄 브라운은 거짓되고 신성모독적인 내용을 가지고도 세계 수많은 독자들과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어째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참 진리의 말씀을 소유했음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새롭게 자문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어떻게 하면 더 깊이 있고도, 동시에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복음은 본질상 진리이며, 그 진리는 결코 바래지 않는다.
[11] 그러나 그 전달 방식은 시대의 언어와 감각에 맞게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단순한 흥미 유발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진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진리의 가치 자체를 왜곡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댄 브라운의 작품은 ‘우리가 무엇을 전할 것인가’(What to deliver)
만큼이나, ‘어떻게 전할 것인가’(How to deliver)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복음을 맡은 우리는 진리의 무게와 전달의 생동감을 함께 품은 ‘하나님의 이야기꾼’이 되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