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70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오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한 가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거부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70년 만에 갑자기 어떤 계기로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찬양하고 자랑하는 일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게 되는 일이 쉬운 일일까? 결코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된 한 사람이 있다.
[2] 그는 대한민국의 대표 중견 연기자이자 가수이다. 서울예술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1973년 연극 무대에서 데뷔했으며, 1976년 단역으로 영화에, 1985년 MBC 특채 탤런트로 드라마에 진출했다. 1980년대 후반 디즈니 단편, 인형극 ‘인형의 집’ 등 다양한 무대에서 내공을 발휘했고, 뮤지컬 ‘스팸어랏’에서 아서왕 역을 맡아 코믹한 연기력을 보여기도 했다. 1998년, SBS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 아빠’ 역으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3] 그를 잘 모르는 이도 ‘미달이 아빠’라고 하면 “아, 그 사람!” 할 정도로 그것은 그를 대변하는 별명이 되었다. 이후에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드라마 ‘정도전’ 등 진지하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까지 소화하며 연기 폭을 넓혔다.
그동안 그는 세 차례 이혼을 경험했고, 2004년에는 외동아들이 미국 유학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충격을 겪기도 했다.
[4] 그때 받은 충격이 너무도 커서 그 사고 이후 캐나다로 떠나기까지 했을 정도로 그때 받은 충격은 컸다. 수년 후 국내로 복귀해서 2019년, 25세 연하의 비연예인 이윤주 씨와 조용히 결혼했다. 최근 두 사람은 KBS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 함께 출연하며 일상을 공개한 바 있다. 방송에서 최초로 얼굴을 공개한 아내 이윤주 씨는 몇 가지 이유로 적지 않은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5] 바로 배우 박영규 씨와 그의 아내가 이 글의 주인공이다. 박영규 씨는 1년 전, 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으며, 그의 부인 이윤주 씨는 내 페북의 광팬이기도 하다. 그런 두 사람과 어제 한 지인의 집에서 저녁 6시에 만나서 밤 11시 반까지 식사하면서 박영규 씨와 이윤주 씨의 신앙 간증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아내 이윤주 씨는 대단한 ‘커리어우먼’이자 ‘기도하는 여인’이었다.
[6] 원래 업무상 원체 유명 연예인이나 아이돌과 많이 접촉하는 직업인지라 아버지뻘 되는 박영규 씨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다. 나이 많은 사람 돈 보고 꼬셔서 결혼했다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실은 박영규 씨가 일방적으로 데쉬했다. 아내로 삼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몇 달간 연락을 끊었는데, 한순간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보낸 문자에 이윤주 씨가 반갑게 답하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7] 늘 기독교 방송을 틀어놓고 찬양과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던 이윤주 씨는 남편이 교회 가는 것을 싫어하자 강권하기보다는 조용히 기도만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반 전인 2022년 마지막 날이었다. 기독교계에서 영향력 있는 한 분과의 만남을 통해 그다음 주부터 교회에 등록해서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사고를 당해 죽었음에도 보호해 주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많았었다.
[8] 그러다가 마침내 은혜롭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고 그분 품 안에 안긴 것이다. 알고 보면 25살 차이 나는 현재의 아내와 만난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깨닫는다. 물론 그는 52년 전, 자신에게 일어난 한 가지 사건도 회상했다. 배우가 되겠다고 고향인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노량진에 있는데,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 쪽으로 몰려가기에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자기도 따라가 보았다고 한다.
[9] 그때가 바로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가 열리고 있던 때였다. 수많은 군중들과 함께 현장에서 두 사람의 설교를 듣게 된다. 키는 작지만 카랑카랑하게 우리말로 속사포같이 강력하게 설교하는 한 젊은 한국 목사와 영어로 통역하는 듯한 키 큰 한 미국 목사의 설교를 들은 것이다. 빌리 그래함의 영어 설교를 김장환 목사가 통역한 것이지만, 영어를 못 알아먹는 이들에겐 박 씨의 생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10] 그때만큼 많이 모이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때는 없었다고 할 정도로 역사적으로 기록될 만한 대회였기에, 그때 설교했던 김장환 목사에 대한 인상이 그의 마음속에 크고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저 사람이 진정한 배우가 아닐까?’하는 존경의 마음도 그때 싹텄다고 한다.
그 후 딱 49년째가 되는 2022년 12월 31일, 자기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던 작은 거인 김장환 목사를 배우가 되어 ‘아일랜드 리조트’(현 ‘더 헤븐’)에서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11] 몇 시간 동안의 교제 후에 “다음 주부터 교회 출석해!”라는 김 목사의 한 마디에 그냥 “예!”라고 답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다음 주일부터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1909년,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에서 자란 한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클래식 바리톤 성악가로 크게 주목받았다. 그의 음색과 테크닉은 라디오 방송계에서 큰 호평을 받았고, 세속적 명성과 부가 그를 초청하기 시작했다.
[12] 그 무렵, 한 시골 젊은 목사로부터 전도집회에 따라 다니면서 찬양 인도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는다. 세상 부와 인기를 안겨줄 방송사로부터의 요청과 무명의 목사로부터의 요청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시 한 편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시의 가사처럼 살길 원하니? 아니면 세상 가수로 살길 원하니?” 그 시의 제목이 바로 유명한 찬양 〈I'd Rather Have Jesus>(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였다.
[13] 어머니가 준 시를 본 그는 NBC 방송국의 엄청난 제안을 거절하고 시골 목사를 따라 복음송 사역자의 길로 나서기를 선택했다. 그때 그 시골 목사가 바로 1973년 김장환 목사와 함께 여의도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빌리 그래함 목사’이고, 그를 따라다니며 특송을 했던 가수가 바로 ‘조지 베벌리 쉐어’(George Beverly Shea)이다.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14] “나는 세상 가수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 예수님을 더 원했기에 빌리와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박영규 씨의 간증을 들으면서 결론적으로 빌리와 조지 베벌리 쉐어의 얘기를 오랜만에 언급했다. 김장환 목사님을 만나 그분을 따라다니면서 찬양과 간증 사역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새롭게 살고 있는 두 분의 모습과 아주 잘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15] 하나님을 믿고 나서 좋은 일들이 더 많아지고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며,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간증하는 박영규 씨와 그 아내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이제 나도 그를 위한 기도의 후원자가 되었다. 9월 11일 금요일, 어느 교회에서 나는 축사하고 그분은 찬양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다.
우리 하나님 정말 멋쟁이시다. 하나님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