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에는 이발소에 자주 가지 못하고, 주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앞두고 머리를 깎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머리를 짧게 유지해야 했기에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발을 했다. 대학생이 되면서는 머리를 기를 자유가 생겨, 가끔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바람에 휘날리며 ‘폼’을 잡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이발을 하며 용모를 단정하게 유지하려 노력했다. 미국 텍사스 남부로 이민 온 이후에도 약 20년 가까이 단골 미용실에서 매달 한 번씩 머리를 다듬고 있다. 어느 날, 이발을 하기 위해 단골 미용실을 찾았을 때였다. 원장님께서 평소보다 더욱 밝은 표정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반겨주셨다.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용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을 지닌 채 오랜 세월 미용실을 성실하게 운영하고 계셨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그분의 취미와 꿈에 대해 듣게 되었다. 미용실 벽에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그려진 그림이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원장님은 오전에는 미용실을 열지 않고 지역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취미 그림 교실에 다니며 그림을 그린 지 벌써 2년이 넘었다고 하셨다. 오후에는 예약 손님 중심으로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림 이야기를 나누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취미로 시작한 그림 그리기가 이제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발전하여, 원하는 분들께는 판매도 하고 계셨던 것이다. 가격도 매우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어 놀라웠다. 한 그림을 처음에는 8시간 정도 들여 그리셨고, 경험이 쌓이면서는 3~4시간 만에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다.
내가 “그 시간과 정성을 생각하면 가격이 너무 싼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원장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지금은 배우는 중이니까요. 그림을 통해 이익을 남기기보다는 재료비만 건지면 돼요. 누군가가 제가 그린 그림을 기쁘게 사 간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기쁨이고 행복이에요.” 장차 자신의 그림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그림의 가치가 높아진다면 그때는 가격을 조정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겸손히 웃으셨다. 그 말씀 속에서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이어서 하신 말씀도 인상 깊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죠. 처음부터 물질을 앞세우면 안 됩니다.” 그 말씀이 참으로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윤을 남기기 위해 처음부터 비싸게 팔기보다는, 자신의 작품을 사 주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 마음이 참으로 고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원장님의 자녀들 딸 셋, 아들 하나 모두 성실하고 따뜻한 인품으로 사회생활을 잘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그 마음의 뿌리가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원장님은 언젠가 자신의 그림이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기를 소망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될 거예요.” 그 꿈을 가슴에 품고 매일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원장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진심으로 “정말 재능이 뛰어나십니다”라고 칭찬드리며, 그분의 꿈을 응원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원장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고, 그 미소 속에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렇다. 나이가 젊든, 다소 들었든, 꿈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이유가 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 2장 28절)
젊은이는 비전을 품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노인이 되어도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저 되는 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작은 꿈이라도 가슴에 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꿈꾸는 자의 마음은 늘 새롭고, 매일이 기다려지는 삶이 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취미와 소명, 그리고 작은 꿈 하나라도 가슴에 품고, 그 꿈을 향해 오늘도 몸과 마음과 영혼을 맑고 건강하게 가꾸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