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댄 델젤 목사. ©크리스천포스트
댄 델젤 목사. ©크리스천포스트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댄 델젤 목사의 기고글인 '무신론자들이 무(無)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Why atheists should be afraid of 'nothing')를 5일 게재했다. 

델젤 목사는 네브래스카주 파필리온에 있는 리디머 루터 교회(Redeemer Lutheran Church in Papillion)의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을 단 하나의 우주론적 선택지에만 가두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무(無)에서 왔다는 터무니없는 환상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선택을 했다. 이러한 어리석은 믿음은 비이성적인 세계관을 낳는다. 반면 기독교는 증거 기반의 신앙이지만, 무신론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에 종교적 헌신과도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무신론자들은 사실 '무(無)'를 두려워해야 한다. 다시 말해, 무신론자들은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공간, 시간, 물질, 에너지가 생겨났다는 잘못된 가정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러한 맹목적 믿음은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는 터무니없는 공상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결론은 불가능하다. 

리 스트로벨은 2017년에 이렇게 게시했다. "무신론자로 남으려면 나는 아무것도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무생물이 생명을 낳고, 무작위가 정밀한 조율을 이루고, 혼돈이 정보를 만들어내고, 무의식이 의식을 생산하고, 비이성이 이성을 낳는다는 것을 믿어야 했다. 나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다." 

무신론자가 증거를 따르게 된다면, 그는 "오직 참되신 하나님"(요한복음 17:3)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무신론자가 끝까지 자신의 비논리적 이데올로기를 붙들고 있다면, 그는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 머물게 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자유의지로 진리를 외면하고, 본래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창조된 진리를 거부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무신론자가 가정의 위기를 맞닥뜨리면, 그는 영적 위로를 받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무신론자가 인생에 환멸을 느낄 때, 그를 절망의 구덩이에서 끌어낼 실체 있는 것도 없다. 그리고 무신론자가 심판날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존 노예스는 목사이자 라디오 진행자이며 기독교 변증가이다. 하지만 그가 무신론자였을 때, 그는 여러 질문과 씨름했다고 한다. "모든 것은 어디서 왔는가? 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그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은 그가 분명히 보고 있던 창조의 경이로움을 설명할 수 없었다. 

독자도 노예스 목사와 같은 상황에 있을 수 있다. 혹시 그렇다면, 필자는 독자에게 '무'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라고 강력히 권면한다. 즉, 무언가가 무에서 나왔다는 자신의 비이성적 가정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라는 것이다. 설령 독자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해도 잃을 것이 없다고 느낀다 해도, 필자는 말하고 싶다. 독자가 잃을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말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잠언 9:10). 이 거룩한 두려움이 없으면, 사람은 자신이 창조주 앞에 결코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 착각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초자연적인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는 영원한 심판과 정의가 없다고 잘못 가정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인간을 하나님, 죄, 용서, 천국, 지옥의 실제로 깨우게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부정 속에 살게 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완고한 마음은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한 지옥 형벌을 마땅히 두려워하는 것을 막는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지옥'이라는 실제 장소 개념을 비웃지만, 그들의 웃음은 비극적으로 무지에서 비롯된다. 

필자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신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약한 입장을 보강하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자신의 인식이 우주 안팎의 가시적·비가시적 실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한다." 

만약 독자가 모든 것이 무에서 왔다는 생각에 자신의 영혼을 걸고 있다면, 지금 깨어나 영적 혼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몸과 혼과 영을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다(살전 5:23). 그리고 인간의 불멸의 혼을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창조주의 설계에 순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예수님께 믿음을 두면,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주신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거부하면,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멀어지는 길을 걷게 된다. 

성령께서는 인간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건강한 두려움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을 허공 속의 상상 속 존재로 치부하지 말고, 회개하지 않으면 앞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기다리는지 깨달아야 한다. 필자가 독자를 하나님 나라로 겁주려는 것인가? 어쩌면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이 독자의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여호와의 두려움과 영원한 형벌의 두려움 외에 무엇이 독자를 움직일 수 있겠는가? (마태복음 25:46 참조) 

성경은 우리 모두가 죄 때문에 지옥에 가 마땅하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독생자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게 하셨다. 독자는 창조주 앞에 자신을 낮추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다(요한복음 1:12). 아니면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잘 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언젠가 독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는 기회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현명하게 선택하길 바란다.