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늘 날씨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다 하늘이 맑아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런던 중심부 남쪽에 위치한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셨던 메트로폴리탄 테버네클이었다. 교회 사이즈가 엄청나게 컸다. 1854년, 스펄전 목사님이 19세의 나이에 담임으로 부임해서 25세이던 1861년, 큰 부흥에 힘입어 현재의 자리에 6,000석 규모의 당시 세계 최대의 교회였다.
[2]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가 6,000석 규모인 것을 고려해보면 지금으로부터 164년 전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컸다고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공습으로 건물 일부가 불타서 소실되었다가 이후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 담임은 Peter Masters라는 분인데, 그의 설교를 능가하는 후임자가 나타나질 않아서 1970년부터 현재까지 무려 55년 동안 사역을 하고 있다.
[3] 이곳은 단순한 교회 건물을 넘어 복음 설교의 산실이자 개혁주의 신학의 요새이고, 스펄전 목사님의 유산을 잇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영적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대영박물관’이다. 이곳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그 내부에는 인류 역사와 문명을 아우르는 수많은 각국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4] 특히 성경이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주는 보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이곳이야말로 내 가슴에 불을 지른 최고의 장소이다. 안식년이 되면 이곳에 들러서 성경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찾아서 사진에다 설명과 함께 책으로 펴낼 생각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전임 교수가 된지 14년째임에도 안식년 한번 찾아먹지 못했다. 실천신학과엔 나밖에 교수가 없는 처지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5] 박물관 안에서 일행들과 함께 성경과 관련된 곳들만 골라서 다녔음에도 2시간이 걸렸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해독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를 제공한 로제타 스톤을 비롯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가 포함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 점토판과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을 둘러본 후, 먼저 이집트 바로 왕들의 족보들인 ‘카르나크 왕 목록’이 전시되어 있는 곳을 찾았다. 그 족보들 가운데 왼쪽 아래에 네 명의 이름이 제거된 흔적이 남아 있다. 이유가 뭘까?
[6] 이들이 외래에서 침입한 왕조였기 때문에 공식적인 왕 목록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 네 명의 바로 왕들이 출애굽 사건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기에 자기네 역사에서 엄청난 수모를 가져다주었다는 이유로 그들의 이름이 훼손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 역사를 여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이집트 정부의 입장은 명백한 거짓임을 자인하는 셈이 된다.
[7] 다음은 살만에셀의 오벨리스크를 관람했다. 이 오벨리스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이스라엘 왕 예후가 살만에셀에게 조공을 바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부조에서는 예후가 살만에셀 앞에 땅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옆에는 “다윗 집의 예후가 은, 금, 주석, 상아, 향유 등의 조공을 가져왔다”라는 쐐기문자 기록이 있다. 이것은 역사상 성경의 인물이 고고학적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증거 중 하나이다.
[8] 또 성경의 묘사대로 앗수르가 얼마나 잔인한 민족이었나를 보여주는 부조들을 찾았다. 기원전 701년, 산헤립 왕이 유다의 라기스 성읍을 공격하고 파괴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벽면 전체에 걸쳐서 공성 무기를 동원해 성벽을 무너뜨리는 앗수르 군대, 장대에 목이 달리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유대인의 처참한 모습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이는 앗수르 왕실의 권위와 잔혹성을 선전하기 위한 시각적 도구였다.
[9] 그리고 기원전 860년경, 신전이나 궁전의 대문을 장식하는 용도로 세워진 아수르의 발라왓 게이트(Balawat Gate)에서 청동 띠로 된 부조에서 칼로 포로들의 목을 자르거나 팔과 다리를 자른 잔인한 모습들이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울러 당시 전쟁 중 물맷돌 부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부조와 물맷돌의 실제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을지를 감 잡을 수 있는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10] 오랜 세월, 그 진정성을 의심받아온 세 성경이 있다. 나훔서와 다니엘서와 에스더서이다. 우선 나훔서에는 앗수르의 잔인성과 교만을 지적하며, 하나님께서 결국 그 악에 대해 심판하실 것임을 예언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앗수르가 멸망 당했다는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영박물관에 여러 생생한 증거들이 있다. 우선 ‘가드 연대기’(Gadd Chronicle)라 불리는, 니느웨 함락 사건을 직접 기록한 ‘바빌론 연대표 문서’가 있다.
