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기쁨을 기대하기보다 슬픔을 예상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삶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가능성에 마음을 열기보다 슬픔의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놓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긍정보다 부정을 더 자주 떠올립니다. 그 이유는 부정적인 생각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찾아오지만, 긍정적인 생각은 의지적으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어려우면 기쁨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뜻밖에 찾아올 수 있는 기쁨에 마음의 문을 열어놓으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슬픔에 익숙하고 기쁨에는 낯설어하기 때문에, 뜻밖의 기쁨조차도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뜻밖의 기쁨을 향해 문을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에 받은 상처의 경험 때문에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닫습니다. 사랑 때문에 받은 상처가 아파 더 이상 새로운 만남 갖기를 두려워합니다. 좌절의 고통을 피하려고 희망을 억누르곤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거부하다가 좋은 것이 찾아오는 기회까지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 기쁨은 우리가 상상한 방식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조용히 스며들 듯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C. S. 루이스는 자서전 《예기치 않은 기쁨 (Surprised by Joy)》에서 무신론에서 신앙으로 나아간 여정을 고백합니다. 그는 기쁨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쁨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루이스는 그에게 찾아온 예기치 않은 기쁨을 “원하지 않았던 은혜”라 부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참된 기쁨은 우리가 이 땅에 뿌리내린 존재가 아니라, 순례자임을 상기시킨다. 기쁨은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눈을 들어 영원을 바라보게 하며, 마음 깊은 갈망을 일으킨다.” 그가 경험한 예기치 않은 기쁨은 얕은 감정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엿보게 하는 창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그의 삶 전체를 뒤바꿨습니다. 그에게 기쁨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닌, 하나님께로 이끄는 신비로운 부르심이었습니다.
성경은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피어나는 기쁨을 말합니다. 슬픔 중에 경험하는 기쁨, 고통 중에 경험하는 기쁨, 근심 중에 경험하는 기쁨을 말합니다. 그 기쁨은 신비롭고 역설적인 기쁨입니다. 하늘에서 임한 기쁨이며,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기쁨입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하).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20하).
뜻밖에 찾아오는 기쁨과 우리가 날마다 선택해야 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모두를 끌어안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고 권면합니다. 그는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권면합니다. 그는 환경을 초월하여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저는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어놓으면 예상치 못했던 기쁨이 찾아옵니다. 또한 우리가 날마다 기쁨을 선택할 때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로마 옥중에서 바울은 기쁨을 선택했습니다. 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원초적인 기쁨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의 나라입니다. 희락의 나라입니다(롬 14:17). 희락은 성령님의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갈 5:22).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기쁨은 삶이 아닌,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은 슬픔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슬픔 가운데서도 솟구쳐 오르는 기쁨입니다.
기쁨은 뜻밖에 찾아올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매일 기쁨을 선택해야 합니다. 기쁨은 위로부터 오는 선물일 수도 있고,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길어 올려야 하는 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얼굴의 기쁨을 모두 환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쁨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믿음의 태도입니다. 슬픔의 한복판에서 기쁨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한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기쁨이 찾아올 수 있도록 날마다 마음의 문을 열어두십시오. 또한 날마다 믿음으로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기쁨을 선택할 때 기쁨이 깃들고, 기쁨의 샘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선택하는 순간 인생의 방향이 바뀝니다. 선택은 결과를 낳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주 안에서 기쁨을 선택하십시오. 기쁨을 선물해 주는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기쁨은 두 방향에서 옵니다. 위로부터 오는 뜻밖의 기쁨, 우리 안에서 선택하는 순종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뜻밖의 기쁨으로 놀라게 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믿음으로 기쁨을 붙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며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예수님처럼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며 어려움을 잘 이겨내시길 빕니다. 기쁨은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는 창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마음을 열어, 그 빛과 함께 동행하십시오.
기쁨은 선택하는 사람에게 선물처럼 다가옵니다. 오늘도 당신의 마음이 기쁨을 향해 열리기를, 하나님이 주시는 뜻밖의 기쁨과 믿음으로 선택한 기쁨이 당신의 하루를 밝히기를 기도드립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