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와 데이비드 케슬러(David Kessler)가 함께 집필한 『인생 수업(Life Lessons)』에 나오는 한 문장에 눈이 갔다. 아주 오랜만에, 어제에 이어 계속 읽다 보니 밑줄이 그어진 문장이 하나 보이는데, 그 옆엔 ‘중요’라는 메모도 적혀 있었다. 무려 20년 만에 다시 펼쳐서 읽는 책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에 자신이 얼마나 붙잡혀 사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2] 왜 밑줄을 긋고 ‘중요’라는 메모를 남겼는지 알만 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말은 나의 일상에 깊은 울림을 준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키며 우리는 이미 하루치의 ‘해야 할 일’ 목록을 떠올리고, 그 무게에 눌린 채 깊은숨을 내쉰다.
어릴 적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으면 뭐라고 답했던가?
[3] 자신 있게 “화가요!”, “과학자요!”, “소설가요!”라고 말했다. 그때는 세상이 커 보였고, 시간은 충분했으며, 하고 싶은 일은 당연히 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우리는 현실의 벽 앞에서 초라해진 자기 모습을 볼 때가 많았다. ‘점수, 입시, 취업, 대출, 보험, 계약서, 할부금’..., 이런 단어들이 ‘해야만 하는 일’의 이름으로 일상에 덧입혀져 왔다.
“해야만 해!”의 반복적인 삶에 감정까지 마비가 되어버렸다.
[4]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내가 아니면 안 되잖아.”
“그게 인생이지 뭐.”
이 말들이 무표정하게 우리의 일상을 대변해 주는 메아리다. 우리는 하기 싫은 회의에 참석하고, 흥미 없는 업무를 기계처럼 처리하고,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감정을 억눌러 왔다.
[5] 그리고 어느 순간, 하고 싶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저 ‘해야만 하니까’ 살아간다. 그것이 가족을 위한 책임이든, 사회적 위치를 지키기 위한 처세이든, ‘성공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한 경쟁이든 간에 말이다. 문제는 ‘해야만 하는 일’이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다음 일이 기다리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면 삶의 균형이 무너질까 두려워서 멈추질 못한다.
[6] 그렇게 하다 보면, 내 인생인데도 정작 ‘나’는 빠져 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패’나 ‘체면’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는 삶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 ‘내가 살아 있음’이 존재한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분주한 시간을 잊고 그림을 그리거나, 여유롭게 걸어 다니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그런 순간에 우리는 ‘진정한 나’가 회복된다.
[7] 영혼이 숨을 쉬고, 마음이 웃고, 눈빛에 생기가 돌고, 살맛이 나는 삶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그 좋은 직장생활 중에, ‘하고 싶은 일’보다는 어느덧 ‘해야만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에 허망함을 느끼며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백수가 되었다. 2008년 12월 31일, 아무도 모르게 사무실을 떠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진정한 나’를 찾는 그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8] 하는 일이 없어 도서관에 갔다가 자신의 할 일을 깨닫고 3년간 도서관에 칩거하다시피 머물며 하루 10~15시간, 총 1만 권 가까이 책을 읽는다. 그때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과 전기가 시작되어 일주일에 베스트셀러 한 권씩을 써내는 유명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바로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의 저자 김병완 작가의 얘기다. 그 책을 읽고 그의 용기가 얼마나 부럽고 존경스러웠는지 모른다.
[9]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그 좋은 직장인 ‘해야만 하는 일’을 포기했더니, 마침내 자신이 가장 행복해하는 일을 찾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김병완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
우리네 삶에는 어쩔 수 없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부모의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월급을 많이 주는 황금 직장이기에 참된 기쁨과 만족을 얻지 못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분명히 있다.
[10] 하지만 가끔은 ‘해야 할 일’을 조금 미뤄 두고, ‘하고 싶은 일’도 누리며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잠시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가슴이 뛰는 일을 해보자. ‘독서, 여행, 자전거 타기, 뜨개질, 일기 쓰기, 아침 햇살 받으며 모닝커피 마시기, 맨발 걷기’ 등등. 하지만 ‘그 일 아니면 삶의 존재 목적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김병완 작가처럼 모험을 던져보라. 그 안에서 ‘내 속에 잠들어 있는 진정한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11] 20세기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하워드 서먼(Howard Thurman)이 남긴 말이다. “Don't ask what the world needs. Ask what makes you come alive, and go do it.”(세상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묻지 말라. 당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라. 그리고 그것을 하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내게 가장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인지 점검해 보라. 그 일이 아니라면 지금 가서 그 일을 하라. ‘Go Do I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