[11] 거기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The city they turned into ruins - hills and heaps of debris.”(그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흙무더기와 잔해로 변했다). 이 문서는 대영박물관 Room55에 전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타버린 설형문자 점토판’(Burnt Cuneiform Tablet, MEK5967, Room55)이 있는데, 이것은 니느웨 성 함락 당시 너무 강한 열로 인해 유리처럼 기포가 생긴 상태로 남아 있다.
[12] 마지막으로 ‘Burnt Nineveh Reliefs’로 불리는 석고 조각들은 검게 그을린 잔해 상태로 출토되었다. 멸망 당시 불타서 멸망한 니느웨 성의 흔적이 긴 방 벽면에 생생히 남아 있다.
두 번째 의심받아온 성경이 다니엘서이다. 다니엘서에는 벨사살이 왕으로 다스리다가 나라가망했다는 내용과 그가 다니엘을 세 번째 치리자로 삼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더스이지 벨사살이 아니다.
[13] 그런 점에서도 그렇고, 왕 다음가는 총리는 지금이나 예나 동일하게 두 번째 치리자가 되어야 하거늘, 성경이 세 번째 치리자로 삼았다고 하니 말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나보니더스가 죽고 나서 그의 역사가가 그에 대해 기록으로 남긴 ‘나보니더스의 원통’이 발견되었다. 그 내용을 해독해보니 나보니더스가 달의 신을 독실하게 신봉하는 자로서 아들 벨사살에게 통치권을 맡겨둔 채 10년간 데마에서 그 신을 섬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4] 그러자 다니엘이 두 번째 치리자가 아니라 세 번째 치리자가 돼야 했음이 당연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대영박물관 최고의 보물은 ‘고레스의 원통’이다. 에스더서에 보면 고레스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고 약탈해온 성전의 기물까지 보내주면서 예루살렘에 성을 지으라고 에스더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약은 중동의 통치자가 잡혀 온 포로를 풀어주고 성전을 지으라고 했다는 얘기가 말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15] 물론 ‘고레스가 성령에 감동되어서’ 그런 일을 한 것으로 봐야 하지만, 이 역시 ‘고레스의 원통’을 통해서 에스더서의 기록이 전적으로 사실임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었다. 고레스의 원통 역시 고레스의 역사가가 그가 죽은 후 원통에다 그에 관한 기록을 해놓은 내용인데, 그것을 해독해보니 에스더서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놓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자료들이 대영박물관에 수두룩하니 호기심이 많은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16] 대영박물관을 나와서 마지막으로 웨슬리의 사택과 목회지가 위치한 교회를 방문했다. 그의 생가와 본당과 박물관과 무덤은 문이 닫혀 있는 바람에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그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은 후 교회 건너편에 위치한 ‘Bunhill Field’ 공동묘지로 갔다. 거기엔 ‘존 번연의 무덤’을 비롯해서, 그의 어머니 수산나 여사, John Owen과 Thomas Goodwin의 무덤과 시인 William Blake,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Daniel Defoe의 무덤도 있었다.
[17] 마지막으로 존 스토트가 목회했던 ‘All Soul’ Church’까지 방문했다. 이번엔 로이드 존스, 스펄전, 존 스토트 이 세 분이 사역한 교회 모두를 방문한 유일한 기회가 된 셈이다.
오늘은 아주 풍성한 자료들과 유적지들을 돌아보면서 어느 때보다 뜻깊고 감동적인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이제 내일부터는 이번 기독교 유적지 탐방의 백미인 ‘웨일즈’와 ‘브리스톨’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받을 은혜와 감동과 도전이 또다시 고대가 된다. 맑고 시원한 날씨 속에 날마다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